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임종건

지난 2월말로 나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 위원 겸 독자불만처리위원(이하 독자위원)으로서의 2년간의 임무를 마쳤습니다. 윤리위는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1년 정부와 언론 간의 대립국면에서 타협의 산물로 출범한 언론단체입니다. 당시 언론계는 군사정부의 타율규제 시도에 맞서 윤리위를 통한 자율규제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제정된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은 그동안 몇 차례 수정을 거쳤고, 인터넷 시대의 빠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신문 방송뿐만 아니라 인터넷 언론을 포함하는 모든 언론의 윤리교과서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윤리위 안에는 언론인 출신들로 구성된 심의실이 있어 전국의 종이 신문들을 모니터링해서 문제 기사를 찾아내 위반 정도에 따라 주의 및 경고 의견을 내고, 이 의견은 윤리위 전체회의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이 이뤄집니다.

독자위원은 윤리위 심의실과는 별도로 독자들이 종이 신문 외에 인터넷 신문 기사에 대해 직접 서신, 이메일, 전화로 제기하는 불만을 접수, 심의하는 윤리위의 옴부즈만 역할을 하는 기구로서 2004년에 설치됐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들어 독자들의 뉴스 접속 방법이 종이 신문에서 인터넷 쪽으로 급격히 옮겨감에 따라 윤리위는 지난해 독자위원 안에 온라인 매체 모니터링을 전담하는 전문위원을 두어 윤리강령 위반 사례를 심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윤리위와 독자위원의 얘기가 다소 길어진 것은 나의 두 곳에서의 경험이 개인적으로는 유익했음에도 언론의 미래를 생각할 때 우울한 것이었음을 얘기하기 위함입니다. 독자를 포털에 빼앗겨 광고수입이 떨어진 것도 억울한 터에, 경영난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인터넷 환경에서 언론들이 윤리 파기에 앞장서고 있는 현실이 나를 우울하게 했습니다.

인터넷 신문의 선정성은 일상이 돼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국지, 지방지, 스포츠지, 경제지, 기타 인터넷 신문을 가릴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메이저 신문들 사이에서 1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윤리 파기 경쟁은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선정적인 기사나 광고들 속으로 들어가면 포르노 동영상, 섹스숍, 심지어는 매춘알선 광고에 이르기까지 ‘음란의 요지경’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헉 이런’ ‘핫 포토‘ 등의 선정적인 문패의 코너에 엽기적인 기사와 사진을 모아놓기도 합니다. 그 중에는 수간(獸姦), 근친상간과 같은 온갖 비윤리적이고 엽기적인 기사와 사진도 비일비재합니다.

성의 상품화만 심각한 게 아닙니다. 인터넷 노출빈도를 높이기 위한 어뷰징(Abusing), 통신에서의 보이스 피싱 같은 낚시성 제목 또한 판을 칩니다. 어뷰징은 똑같은 기사에 제목 한 자, 본문 몇 자를 바꿔 새 기사처럼 계속 올리는 것입니다. 몇 시간 사이에 수십, 수백 건의 같은 기사가 포털의 뉴스 면을 도배질합니다.

포털이 어뷰징을 방지하려고 키워드가 많은 기사를 우선적으로 올리기로 하자 매체들은 기사 속에 키워드를 마구잡이로 집어넣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 기사 중간에 기사 전개와 무관하게 ‘김기종’을 수십 번 넣는 식입니다.

낚시 제목은 기상천외한 왜곡과 과장의 전시장입니다. 유익한 생활정보가 불륜 기사로 둔갑하고, 충격적인 사건 기사의 제목을 클릭하면 성기능강화제 또는 고리대금, 증권투자 등의 광고로 연결됩니다. 낚시 광고 가운데는 사행성, 사기성이 농후한 상품이 많아 소비자의 피해 우려가 큽니다.

온라인 신문들의 콘텐츠 관리가 이처럼 난잡해진 가장 큰 이유는 포털 광고의 수익구조가 클릭 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클릭 수가 많아야 광고수입이 커지는 구조에서 언론들은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거기에서 윤리 따위는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신문들도 그런 경쟁에 투자할 능력이 안 되어서 그럴 뿐이라고 자조합니다.

광고주는 소비자의 구매행위가 이성보다는 감성의 영향을 더 받는다고 여깁니다. 또 클릭 수 이외에 보다 객관적인 광고효과 측정방법이 없다고 여깁니다. 인터넷 언론의 선정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 무대책의 상황이 나를 더욱 암담하게 했습니다.

클릭 위주의 인터넷 광고는 점수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대학수능 정책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수능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내신이 있듯이 포털 광고의 수익구조에도 보완이 필요합니다. ‘살기 위해서’를 구실로 ‘죽을 짓’을 하는 현 상황이 지속될수록 언론은 활로 개척은커녕 설 자리를 잃어갈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생명은 독자의 신뢰에 달려 있습니다. 한번이라도 어뷰징이나 낚시를 당한 독자들은 더 이상 그런 신문을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론사 홈페이지에 널려 있는 선정적인 콘텐츠는 독자들에게 정론지 고급지의 이미지 대신 옐로 저널리즘 인식만 짙게 할 것입니다.

한국 언론은 그렇잖아도 편향적인 보도, 부정확한 보도, 욕설로 도배된 댓글문화 등으로 인해 독자들로부터 ‘기레기’ 언론으로 매도당하고 있습니다. 발행부수, 클릭수가 많은 신문은 있어도 정론지, 고급지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 불명예스런 평가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 무책임한 인터넷 콘텐츠 관리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의 유력지들 가운데 온라인 신문을 한국처럼 만드는 나라는 없습니다. 섹스의 상품화, 어뷰징, 낚시성 제목 등의 기사나 광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런 타락한 언론환경을 놔둔 상태로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요원하다고 봅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신문협회가 콘텐츠 평가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섹스 콘텐츠보다는 뉴스 콘텐츠의 클릭 수에 가중치를 높게 매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윤리적 콘텐츠에는 벌점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클릭 수와 구매력과의 상관관계를 보다 정밀하게 측정하는 언론계, 학계 및 광고업계의 노력도 병행돼야 합니다.

인터넷 언론환경을 혁신하는 주체가 누가 되는 것이 좋을지를 생각해 봅니다. 정부가 나선다면 윤리위 출범 전 타율규제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니 큰 논란이 일겠지요. 인터넷 콘텐츠의 도매상 격인 포털의 책임으로 한다면 이미 언론을 상대로 칼자루를 쥔 포털에게 권총까지 차게 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반세기 전 윤리위가 발족되던 당시의 언론에 의한 자율규제 방식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지금의 윤리바로세우기 명제는 권력의 언론규제 차단이라는 당시의 명제만큼이나 절박하지만,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언론과 정부, 업계와 학계가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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