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걱정 내려놓을 수 있는 시계 고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작업 도구도 직접 연구해 만들어 사용…수리 보증기간 최대 5년

▲ 자신이 직접 만든 확대경을 쓰고 명품시계를 수리하는 김주복씨. 그는 모든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시계 고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진/이지하 기자

꺾일 줄 모르는 경기불황에 희망퇴직 등 감원 칼바람이 수시로 몰아치는 요즘에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지 오래다.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은 창업에 성공한 '대박 사장님' 소식에 귀가 솔깃해지고,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은 오늘도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평생을 한 직장에서, 한 직업에 자신의 인생과 열정을 쏟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되는 건 전혀 없어요. 잘했다 싶죠. 앞으로도 10년은 더 시계 수리공으로 일하고 싶어요." "50년이 넘는 세월을 오직 시계 수리 하나 만을 고집하며 외길을 살아왔어요. 욕심이 있다면 영원히 시계 수리공으로 남는 거지죠."

52년째 명품시계 수리를 하는 김주복(70)씨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남달랐다. 오늘도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는 그의 말에는 시계 수리공으로서의 자부심과 일에 대한 열정이 배어 있었다.

김씨는 명품시계를 고치는 데 있어 국내에서 손꼽히는 '시계 장인(匠人)'으로 통한다. 세계적인 시계회사의 AS 보증기간이 대개 1년을 넘지 않지만, 그의 보증기간은 최대 5년이다. 그만큼 시계 수리 기술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전에 시계를 고치고 간 손님이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제가 그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정말 미안해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시계를 보니 단번에 ‘내가 고쳤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손님에 대한 기억도 다시 살아나요. 정말 신기하죠."

▲ 소공동 지하상가 4번 출구 계단 중간에 김주복씨의 시계 수리점이 있다. 바쁜 발걸음에 쉽게 지나치기 쉬운 곳이지만, 가게 정면에 붙어 있는 '수리경력 52년'이라는 문구가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라도 멈춰 서게 한다. 사진/이지하 기자 

김씨가 일하는 곳은 서울 소공동 지하상가다. 4번 출구 계단으로 조금 내려가면 한 평 남짓한 그의 가게가 있다. 가장 먼저 가게 정면에 붙어 있는 '수리경력 52년'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손님이 찾아가지 않은 명품시계부터 오래된 궤명종시계, 작업에 필요한 공구들이 가득했다. 그가 작업을 하고 있던 나무책상은 그야말로 골동품이었다. 이곳에 자리 잡은 1990년부터 시계 수리대로 써 왔다는 나무책상은 오랜 세월을 말해주 듯 모서리에 상처가 나고 반질반질 손때가 묻어 있다.

"이 책상에서 못 고치는 시계는 없어요. 손님이 맡긴 시계는 모두 내 손에서 생명을 얻어가요." "시계는 떼가 많이 끼는데, 제가 시계 안쪽까지 깨끗하게 청소해 주죠. 하하하."

▲ 김주복씨의 소박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시계 수리대. 그는 26년 동안 이 자리에서 명품시계 고치는 일을 해왔다. 사진/이지하 기자 

그는 시계 수리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부속품 하나하나 광을 내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나사까지도 꼼꼼히 닦는다. 그가 수리를 마친 시계 안은 마치 새로 산 시계처럼 깨끗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광이 났다.

노하우를 묻자 김씨는 기자에게 작업대 한켠에서 지우개를 꺼내 보여줬다. 시계 주인이 그 안을 들여다볼 일도 없는 데다 사소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그는 작은 부속품들을 지우개로 조심스레 닦는다. 그래야 시계의 수명이 오래갈 수 있단다.

명품시계는 물론 일반시계까지,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시계 중 그의 손을 안 거쳐 간 시계는 손에 꼽을 정도다. 김씨는 부품을 자신이 직접 제작하기 힘들거나 구하기가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못 고치는 시계는 없다고 자신한다.

"오래된 골동시계나 작동방법이 특이한 시계들은 잘못 만지면 큰일나요. 수많은 부품이 맞물려 정밀하게 움직이는 시계의 내면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랜 세월 익숙해진 손놀림에다 섬세한 손길도 필요하구요."

"수리하기 까다로운 시계라도 저는 몇날 며칠을 고민해서 결국 고쳐내죠. 시계를 고치기 위해 200번 넘게 뜯어본 적도 있습니다."

그는 시계 수리 공구를 스스로 제작해 사용한다. 시중에서 파는 공구들은 수리할 때 잔 기스가 생기고 정교한 작업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 김주복씨는 시계에 조그마한 상처라도 생길까 걱정이 돼 대부분의 공구를 자신이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사진/이지하 기자

"기본적으로 시계를 해체하려면 나사를 풀고 조이는 공구가 가장 중요합니다. 나사 홈에 두께가 딱 맞아야 흠집이 안 나니까요. 이것들은 제가 다 연구해서 새로 만든 거예요."

그가 보여준 시계 수리 공구에는 수십 년 동안 쌓인 경험과 노하우가 담겨 있었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그만의 공구를 설명하면서 그의 입가에는 살며시 미소가 번졌다. 공구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시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김씨는 19살 때 친척이 운영하던 경기도 포천의 조그마한 시계방에서 처음 시계 수리일을 접했다. 시계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긴 그는 청소부터 시작하며 시계 수리공들이 작업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시계수리 교본 하나 구하기도 힘들었다. 밤낮으로 떼를 쓰고 조르면서 기술을 터득해야 했다.

제대 후 서울로 올라온 그는 시계 수리일을 하면서 매일 저녁 2~3시간을 공부한 끝에 1971년 국가검정 시계수리 1급 자격시험에 합격했고, 1979년에 시계수리 1급 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현재 국내에 생존해 있는 시계수리 1급의 실력을 갖춘 장인은 30명이 채 안 된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공휴일에도 점포에 나와 일을 한다. 아침 6시40분쯤 도착해 손님을 맞고 시계 수리일을 하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시계관련 서적을 읽으며 공부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 김주복씨는 일반시계는 물론 명품시계 수리의 '장인(匠人)'으로 불린다. 오랜 세월동안 호흡처럼 몸에 배어있는 손놀림과 섬세하고 노련한 수리 기술은 그의 가장 큰 자산이다. 사진/이지하 기자 

"지금이야 기술이 있으니까 자신감을 갖고 시계 수리를 하지만, 젊었을 때는 손님이 시계를 고치러 오면 겁부터 덜컥 나는거예요. 고치고 가는 길에 다시 돌아올 것 같아서요. 그래서 매일매일 공부했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시계가 나오는데 연구하고 기술을 연마해야죠."

최근에는 자신의 뒤를 이를 후계자도 생겼다. 큰아들인 형욱(39)씨다. 현재 광화문에 있는 시계수리 AS센터에서 일하는 형욱씨는 3년 전 김씨의 밑에서 6개월간 시계 수리 기술을 배웠다. 지금도 고치기 힘든 시계가 있으면 가장 먼저 아버지를 찾는다고 한다. 김씨는 그림까지 그려가며 수리 방법을 알려준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후원자를 두고 있는 셈이다.

김씨는 극심한 취업난에 일자리 찾기를 아예 포기한 청년들에게 따끔한 충고도 했다. "물론 사람이 높은 이상을 갖고 살아야 발전을 하겠죠. 근데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해요. 좋은 직장을 다녀도 40~50대가 되면 명퇴 당해 나오면 살길이 막막하잖아요. 자신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믿을 건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나만의 기술을 갖는 것 밖에 없습니다."

"중간에 일이 힘들다고 쉽게 그만두고, 다른 일에 기웃거리지 말아야 해요. 한 직종에 열정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결과는 분명 좋을 겁니다."

김씨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시계 수리공 일을 선택하고 얻은 것 세 가지를 물었다.

그는 "자부심을 갖고 평생을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평생직업, 일하면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그리고 50년 넘게 밥벌이가 돼 준 소중한 명품시계 수리 기술을 전수해 줄 후계자인 아들이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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