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8년전 '1조 사재출연' 약속하고 안 지켜
삼성 삼남매 승계 가속화 비판…사회적 책임 다해야

[중소기업신문=김두윤 기자] ‘삼성특검’은 과연 끝난 것일까?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삼성그룹 비자금사건으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특별사면을 받으면서 법적판단은 일단락됐다. 9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삼성특검의 수사결과가 발표된 뒤 이 회장이 스스로의 잘못을 사죄하고 눈물로써 국민에게 내밀었던 ‘1조원대’의 사재출연 약속이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약속 불이행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재벌총수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13년말 이노션 지분 전량을 정몽구재단에 넘기면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연봉 301억원을 반납하고, 사회적기업 설립에 사재 100억원을 기탁했다. 대림산업 이준용 명예회장은 최근 특별한 문제가 없음에도 자발적으로 사재 2000억원을 통일기금에 내놔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남은 것은 이 회장이다. 하지만, 현재 이 회장이 의식 불명에 빠져 스스로 이 약속을 이행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국내 최대 재벌 총수의 대국민 약속이 허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사건이 터지자 이건희 회장은 1조원 사재출연을 천명했지만 9년이 흐른 현재까지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반면 이재용·부진‧서현 남매의 3세대 승계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부의 대물림'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왼쪽)이 2008년 비자금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하며 1조원 사재출연을 약속하고 있고, 이재용 부회장이 올해 6월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전국 확산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주목해야할 대목은 그 사이 이 회장의 불법과 편법으로 얼룩이 진 ‘부의세습 노력’은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 8월말 기준으로 이 회장 자녀의 자산 승계율이 50%를 넘어섰다.

‘삼성승계 방정식’의 중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있다. 이 부회장은 합병비율 불공정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근 원안대로 가결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그룹 지배력을 한층 공고히 했다. 사실상 지주사 입지에 오른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지분 16.5%를 보유한 이 부회장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이번 합병을 통해 당시 현금 매입 시 8조원대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됐던 핵심계열사 삼성전자 지분 4.1%의 지배력을 돈 한 푼들이지 않고 손에 쥐는 효과를 보게 됐다.

승계 작업이 순항하면서 ‘이재용 삼성’ 시대가 점차 또렷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을 대표해 공식적인 자리에도 섰다. 최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근) 확산의 주범으로 각인된 삼성병원의 운영주체인 삼성공익재단 이사장의 법적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이 부회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민에게 고개를 숙인 바 있다.

이는 뜻밖의 효과로 이어졌다. 당시 뒤늦게나마 이 부회장이 직접 공식사과를 했다는 점에서 삼성으로 향하던 비난 수위가 낮아졌다. 더욱이 일각에서는 관리책임을 져야할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삼성에 책임을 떠넘기려했다는 비판이 일면서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의 주가가 한층 치솟았다.

삼성가의 '부의대물림' 작업이 착착 진행되면서 ‘이재용 삼성’은 날로 공고해지고 있지만 이 회장의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은 저만치 밀려나 있다. 아버지의 편법승계의 수혜를 입은 이 부회장은 ‘총수 이재용’을 향해 날개를 펴고 있지만, 아버지의 '사회적 약속'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셈이다. 법과 원칙이 바로서야 하는 민주국가에서 가능한 일일까.

분명한 것은 이런 사회적 약속의 외면이 ‘반 삼성’ 기류형성의 촉매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가의 부의대물림이 속도를 낼수록 이 회장의 불법이 깔린 ‘부당이득’을 반드시 환수해야한다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경실련은 앞서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이 재계 서열 1위 그룹이 되기까지는 그룹 자체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정책적 특혜와 국민들의 희생이 컸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야권에서는 삼성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발행으로 올린 이 부회장의 천문학적인 상장차익을 범죄수익으로 규정해 환수하자는 법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삼성 브랜드 순위가 세계 7위에 올랐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해소를 위한 사회적 합의없이 '글로벌 삼성'의 명성이 지속될 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불법에서 비롯된 이 회장의 사재출연 약속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이제 공은 그 최대 수혜자인 이 부회장에게 넘어갔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