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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칼럼>뉴 노멀(New Normal)을 어이할꼬
2015년 07월 10일 (금) 09:10:20 임종건 webmaster@smedaily.co.kr
   
▲ 언론인 임종건

새로운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니 나쁜 것의 전형이 될 수도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변화상을 설명하는 용어 ‘뉴 노멀(New Normal : 새로운 정상상태)’ 이 그 중 대표적입니다.

이 말을 퍼뜨린 사람은 미국의 투자회사 알리안츠 소속의 펀드매니저 모하메드 엘-에리안입니다. 그는 저서 ‘시장이 충돌할 때(When Markets Collide)’를 통해 2008년 이후 세계경제는 저성장 저소비 고실업 규제강화 빈부양극화의 세상이 되었고, 이것은 정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만큼 장기적인 추세라고 했습니다.

몸집이 커지면 움직임이 둔해지기 마련입니다. 선진국 경제의 저성장은 일차적으로는 경제의 규모가 크기 때문입니다. 저소비도 소득의 불균형,  인구의 고령화 추세와 연관성이 있습니다. 선진국 경제에서 저성장 저소비는 그래서 ‘정상’으로 간주될 여지가 있습니다.

고실업은 저성장 저소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고용 없는 성장’까지 거기에 가세해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이런 문제가 기업의 자율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정부나 정치인들은 규제강화를 시도하지만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한국 경제도 과거 개발 연대처럼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누리기는 어렵습니다. 올해의 경제성장률 예측치도 3%대에서 계속 하향 추세인데 메르스 여파로 하반기에는 2%대로 떨어진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한 세대 이상 10%대의 고도성장을 구가해 오다 근년 들어 7%대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중국도 뉴 노멀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뉴 노멀의 중국식 표기는 ‘신상태(新常態 : 신창타이)’인데 뉴 노멀에 대한 타개책으로 제시된 것이 대외적으로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고, 대내적으로는 환경과 조화하는 성장 및 부패척결 정책입니다.

미국 다음의 경제 규모로 G2 국가가 된 중국의 7%대 성장은 마이너스 성장에서 기껏 3%대인 선진국들에 비해 양호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중국은 중국과 유럽을 육상과 해상으로 연결하는 야심찬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세계 57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했습니다.

우리나라야말로 뉴 노멀 시대의 전형을 보여주는 국가입니다. 저성장 저소비도 그렇지만 고실업 빈부양극화에서는 OECD 국가 중 단연 선두 급입니다. 그 결과 가계부채 1,000조의 나라, 4대 그룹의 자산이 GDP의 65%대에 이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수년 전 까지만도 일본 경제의 20년 장기침체가 우리에게 위안거리는 됐지만, 아베노믹스의 성과로 한국을 앞서는 분야도 있습니다.

뉴 노멀에 대한 한국형 대책은 창조경제입니다. ICT기술을 이용한 서비스산업 육성을 축으로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것입니다. 저금리를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이 쓰고 있는 방법을 흉내내고 있지만 큰 효과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정치권에선 뉴 노멀은 안중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야 정당의 이름이 새누리 새정치연합 등 ‘새’가 들어있는데, 정치는 새롭기는커녕 구태의연하기 그지없고 그런 모습이 일상화 되었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말하지만 비정상을 정상처럼 간주하는 게 한국의 정치입니다. 그러려면 당명에서 ‘새’자나 빼면 좋겠습니다.

최근 뉴 노멀을 참담한 어조로 입에 올린 사람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지난달 17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시의 흑인교회에서 백인 청년이 9명의 흑인 신자를 총기살해한 증오범죄 사건에 대해 그는 “나는 이런 사태가 미국 사회에서 뉴 노멀처럼 되는 것을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구상의 어떤 선진국에서 이런 종류의 살인이 이렇게 자주 발생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어느 나라에든 난폭하고, 증오에 차 있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지만 미국처럼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총기로 넘쳐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 속에는 2년 반 전 코네티컷 주의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로 20명의 어린 학생들이 살해됐을 때 제출된 총기 규제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듯이,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총기규제가 무위로 그칠 것이라는 체념이 짙게 배어있었습니다.

뉴 노멀은 이처럼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말이 됐습니다. 그 고통은 사회적 약자그룹에 더 클 것입니다. 그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라니 사회적 약자들에게 체념을 주문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체념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입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탐욕적 자본주의에 반기를 든 ‘월가를 정복하라’는 약자들의 외침이 일었으나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주장한 1% 부자 대 99% 빈자라는 이분법적인 빈부 대결론이 99%의 복잡다기한 구성 요인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약탈적 자본주의를 보고 공산혁명을 꿈꿨으나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의 도전을 받아 진화하면서 면역력을 키워왔습니다. 시장경제보다 나을 것 같은  체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시장경제에 뉴 노멀을 극복할 새로운 백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뉴 노멀의 전형이 되어버린 한국의 자본주의는 제대로 성숙하지도 못한 채 중병이 든 꼴입니다. 선진국들도 해결하지 못한 뉴 노멀을 후진적인 정치와 경제 체제로 헤쳐 나가야 할 한국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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