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올해도 서울과 동경에 벚꽃은 활짝 피어 상춘객을 맞이했습니다. 작년 2월 벚나무가 일본의 상징이라며 여의도 윤중로에서 전기톱으로 여러 그루를 자른 60대 노인이 있었죠. 이제 벚꽃은 일본 꽃만은 아니고 한국이 원산지인 벚꽃이 있다는 정설로 축제 기간까지 지자체에서 정해 즐기고 있습니다. 벚꽃 감상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창경궁을 창경원이라는 유원지로 만들어 벚나무를 무수히 심고 밤벚꽃놀이의 효시를 만든 일본 군국주의 후예들의 정치 벚꽃은 강력한 한랭전선을 발달시켜 국교 수립 50돌을 목전에 두고도 한일관계의 위축을 계속 끌고 갈 모양입니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역사적인 독도 방문을 일본이 맹비난할 때에 니케이 서울지국장은 “독도는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 한국에게서 빼앗은 것이 된다. 일본에서 K팝 인기가 건재하고 양국 간 방문객은 연간 500만. 최악의 관계에 있는 정부끼리 비난의 응수를 계속하면 험악한 분위기가 확산된다. 불이 붙으면 제어하기 곤란한 것이 내셔널리즘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사히신문도 “K팝 공연에 수만 명이 몰리고 서울에서 점원이 일본어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시민 레벨의 교류는 공전의 활황이다. 이를 정치가 뒷걸음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썼습니다.

아사히나 니케이의 우려대로 일본 정치가 국민을 지배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욱 가라앉고 있죠.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인지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 용의자로 3년 반 구류되었던 기시 노부스케를 외할아버지로 둔 아베 신조 총리의 군국주의적인 역사 지우기와 영토 야욕이 날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베의 소원대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가 한국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에서 그냥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로 격하한 것은 한국의 위상 때문이 아니라 이웃나라를 선린우호로 배려해야 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싫은 자기들 가치기준의 역주행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종군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인신매매이고 일본의 식민지 정책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주장도 모자라 일본의 원조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했다는 식의 황당한 해외용 동영상까지 만드는 일본 외무성입니다. 일본은 한국이 피를 흘린 6·25 특수로 패전의 폐허에서 부흥했습니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작년 4월까지 4,900억 달러(약 500조 원)로 국교정상화 때 얻은 무상 청구권자금 3억 달러의 1,600여 배가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유상 2억 달러를 합쳐도 고작 5억 달러죠.

산업화와 무역입국으로 자본재 역조는 불가피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 불요불급한 소비도 무역 역조를 일으킵니다. 관광 수지를 보면 작년 일본에 간 한국인 관광객은 276만 명. 한국을 방문한 일인보다 59만 명이 많아 6년 만에 역조였죠. 일인 관광객은 2년 새 3분의 1 넘게 줄었습니다.

지난 설에 고속도로 법규 위반 차량을 단속한다며 도로공사와 경찰청이 띄운 무인비행선의 카메라를 보니 일제 니콘이었습니다. 내가 즐겨 보는 ‘동물농장’ 프로그램에서 지하 수로에 일곱 달 갇힌 백구를 구출하려고 내부를 들여다본 내시경 카메라도 소니, 몇 년 전 나로호 위성 발사 중계 때 최근접 촬영이라고 자랑하던 방송 카메라도 소니였습니다. 일본계 캐주얼 의류 마트인 유니클로가 유력 일간지에 특집기사로 나올 정도로 급성장 중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엔저 원인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혐한 분위기로 인해 막걸리 수출이 3년 동안에 81퍼센트나 줄어들었고 화장품 판매 등 문화 한류가 주춤해졌습니다. ‘강남스타일’의 폭풍도 일본은 예외였습니다. 세계 1위 핸드폰 삼성이 국제적인 명성을 유독 인정받지 못하고 시장점유율이 4퍼센트 대에 있는 것이 일본의 기막힌 현실입니다. “내가 꿈꾸면 소니가 만든다”는 일본의 자존심 소니를 누르고 모바일과 텔레비전, 반도체로 세계를 제패한 삼성의 웅비를 일본인들이 좋게 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의 올해 1/4분기 일제 차 수입은 작년 동기보다 38퍼센트가 늘어 6,900여 대를 기록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처음으로 개발한 포니의 일본 수출설이 나돌던 1980년대 후반, 필자가 동경에 있었을 때 일본 신문 1면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핸들이 왼쪽에 있다고 다 외제차냐.” 현대차는 일본 시장에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 단 1만5,000 대를 판매하고 철수했습니다. 가장 큰 장애는 한국제라는 이유일 겁니다. 미쓰비시 엔진을 적용한 포니로 고유 모델을 처음 국산화한 현대차가 2014년 496만대를 팔아 글로벌 5위로 세계 곳곳에서 일제 차를 누르는 모습을 보며 “식민지였던 주제에…”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뭐가 좋다는 건지, 어느 날 서울 강남 도산대로에서 신호에 선 자동차 15대를 보니 외제차가 5대였고 그중 2대는 일본차였다고 한 종편 방송이 최근 보도했습니다. 아베가 목청을 높일수록, 일본이 역사 왜곡을 강화할수록 한국에서 일제 차는 더 잘 팔리나 봅니다. 도요타는 사회공헌 명목으로 친일 청산을 주장했던 박원순 씨의 아름다운재단을 후원하는  ‘영향력 마케팅’까지 펼쳤습니다.

글로벌 무역국가라도 파는 만큼 사주는 게 예의죠. 우리가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에 분노하고 있지 않다고 오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일본에 보낼 수는 없죠. 미쳐 날뛰는 듯한 일본 정치인들이 국가적 이성을 되찾도록 하는 것이 우리 외교관만의 일은 아닙니다. 무슨 퍼포먼스인가요. 3·1절이나 광복절, 독립기념관보다 더 중요한 오늘의 일을, 좀 산다는 동네가 더 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임진왜란의 참상을 그린 KBS 드라마 ‘징비록’을 보며 그런 생각을 갖습니다. “나는 다시 조선에 돌아온다.”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하지도 않았다는 거짓말을 실천하자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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