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재근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 모양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있다.” 톨스토이의 비극적 러브스토리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여성으로서 행복해 보이는 조건 대부분을 갖췄지만, 엇갈린 사랑으로 괴로워하다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톨스토이는 이 문장을 통해, 온전한 행복을 위해서는 모든 조건을 빠짐없이 갖추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 구절은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야생동식물은 한가지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가축·작물이 되지 못하고 야생으로 남게 되는 현상을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 명명하면서 유명해졌다. 요즘은 정치, 교육,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되는데, 창업생태계에 이 법칙을 대입해보고자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은 창업 1년 후 40%가 사라지고, 5년 후 70%가 사라진다. 그 실패 뒤에는 무수한 원인이 있다. 직원 급여일, 은행이자 납부일, 임차료 지급일, 납품기한, 조세공과금 납부기일 등을 놓치기 시작하면 창업가는 고단해진다.

사업아이템, 시장조사, 안정적 자금조달, 상권분석, 지식재산권, 경영자 사업수완, 신뢰할 만한 파트너 등 전략적 요소도 두루 챙겨야 한다. 여기에다 상시화된 위기는 불확실성을 높이고, 영세한 창업가의 예측과 준비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어느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생존조건

작은 배에 불과한 창업가에게 IMF, 사스, 글로벌 금융위기, 신종플루, 엔저, 세월호 사고, 메르스와 같이 쉴 새 없이 거칠게 밀려오는 파도는 가혹하다. 창업 후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이러한 무수한 실패 원인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사라진 70%와 함께 휩쓸릴지 모른다. 그래서 창업생존의 ‘안나 카레니나 법칙’은 숨 막히고 음울하게 들린다. 창업가의 도전을 아름답게만 바라볼 수 없고, 정부의 창업지원이 만병통치약이 되길 기대할 수도 없는 사정이 여기에 있다.

실제로 정부의 창업정책은 촘촘하고 합리적인 지원의 틀을 갖추고 있다. 기업의 성장단계와 산업분야, 정책의 전달체계를 모두 고려한 결과다. 그런데도 창업 및 기업가정신에 반전의 기미는 아직 미미하다.

젊은 벤처 CEO 비중은 늘지 않고, 기업가정신 지수(GEDI Index)도 세계 32위에 불과하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아직도 국민 절반은 자녀의 창업에 반대한다. 정부에게 가뭄에 단비 역할을 기대할지언정, 소멸한 70% 기업의 실패 원인을 일일이 찾아내 지원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관점의 전환으로 답을 찾아야

답을 찾기 어려운 창업생존의 ‘안나 카레니나 법칙’앞에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완벽한 존재로 만든다는 긍정적 역설이 가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이를 통해 수많은 실패의 원인이 서로 상쇄될 수 있도록 집단지성과 협업화를 지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상공인 협동조합 활성화’나 ‘선도벤처기업 연계 지원’과 같이 자발적 조직화와 상호학습을 지원하는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지원의 규모나 개수만으로는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파레토 최적’에 이를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세계 13위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에서 모든 창업기업이 만족할만한 깨알 같은 맞춤형 지원사업을 지속해서 양산해내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TIPS(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지원프로그램)와 같은 민관협력 창업플랫폼의 역할을 눈여겨볼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위기가 상시화된 시대의 창업기업은 ‘매출채권보험(간편보험)’이나 ‘손해공제(파란우산공제)’ ‘무역보험(중소기업 플러스 단체보험)’과 같은 선진 위험관리기법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파도에 맞서 본 자만이 바다의 깊이를 안다. 그 깊이를 알고 나면 다음 파도를 대비할 수 있다. 그렇게 창업기업은 수많은 실패 원인을 극복하고 생존해갈 것이다. 여기에 협업화, 민간 창업플랫폼, 선진 위험관리기법이 희미하나마 빛을 비추는 등대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이 칼럼은 '중소기업뉴스'에도 기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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