의원들,공공성이유로 노골적 지상파 편들기…해법은 국민이익과 효율성에서 찾아야

[중소기업신문=이어진 기자] 인터넷 신조어 가운데 ‘답정너’라는 말이 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의 준말이다. 듣고 싶은 말을 정해놓은 뒤 상대방에게 답을 구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700㎒ 주파수 관련 공청회에 참석한 ‘높으신’ 국회의원들은 ‘답정너’ 같은 모습을 보였다.

11일 700㎒ 주파수 공청회는 통신, 방송업계 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700㎒ 주파수에 대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공청회라기 보단 차라리 심문하는 자리였다. 국회의원들은 공공성을 무기로 지상파 UHD 방송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예, 아니오로만 답하세요” 등 국정감사 마냥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통신학계를 대변해 참석한 경희대 홍인기 교수는 UHD 방송에 주파수를 할당할 경우 세계 최초라고 지적하며, 표준조차 명확하지 않은 UHD 방송의 조기 출시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2018년 8K UHD 방송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보다 1/2 이상 해상도가 낮은 4K 방송을 먼저 하는 것도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대다수는 지방방송 몰락 우려 등을 걸고 넘어지며, 공공성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야 한다는 입장만을 고수, 통신학계 지적들을 사실 상 묵살했다.

국회의원들이 듣고 싶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방송업계가 요구하는 대로 UHD 방송에 주파수 대역을 ‘제대로’ 할당하라는 답 말이다. 기술적 검토나 통신업계 의견은 철저히 묵살됐다. 통신업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한 질문들도 쏟아졌다.

한 의원은 “현재 이동통신 속도도 빠른데 더 빨라져서 무엇이 달라지는가요?”라고 말했다. 지상파 UHD 방송에 주파수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되묻고 싶다. 현재도 고화질인데 UHD 지상파 방송을 한다 해서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주파수를 지상파가 활용한다 하더라도 직접 수신가구는 전체의 6.8%에 불과하다. 90%가 넘는 인구가 지상파 직접 수신이 아닌 유료방송 등 다른 수단을 통해 지상파를 시청한다. 지상파가 주파수를 할당받아 UHD 방송을 조기 선보인다 하더라도 UHD를 직접 수신,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소수다.

일단 가격이 비싸다. 현재 출시되고 있는 UHD TV는 대부분 50인치 이상이며 대부분 수백만원 이상의 고가다. 고가의 UHD TV를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들은 구태여 지상파를 직접 수신하진 않는다.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케이블, IPTV 등으로 감상한다. 지상파 직접수신가구는 IPTV 등이 들어오지 않는 오지 등이 꼽힌다. 유료방송이 부담스러워 직접 수신하는 저소득층들도 수백만원에 달하는 UHD TV를 구입할 여력이 없다. 더군다나 직접 수신 가구들 가운데서도 수신이 어려운 지역들도 존재한다. 방송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유료방송을 선택하는 가구들도 더러 존재한다.

결국 황금 주파수라 불리는 700㎒ 주파수를 방송용으로 할당할 경우 실제 체감할 수 있는 국민은 지극히 소수다. 국민 모두가 방송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공공적인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도 풀HD 지상파 방송은 제공되고 있다. 풀HD 방송이 제공되는 상황에서 ‘소수만’ 즐길 수 있는 ‘UHD 지상파 방송’을 위해 ‘국민 모두의 재산’인 주파수를 할당한다는 것은 지극히 비효율적이라는 소리다.

통신은 다르다. 트래픽은 지속 폭증한다. LTE가 고도화되면서 스마트폰은 단순 인터넷 및 커뮤니케이션 수단에서 멀티미디어 디바이스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프로야구 등을 스마트폰 데이터를 통해 이동 중에 감상하는 등 TV 시청 패턴도 변화하고 있다.

이동통신업계가 700㎒ 주파수를 원하는 것은 더 빠른 LTE 서비스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트래픽 폭증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LTE 고도화로 스마트폰이 ‘보는 기기’로 탈바꿈 하면서 데이터 트래픽은 폭증의 폭증을 거듭하고 있다. 공청회에 참석한 경희대 홍인기 교수에 따르면 서울시 인구 밀도 대비 주파수량은 해외 주요 도시의 1/2에서 1/5수준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부지역은 이미 데이터 트래픽 폭증으로 속도 저하가 발생하고 있다. LTE폰 확산, 사용패턴 변화로 트래픽이 폭증하는 상황에서 추가 주파수 공급이 없을 경우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다른 모 의원은 “지상파 방송 모두가 원하자나요. 동의하시죠?”라고도 언급했다. 다시 되묻고 싶다. 수신료 인상 거부 운동은 그럼 왜 일어났겠느냐고.

수신료는 KBS, EBS 등의 재원으로 활용된다. 지상파3사를 대변하는 한국방송협회는 매번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시청자들은 수신료 인상이 달갑지 않다. TV수상기를 설치해서 지상파 방송을 보는 것도 아닌데 매달 돈만 빠져나간다. 유료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이건, 지상파를 직접 수신하는 사람이건 수신료는 전기세와 묶여 매달 강제적으로 징수당한다.

유료방송 시청자들은 원치 않는 수신료를 강제 징수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월드컵,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이슈 때마다 재전송료 문제로 발생할지 모르는 ‘블랙 아웃’ 불안에 떤다. 실제로 지난 2011년 말 케이블업계와 지상파 방송사 간 재전송료 문제로 케이블 시청자들은 수일 간 HD급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없었다.

국회의원 상당수는 공공성을 거론하며 UHD 방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동통신사들이 주파수를 할당받을 경우 주파수 경매에 들어간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요금인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도 언급했다. 하지만, 수신료 문제, 재전송료 문제를 비춰보면 공공성 보다 돈을 밝히는 건  이동통신사나, 방송사나 마찬가지다.

700㎒ 주파수 논란의 본질은 공공성이 아니다. 경희대 홍인기 교수는 “(700㎒ 주파수 문제는)풀HD 방송 잘 나오는데 50인치 이상의 화질 좋은 방송을 선택해야 하는지, 통신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지로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주파수는 누구나 알고 있듯 공공재며 한번 배정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그래서 마련된 자리다. 의견 수렴의 장이 아닌, ‘공공성’을 무기 삼아 자신들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공청회는 있으나 마나다. 노골적인 지상파 편들기가 전국민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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