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지난 13일 심야에 해경 응급 헬리콥터가 복통을 호소하는 일곱 살 어린이를 전남 가거도에서 후송하려다가 착륙도 못하고 바다로 추락해 4명이 사망·실종했습니다. 이 헬기는 작년 4월 세월호 침몰 당시 현장에 맨 먼저 출동했습니다. 그러나 사고기는 블랙박스가 없는 낙후 기종이라서 수심 70여 미터에 있던 기체 발견에만 6일이 걸렸습니다.

경제학자 맨큐가 그의 저서 ‘경제학의 원리들’ 첫머리에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 선택의 대가는 그것을 얻기 위해 포기한 그 무엇이다”라고 갈파한 그대로입니다. 부자 아이까지 퍼주는 전면 무상급식은 낡고 위험한 교실과 불결한 화장실, 신규교사 취업 적체뿐만 아니라 생활고에 시달린 송파 세 모녀의 자살, 청년 일자리 창출 감소, 걸핏하면 추락하는 낡은 공군기 사고의 먼 원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국가 예산은 제한돼 있어 시급히 돈을 써야 할 모든 곳이 무차별 무상급식 선택으로 포기된 잠재적 대가입니다. 전면 무상급식은 결코 윈윈(win-win)이 될 수 없는 제로섬 게임이었습니다. 가거도 추락 헬기의 기체 수색 난항도 국가에 뭐가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모르고 ‘표(票)퓰리즘’에 날뛰는 정치인들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이 무상복지 중독으로 혼수상태인 가운데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작년 말 내건 도내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 중단이 며칠 전 도의회에서 확정되었습니다. 경남도는 도교육청에 주던 640여 억 원의 무상급식비를 저소득계층 10만 명에게 연간 평균 50만 원씩 교육지원비로 쓰겠다는 것이죠. 21만8,000여 명이 받던 무상급식을 6만6,000여 명으로 줄여서 남는 돈을 정말 어려운 가정이 일어서도록 쓰겠다는 겁니다. 홍 지사는 “학교란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라고도 단언했습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처럼 석유가 콸콸 샘솟는 중동 산유국도 아닌 터에 능력을 초월한 지출에서 촉발된 무상복지 본격 논쟁은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속된 말로 ‘국민의 혈관에 빨대를 꽂고’ 빨면 나오니까 메우는 건 문제가 없다라고 착각하는 책상물림 형 정치인들의 세금 경시 풍조가 온 나라를 광풍으로 휩쓸다가 먼지가 걷히면서 홍 지사 같은 결단력 있는 정치인이 목소리를 찾는 모양새입니다.

필자가 본 칼럼에서 여러 번 주장한 대로 지속가능한 복지는 훗날로 미루는 채권 발행이 아니라 건전한 재정이 바탕입니다. 야권은 “부자들에게 더 거둬라”, “법인세를 올려라”며 아우성입니다. “아이들의 밥그릇 뺏기”, “아이들 밥을 볼모로 삼은 색깔 논쟁”이라며 총공세입니다. 무상복지로 선거에서 재미 본 여당도 미련과 집착이 남은 모양이지만 복지 꿀단지는 이미 금이 가고 있죠. 최근 갤럽 여론조사 결과 ‘선별 무상급식 찬성’이 63퍼센트로 ‘전면 무상’의 34퍼센트보다 두 배가량 높았고 ‘홍 지사가 잘한 일’ 이라는 응답이 49퍼센트로 ‘잘못한 일’ 37퍼센트보다 높았습니다. 시차를 둔 여러 여론조사에서 선별 무상급식 찬성률이 높았으니 문제는 정치 쪽입니다.

세금으로 사준 우유가 먹기 싫어 몇 모금 빨다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뉴스를 보며 국민들은 전면 무상급식의 정체성을 의심했을 것입니다. 납세자로서 세금이 이렇게 낭비되는 것에 분통을 터트렸을지도 모릅니다. 빈부 간 1대 8의 교육비 격차를 줄여 소득재분배를 해보겠다는 홍 지사의 외로운 결기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으니 무료 중독증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2011년 서울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실시해 무상 포퓰리즘 타도의 깃발을 높이 들고 계백 장군처럼 홀로 싸우다가 사퇴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세금으로 무차별 무상급식을 하는 선진국은 드물다는 것을 국민들은 압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상징인 프랑스를 비롯하여 부유한 선진국들도 응능(應能)의 원칙을 지키며 극빈자 외에는 돈을 받죠. 우리나라도 잘못된 정책을 고쳐서 전면 무상급식을 선별 무상급식으로 개선하자는 것이 여론입니다. 당해 학부모들은 싫겠지만 안 되는 국가재정이니 능력 있는 사람들은 돈을 내고 먹어야 합니다. 대신 학생들은 화장실이 지저분해서 참은 용변을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 안 봐도 될 테지요. 혹시 정성 어린 엄마표 도시락이라도 들고 오면 ‘친환경’ 속에 숨은 농약급식이나 집단식중독 위험도 사라질 거고요. 중고교 시절 따끈한 밥을 먹이려고 점심때에 맞추어 학교로 도시락을 가져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자식사랑이었죠.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만원을 주겠다." 지난 대선은 기만적인 공짜 공세로 오염됐습니다. 내년 총선에선 또 어떤 망국적인 포퓰리즘 구호가 등장할지 모릅니다. 지금 유례없는 저성장의 그늘에 주저앉은 우리는 냉철하게 우리의 능력을 점고해야 할 때입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쓰기보다 버는 일을 더 도와줘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후손들은 우리가 넘기는 무상시리즈의 빚더미를 옴팍 뒤집어쓰고 선조들을 저주할지 모릅니다. 정치인들은 자식에게 유산을 주듯이 나라에도 빚더미를 안기고 싶지 않은 민심을 읽으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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