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행한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담화를 놓고 식민지 및 전쟁과 침략에 대한 사죄냐 아니냐는 논란이 있지만 필자는 이 담화의 키워드는 “과거사와 무관하게 태어난 전후세대의 아들이나 손자, 그 뒤 세대의 자손들에게도 계속 사죄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워서는 안 된다”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 언론인 임종건
그 역시 전후세대로서 사죄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던 터였을 겁니다. 일본 인구의 80%가 넘는 전후세대에게 과거사의 짐을 벗겨주겠다는 선배 전후세대로서 그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과거사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가해자 측보다는 피해자 측에서 더욱 절실한 것입니다. 가해자는 쉽게 잊을 수 있겠지만 피해자에겐 용서한다 해도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인데다, 가해자에 대한 적개심을 자극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기 비하와 조상에 대한 원망의 마음까지 품게 합니다.

식민지배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정치·경제적으로 자주독립 국가를 이룩한 한국의 전후세대도 보다 당당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필자를 포함한 한국의 전후세대가 과거사에서 해방돼야 할 이유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일본은 기회만 있으면 식민지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망언을 일삼았습니다. 독도 문제로, 역사교과서수정 문제로, 야스쿠니 참배로, 군대위안부 문제로 우리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아베정부 들어서는 안보관계법 개정이라는 더욱 노골적이고 완결적인 방법으로 과거 회귀를 꾀하고 있습니다.

아베는 “앞선 전쟁에서 우리가 한 일에 대해 반복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기분을 표명해 왔다”며 “그런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고 자신의 뜻으로가 아니라 남의 말을 하듯이 사죄했습니다.

그런 입에 발린 사과도 주로 태평양 전쟁 상대였던 미국을 향한 것이었고, 이번에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부분적으로 언급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습니다. 사죄 대상은 전쟁과 침략에 관한 것일 뿐 식민지 지배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베의 미국에 대한 사죄는 지난 6월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이미 최대한 낮은 포복자세로 표명됐습니다. 이번 담화에 대해 백악관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환영’을 표하고 일본을 ‘세계에서 모범적인 나라’라고까지 치켜세운 것은 아베 정부의 필사적인 대미 로비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민지 지배에 관한 그의 인식은 궤변 수준이었습니다. 19세기에 서방 열강의 식민지 정책이 아시아로 밀려들 때 일본이 명치유신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수립해 독립을 지켰다는 것은 자화자찬이지만 맞는다고 치겠습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면서, 러시아의 식민지 지배가 미치지도 않았던 아프리카까지 끼워 넣어 전쟁승리를 미화한 것은 터무니없는 견강부회입니다.

용기를 주었다기보다는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에 속았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일제 통감부의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도 속았음을 깨닫고 나서의 일이었습니다.

안 의사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동양평화의 등불이 되어주길 기대했으나 승리 직후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나서는 것에 분개해 이토를 암살했다고 그의 미완의 유고 ‘동양평화론’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고종황제를 겁박하고, 매국노들을 앞세워 을사늑약을 체결한 것이나, 독도를 자국령으로 한 것도 러일전쟁 직후였습니다. 서방의 식민지 세력들이 하던 짓을 한반도에서 더 악랄하게 시도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은 ‘늦게 배운 도적질’이었습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의 강화조약인 베르사유조약에서 결의된 민족자결주의로 인해 열강의 식민지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돼 궐기한 것이 1919년 3·1독립운동이었습니다. 일제는 우리의 독립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뒤, 오히려 식민지를 만주로 넓히는 등 시대 흐름에 역행했습니다.

아베는 전쟁으로 300여만 명의 자국민이 생명을 잃었다고 했지만 일제 식민지기간동안 한국인 징용자 500만 명 중 사망한 300만 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그들을 천황을 위해 몸을 던진 식민지의 ‘황국 신민’ 쯤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한일 간에 최대의 외교적 갈등요인인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베는 “전쟁의 그늘에서 명예와 존엄에 상당한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은유적 표현을 동원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위안부는 정부에 의한 강제동원이 아니라 민간에 의한 인신매매라고 기를 쓰고 발뺌한 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아베 담화에 대해 “아쉬움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일본 정부는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공언을 일관되고 성의 있는 행동으로 뒷받침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역대 내각의 입장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아베 자신의 다짐’으로, ‘전쟁으로 상처 받은 여성’이라는 표현을 ‘군대 위안부에 대한 인식’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모욕적이기도 한 아베의 역사인식이 고쳐지지 않는 한 그로부터 의미 있는 행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말로는 일본의 전후세대에게 과거사의 짐을 벗겨주겠다고 하면서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아베의 심중은 과거사의 시대가 영광의 시대였음을 후세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자기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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