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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칼럼>넋두리 고향길
2015년 05월 07일 (목) 09:22:58 임종건 webmaster@smedaily.co.kr
   
▲ 언론인 임종건

필자는 지난달 28일 언론인들의 친목단체인 관훈클럽이 올 들어 첫 번째 가진 문화유적답사에 참가해 고향인 충남 서천을 다녀왔습니다. 전직 언론인 100여명과 함께 떠난 이번의 고향길은 무심코 오갔던 그동안의 고향길과는 다른 감회를 갖게 했습니다.

충남 서남단에 위치해 전북 군산과 금강 하구로 연접하고 있는 서천은 백제 말기에 당나라 소정방의 함대가 출몰했던 군사의 요충이었고, 60년대까지만도 인구 15만 명에 이르러 군세가 제법 번창했으나 현재는 인구 5만7,000명으로 충남에서도 낙후 지역으로 꼽힙니다.

농촌 인구의 감소는 전국적인 현상이긴 합니다. 그러나 서천의 경우는 지리적 이점을 살리지 못한 정책의 실패와 관련이 있고, 그 결과는 단순히 서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중서부 일대의 균형발전을 더디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특히 서천군 장항읍은 1930년대 지금의 광주광역시와 같은 때 읍으로 승격됐으나 인구 1만3,000명 소읍에 머물고 있으니 두 지역의 발전상의 격차는 가히 천양지차라 하겠습니다. 장항은 70년대까지만 해도 항구로, 장항선 철도의 종착역으로 육해운의 중심에다 농수산물의 집산지였습니다.

195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 굴뚝 사진과 함께 소개된 장항제련소는 당시 남한에서 가장 큰 공장이었습니다. 일제의 장항개발에 관한 관심은 비록 충남지역의 물산을 일본으로 실어 갈 수탈이 목적이었지만, 철도 항구 제련소 모두 기능상실 상태인 오늘날 장항의 퇴락상에 비추어 국토이용에 관한한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만도 못하다 해서 과언이 아닙니다.

서천의 산업적 입지의 중요성이 부각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개발연대가 시작되던 196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은 서천군 비인면과 서면 일대에 비인공단 건설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곳에 직접 와서 기공식 발파스위치를 누르던 박 대통령의 사진을 신문에서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서천에서 비인공단으로 연결되는 철도가 지나게 된다며 고향 집 앞에 높다란 철둑까지 쌓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기차구경을 하게 된다는 설렘 속에서 기차가 다닐 날을 기다렸으나 어느 날 철둑은 소리 없이 헐렸습니다.

커서 알게 된 것은 비인에 들어설 공단은 경남 울산에 지어졌고, 그것이 오늘날 울산광역시와 서천이라는, 어쩌면 광주광역시와 서천의 차이를 능가할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과정에는 경제논리와 정치논리가 동원됐는데, 경제논리는 입지조건에서 울산이 낫다는 것이었고, 정치논리는 서천 옆 부여 출신의 중앙정보부장 김종필과 울산 출신의 대통령 비서실장 이후락 간의 각축의 결과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인공단 계획을 버렸으면 바다를 그냥 놔두기나 할 것이지, 20년 뒤인 1980년대 초 그것을 보상한답시고 세운 게 서면 마량의 서해화력입니다. 서해화력을 세운다고 하필이면 서해에서는 드물게 맑은 물과 차돌이 부서진 백옥 같은 모래사장이 펼쳐있던 천혜의 동백정해수욕장을 매립해 없앴습니다.

백사장 앞의 섬이었던 동백섬은 서해화력의 일부처럼 붙여졌고, 그곳이 동백숲길이 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남아 있다면 서해안 최고의 해수욕장이 되어 화력발전소보다 몇배의 부가가치를 지역민들에게 안겨줬을 게 틀림없는 동백정해수욕장입니다. 미녀를 야수에게 팔아넘긴 폭거였으니 동백숲길의 진홍의 동백꽃은 서천의 슬픈 역사의 상징인지도 모릅니다.

오래 전에 경제성을 잃은 서해화력은 2018년까지 철거예정이고 그자리에 동백정해수욕장을 복원키로 했다는 서천군 문화해설사의 설명은 그곳으로 소풍을 다녔던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부디 해안가 깊은 곳에 백옥의 모래들이 살아 있기를 빌었습니다.

중앙정부의 서천에 대한 배신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서해안 시대에 대비해 금강어구인 군산과 장항을 산업단지로 조성한다는 군장산단 계획이 전두환 정부 때인 1987년에 세워졌습다. 1990년 먼저 시작된 군산 산단공사는 이미 완공돼 2차공사가 진행 중이나, 장항 산단은 설계 측량 등 17년 동안 공사 시늉만 내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들어 아예 백지화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정치인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비인에서 했듯이 기공식만 수없이 하면서 각종 선거에 장항산단계획을 이용했습니다. 산단 계획 폐기에는 갯벌을 살린다는 환경논리가 동원된 것이 비인공단과 달랐을 뿐입니다.

서천의 개발이 제대로 추진됐다면 서천은 물론 충남 서남부 해안지역 및 부여 논산 공주 등 금강 내륙지역까지 효과가 미쳐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루는데도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울산공단이 비인공단에 비해 입지적 우위가 있었다면 수심이 깊다는 것 외에 당시 한국의 주요 교역상대가 일본 미국 유럽 등 대양 쪽이었으므로 물류적 우위도 인정됐을 것입니다.

지금은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 일본과의 교역을 합한 것보다 많아진 황해시대입니다. 중국과 가까운 금강 어귀는 어느 곳보다 산업적 입지에서 우위를 지니게 되었음에도 정부는 과연 서천의 그런 입지를 살릴 생각이 있는 것인지요.

서천 인구의 지속적인 감소 외에 20년 전에 머물고 있는 낡고 느린 장항선 철도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입니다. 장항선의 종착역은 전북의 익산으로 바뀌어 옛날의 장항선이 없어진 터에,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운행 편수도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는 KTX화의 성과로 속도 혁명이 눈부시지만, 장항선의 KTX화는 기약도 없습니다. 서울~장항 간 거리는 222㎞로 서울~부산의 절반밖에 안 되지만 소요시간은 가장 빠른 새마을호가 3시간 5분으로 서울~부산 간 KTX의 2시간 반보다 더 걸립니다.

장항선의 흐름을 경부 호남선과 맞추는 것이 국토의 균형발전입니다. 대한민국의 중서부를 약동하게 하는 일은 서천에서 시작돼야 합니다. 고향에 가서 늘어만 가는 빈집을 볼 적마다 가슴에 쌓였던 탄식을 동료 선배 언론인들에게 넋두리라도 하고팠던 고향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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