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신문=김두윤 기자] 지켜지지 않고 있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재출연'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최근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천문학적규모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논란이 거세지면서 이회장의 '사재출연'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회장직 사퇴 발표와 함께 '사재출연'약속을 국민들에게 내밀었다. 불법비자금과 편법승계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자그만치 7년전의 이야기다. 당시 자신의 죄를 돈으로 덮으려고 한다는 비난여론이 적지않았지만, 이 회장의 '사재출연'약속이 악화됐던 국민감정을 누그러뜨리는데 상당한 효과를 보였다는 해석도 많았다.

하지만, 차일피일 약속이행이 미뤄지면서 이제나 저제나 '사재출연'약속이 지켜질까 기다렸던 국민들에게도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최근 이 회장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이행여부 자체도 불확실해지고 있다.

사실 이 회장의 약속은 자발적이지만 비자발적이기도 하다. 이 회장이 저지른 불법에 따른 엄정한 법의 판단이 예고된 상황에서 나온 약속이기 때문이다. 당초 '삼성특검'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로 이 회장에게 '특정경제가중범죄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민단체들의 관측이 많았다.

이 회장은 지난 2009년 8월 삼성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발행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았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었다. 하지만, 같은해 12월 약 4개월만에 특별사면을 받고 이듬해 3월 경영에 복귀했다. 이에대해 시민단체의 '면죄부' 의혹제기가 들끓었다. 이 회장이 차명재산을 실명전환하는 과정에서 벌금과 세금을 납부했다지만, 제척기간이 지나 책임을 물릴 수 없었던 내역도 많았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상적이었다면 세금으로 내야할 돈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다.

이후 이 회장은 '위기론'을 내세우며 경영에 매진했고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섰다. 이제는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한 이 회장의 오랜 노력의 결과물로 보이는 '이재용 삼성시대'가 목전에 있다.

결론적으로 불법을 자행했지만, 신뢰도 실추말고는 이 회장과 삼성그룹이 죄의 대가로 받은 상처는 그리 크지 않은 셈이다. 오히려 '삼성특검'에 따른 법적판단이 마무리돼 불법문제가 말끔히 정리되면서 경영승계과정에서 시비가 생길 소지도 없어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부당이득' 논란에도 삼성SDS 상장을 통해 수조원대의 떼돈을 손에 쥔 상태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경영권세습문제가 그 끝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이 회장이 했던 약속은 저만치 내팽개쳐져있다. 착착 진행돼온 승계문제와 다르게, 국민들과의 약속은 헌신짝이 된 셈이다. 이 회장이 돈이 없어 자신이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미뤄왔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회장은 삼성 계열사에서 지난해까지 최근 4년동안 해마다 1천억원대의 배당금을 받아왔다. 이 기간동안 배당금만 따져도 4천억원이나 된다.

이는 이 회장의 경영관과 도덕성에 대한 의심을 꺼내들게 한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국내에서 삼성의 입지가 독보적인 상황에서 오랜전부터 '제왕적지배'에 익숙해진 이 회장이 국민들과의 약속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아니냐는 물음이다. 어쩌면 당장에 엄벌만은 피하고 보자는 속셈에서 나온 약속이었는지도 모른다.

과거 이 회장은 피고인으로 이 부회장(당시 전무)은 증인으로 부자가 함께 법정에 서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됐던 '삼성특검'재판과정에서 일류기업 육성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던 이 회장의 일화는 유명하다. 이 회장은 삼성계열사 가운데 특별히 중요한 회사가 있느냐는 당시 재판부의 물음에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가장 중요하다. 세계 1위 회사를 만들려면 1~20년이 걸려도 힘들다"면서 울먹였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을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됐다는 이 회장의 심경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인 '사재출연'문제를 짚어보면, 이 회장이 자신이 힘들게 키워온 회사를 지키고 자식들에게 잘 넘겨주기 위해서는 불법마저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여기서 비롯된 국민들과의 약속이행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는 비판에서 비켜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이 회장이 내세운 '사재출연'약속이 이대로 '허언'으로 끝나게 된다면 이에대한 비난의 화살은 이 회장이 저지른 불법의 최대수혜자로 평가되는 이 부회장에게 옮아갈 공산이 크다. 현재 삼성가의 승계문제를 두고 '사회적 승인'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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