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부담에 소득 정체…소비성향 역대 최저
생활비 쪼들리는 가계, 보험해지·약관대출 늘어
"고용안정, 소득증대 등 근본 대책 마련해야"

 

▲ 경기불황 속에 가계 빚이 늘고 소득은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지갑을 닫는 '소비절벽'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고용안정 및 가계의 실질소득 증대 등 근본적인 소비진작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에 있는 한 대형 할인점에서 시민들이 쇼핑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

[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지갑을 닫는 가계가 늘고 있다. 정부의 각종 소비진작 정책에도 불구하고, 가계 빚이 급증하는 데 반해 소득은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서민가계의 씀씀이는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가계의 여웃돈이 줄자 보험을 깨는 '생계형 해약'도 급증하고 있다. 보험계약의 중도 해지에 따른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서라도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서민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기존에 갖고 있던 보험부터 정리하고 나선 탓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가계대출이 1160조원을 돌파한 가운데 늘어나는 가계 빚에 따른 극심한 소비위축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가계의 실질소득 증대 등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빚은 늘어만 가는데 가계소득은 제자리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잠정치)은 1166조원으로 2분기 말보다 34조5000억원 증가했다. 지난 7∼9월 월평균 증가폭은 11조원에 달한다. 현재의 가계부채 증가 추세로 비춰볼 때 가계부채 총량은 올해 안에 1200조원을 넘어설 공산이 크다.  

가계 빚이 급증하면서 소비는 위축되고 있다. 올 3분기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중 소비지출액 비중을 나타내는 평균 소비성향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3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중 소비지출액 비중을 나타내는 평균 소비성향은 71.5%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포인트 하락했다. 가계가 쓸 수 있는 돈이 100만원이었다면 71만5000원만 쓰고 나머지는 저축했다는 의미다.

가계소비가 위축된 데는 가계소득 증가세가 둔화된 영향이 크다. 올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41만6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소득 증가율은 0.0%로 아예 정체 상태에 빠졌다.

역대 최저치로 떨어진 금리 수준에도 불구하고 가계저축률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가계 부문의 순저축률은 2013년(4.90%)보다 1.2%포인트 높아진 6.09%를 기록했다.

가계저축률 증가세는 올해에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가계부문의 저축이 늘면서 기업·정부·가계를 모두 합한 총저축률은 올 1분기 36.5%로, 1998년 3분기(37.2%)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2분기 총 저축률은 35.3%를 기록, 1분기보다 1.2%포인트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임진 연구위원은 '최근 저축률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가계저축이 늘어나는 것은 경제성장, 고용, 임금 등에 대한 불안심리에 따른 '예비적 저축' 증가에 일부 기인한 것"이라며 "이는 소비위축 및 내수회복 지연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 팍팍한 살림에 보험 깨는 가계 늘어

이처럼 가계빚이 늘고 소득수준은 제자리에 머물면서 보험을 깨는 서민들도 늘고 있다.

생명·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국내에서 영업중인 25개 생명보험사의 해지환급금은 12조3360억원으로, 전년동기(11조3781억원) 대비 9579억원(8.4%) 증가했다. 보험해지를 신청한 건수도 지난해 282만6250건에서 올해 301만5486건으로 18만9236건(6.7%) 늘었다.

보험사별로는 삼성생명이 2조8243억원으로 해지환금급 규모가 업계에서 가장 많았다. 이어 한화생명(1조5109억원), 농협생명(1조3665억원), 교보생명(1조3164억원), 흥국생명(6179억원), 신한생명(5777억원), 동양생명(5745억원), 알리안츠생명(4810억원) 등의 순이었다.

손해보험업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올해 1~7월까지 31개 손해보험사의 해지환급금은 10조112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조7324억원)에 비해 1조3797억원(15.8%) 늘었다.

손보업계 1위인 삼성화재의 해지환급금이 2조8703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동부화재(1조6720억원), 현대해상(1조6065억원), KB손보(1조3736억원), 메리츠화재(7814억원), 한화손보(5877억원), 농협손보(4081억원), 흥국화재(3762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불황형 대출'로 불리는 보험약관대출은 증가하는 추세다. 올 6월 말 기준 생보사의 약관대출 취급액은 39조8573억원으로 지난해 6월 말(39조5932억원)에 비해 2641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손보사의 약관대출취급액은 8조2721억에서 9조812억으로 8091억원 가량 증가했다.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마지막 보루인 보험을 중도에 해지하거나 10%대의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보험사에서 급전을 빌리는 계약자들이 동시에 늘어나면서 경기침체 여파로 생활비에 쪼들리는 서민가계가 증가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정부가 소비 활성화를 위해 휴가 장려나 대규모 세일 등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현재와 같이 고용이 불안하고 소득이 정체된 상황에는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일자리 창출과 가계의 실질소득 증대 등 고용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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