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에 원금 뜯기고, 中에 담보 뺏기고도 제대로 대응 못해
'국부유출' 부추기는 은행들 저질심사 능력 도마 위

▲ 매각 입찰 무산으로 STX다롄(大連)이 청산절차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지급보증을 한 국내 은행들의 손실도 눈덩이가 될 전망이다. 사진은 STX다롄 조선소 전경<출처 : STX>
[기획취재팀] = STX다롄(大連) 매각 입찰이 무산되면서 청산 절차를 밟을 전망이다.

2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STX다롄 매각 입찰 무산으로 채권은행들(산업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농협)은 원금회수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미회수 채권금액만 약 1800억원에 이른다.

지난 2007년 국내 은행들이 총 29억달러(약 3300억원)을 투자한 STX다롄조선소는 엔진생산, 소재와 부품 가공 등 조선 관련 모든 공정이 가능한 일관 조선소로 세계 선박 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출발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조선업계가 불황을 맞으며 일순간 사고사업장으로 전락되면서 건조중인 선박 전체가 중국 대련에 발이 묶였다. 수천억대의 선박이 완공을 앞두고 고작 수십억원의 고철 덩어리로 변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문제는 국내 채권은행들이 STX조선해양이 STX대련조선에 하도급 해 건조 중이던 배에 선수금에 대한 지급보증(RG)을 해주고도 제대로 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데 있다. RG(지급보증)는 보통 선주가 선박을 주문할 때 선수금을 지급하는 데 선박이 계약대로 인도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은행에 RG보험을 가입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선주는 RG발급 은행에 실행을 요구하고 은행은 이를 고스란히 선주에 지급하고 부채를 떠 앉는 구조다.

국내 채권은행이 권리주장에 애를 먹는 데는 담보물인 선박이 중국 대련에 있기 때문이다. 채권은행 측은 RG 대지급에 따른 담보처분에 대한 우선권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공문 한 장을 보내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서로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설상가상으로 대출 당시 담보권설정계약시 중국 외환관리당국에 등록(계약 후 15일 이내)을 해야 하는데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이를 간과하고 계약하면서 중국으로부터 담보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산업은행은 STX다롄 파산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를 확인했지만 타 채권은행들에 통보하지 않은 데다 당시 법률자문도 지금은 파산한 중국 현지 소형 로펌을 이용하는 등 중대한 과실을 범했다. 이에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지난 5월7일 산업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STX대련조선소 야드에는 현재 중국은행이 RG대지급을 한 건조 중인 선박 8척과 한국의 은행이 RG대지급을 한 건조 중인 선박 6척(낙찰된 D1093제외)이 남아 있다.

▲ STX조선해양 400k톤(t)급 초대형 철광석 운반선(VLOC)<출처 : STX>
이중 우리은행이 대지급한 선박 D1707은 세계에서 가장 큰 400K 벌크선(일명 '발레막스')으로 현재 2차까지 유찰됐고, 만약 3차 경매에까지 유찰되면 스크랩(선박 해체 후 고철가격) 수준으로 수의계약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1억달러(약 1200억원) 가치가 있던 선박이 700만달러(약 80억원)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나마 고철값으로 받은 푼돈 700만달러도 우리 채권은행이 이를 찾아오기 위해서는 중국에 '공탁금청구소송'을 통해 정당한 소유권이 인정돼야만 찾아올 수 있다.

반면, 막대한 피해규모가 예상되는 위기의 상황에도 최근 호주 웰라드 그룹과 거래(D-1093 매각)를 성사시킨 NH농협은행은 지난 10월20일 에스크로우 계좌에 합의금 중 1차분으로 450만달러를 회수했다.

그러나 그 외에 나머지 채권 은행들은 채권회수를 위한 매각 협상조차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부유출 논란'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발레막스) 매각을 포기하고 있어서 현재 상황을 잘 모르고 있다"며 "우리가 수주한 D1707 (발레막스)의 경우 특수한 선박으로 처분을 하고 싶어도 살 곳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채권은행인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 선박 매각은 우리가 나선다고 해도 입찰자가 없고 시기적으로 조선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 수익성도 떨어져 신경을 쏟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농협의 경우 회사의 노력도 있었고 선주도 완전히 건조해 매입하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한 금융 업계 관계자는 "중국 투자는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며 "은행들이 이렇게 큰 피해를 입고도 쉬쉬하는 이유는 '부실심사 논란'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