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신용평가가 기술력이나 미래성장성보다는 재무건전성에 무게를 두고 있어 중소기업 자금난의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손경식)가 최근 전국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발표한 ‘우리나라 기업신용평가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업체의 70.4%가 ‘기술력 및 미래수익창출력에 대한 금융권 신용평가결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은 이같이 느끼는 이유로는 ‘금융권의 기술가치평가 모형 부재’(76.5%)를 가장 먼저 꼽았고 다음으로 ‘특허권 등 기술력 관련 자료 불인정’(16.1%), ‘기술심사인력 부족’(5.9%) 등이라고 답했다.

이를 반영하듯 기업들의 98.5%는 ‘금융권의 기술신용평가시 기술력이나 미래수익창출력에 반영 비율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은 개선과제로 ‘은행 경영실적 평가시 기술대출실적 우대’(27.8%), ‘기술관련 신용보증규모의 지속 확대(24.7%)’, ‘금융기관의 기술대출관련 부대비용에 대한 세제지원 등 인센티브 강화’(21.5%) 등을 주장했다.

또 기업대출심사와 관련된 문제점으로 ‘재무제표 위주의 평가’(41.3%), ‘담보위주 평가’(38.3%), ‘과다보증 요구’(10.4%), ‘과다 대출서류 요구’(9.0%) 등을 지적했다.

경기도 광주의 전자부품 업체 김 모 사장은 자금난으로 고민중이다. 현재 7명의 직원들이 연구·개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신규대출이 어려운 탓이다. 김 사장은 “매출이 줄은 것도 아니고, 은행이자도 또박또박 냈다”면서 “그런데도 은행에서 지난해 재무제표가 나빠져 회사신용등급을 BB에서 CC로 떨어뜨렸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최근 신기술을 인정받아 외국업체로부터 신규제품 샘플까지 요청받았지만 신규대출이 어려워 생산을 못해 물거품이 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구 섬유업체 백모 사장은 “최근 시중은행에 유동성 지원을 신청했더니 은행 담당자가 신용등급이 하락했다며 부동산을 추가로 담보하고 매달 500만원의 적금에 가입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최근 신제품 출시와 함께 조금씩 섬유업황이 나아지고 있는데도 신용등급 하락으로 자금사정이 악화되고 있어 회사가 흑자도산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한상의는 기술력 평가를 제고하기 위해 ▲ 기술가치평가 모형 개발 및 전문인력 확충, ▲ 유망기업에 대한 간접 금융지원 확대, ▲ 기술데이터 축적 및 관리 전문화, ▲ 기술대출을 확대하는 은행에 대한 정부지원 확대 등 4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우선 기술가치평가 모형을 새로 개발하고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현재 은행권이 신용등급을 산정할때 대부분 과거 재무제표를 기초로 한다”면서 “수익성 등의 미래지향적인 평가요소를 담은 기술가치평가 모형은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유망기업에 대한 간접 금융지원 확대도 주장했다. 보고서는 “현재 벤처캐피탈 중심의 직접금융 시장기반 제도가 IT거품이 꺼지면서 완전히 침체되었다”면서 “정부에서는 기술개발 초기 단계에 있는 유망한 기술을 가진 기업들의 자금사정을 감안하여 일부 출자 등 간접적인 금융지원 방식을 통해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술데이터를 축적해 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현재 선진금융기관들은 기업신용정보 전문기관인 CB(Credit Bureau)사를 최대한 활용하여 최대한 신용평가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기술보증기금, 한국기술거래소 및 한국기술기업가치평가협회 등 관계기관들의 유기적 협조를 통해 기술등급의 활성화하고 신용평가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지원을 당부했다. 보고서는 “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은행경영실적 평가시 기술대출 규모를 확대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보다 우대해 주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 은행들이 BIS비율 때문에 어렵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평가 확대를 위해 은행들이 기술평가 전문인력을 새로 뽑거나 기술평가모형을 개발할 경우 이에 대한 세제지원을 확대하는 등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최근 유망한 기술이 있으나 경기침체로 인해 신용등급이 하락하여 경영애로를 겪는 기업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중소기업 신용평가시 기술력을 비롯하여 특허권, 브랜드 등의 무형자산과 미래수익창출력의 반영비율을 확대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정부가 신속히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의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기업신용평가 문제점 및 개선방안 건의문’을 내주중 금융위원회 등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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