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 "문제 없어"…노조 "명백한 위법, 법원판단 구할 것

▲ 8개 금융공기업의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노조의 동의 없이 의사회 의결만으로 결정된 가운데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의 적법성 여부를 놓고 노사간 입장이 팽팽이 대립하면서 향후 법정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원들이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 로비에서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

[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 금융공기업들이 노조와의 합의가 아닌 이사회 의결이란 방식으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 사측은 노조의 동의가 없더라도 이사회 결의를 통한 성과연봉제 도입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명백한 위법이라며 줄소송에 나설 방침이어서 금융공기업의 성과연봉제 도입이 적법한지를 놓고 치열한 법리다툼이 예상된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월말을 앞두고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 예탁결제원 등 9개 금융공기업 모두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마무리했다. 

금융공기업 중 가장 마지막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한 수출입은행은 노사 합의는 물론 직원들에게 개별 동의서도 받지 않고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을 의결했다. 

이로써 9개 금융공기업 중 예금보험공사를 제외한 8곳 모두 노조와의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게 됐다. 유일하게 노조 합의를 이룬 예금보험공사도 성과연봉제 찬반 투표에서 반대가 62.7%로 나와 부결됐지만 노조위원장이 사측과 합의한 경우다.

정부는 30개 공기업은 올 상반기, 90개 준정부기관은 연말까지 성과연봉제 도입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성과연봉제를 일찍 도입하는 공기업에 경영평가 가점 부여, 성과급 추가 지급 등 인센티브를 주고, 기한 내 성과연봉제 전환을 마치지 않는 곳은 내년 인건비 동결, 임원 성과급 50% 이상 삭감 등 페널티를 마련해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금융공기업 대부분이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취업규칙에 대한 불이익 변경에 있어 필수적인 노조 합의 절차를 무시한 채 이사회 의결만을 거친 것을 두고 법리다툼 등 분쟁의 소지가 큰 만큼 성과주의를 둘러 노사간 법정공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취업규칙은 채용·인사·해고 등과 관련된 사내규칙으로, 현행 근로기준법은 임금피크제처럼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사측이 정한 성과평가 기준에 따라 직원들을 평가하고, 결과에 따라 2~3배에 달하는 차등임급을 지급받는 성과연봉제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이라고 주장한다. 개별 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울 뿐 아니라 성과평가 기준에 따른 줄 세우기로 저성과자를 가려내 '쉬운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꼽는다.

반면 정부는 성과연봉제가 일방적으로 직원에게 불이익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2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해도 임금 총액은 감소하지 않고, 수혜 대상이 더 많을 것"이라며 "누구든 성실히 일하면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성과연봉제의 최대 쟁점은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의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수 있는지 여부다.

올해 1월 고용부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지침을 발표했다.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 변경이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변경의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정부는 이러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지침에 의거해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이 지침이 고용부 근로감독관의 업무 수행에 있어 참고사항일 뿐 법적인 효력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취업규칙이 변경되면 사업장 대표는 고용부에 이를 신고해야 하고 고용부의 근로감독관들은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변경인지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데, 정부가 성과연봉제 도입의 근거로 내세우는 취업규칙 변경 지침은 법적효력이 있는 법규정이 아닌 근로감독관들의 단순한 업무 지침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측이 이런 저런 성과연봉제 도입 절차를 지키고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된다면 노동부에서 이를 불이익 변경으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노동부는 물론 정부도 이에 대해 문제삼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준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회사가 취업규칙을 바꾼 전반적인 과정을 살펴봤을 때 회사의 행위에 나름의 합리성이 있으면 노동자의 동의를 얻지 않았더라도 변경된 취업규칙의 법률적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다. 대법원에서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매우 제한적이고 엄격하고 적용하고 있다.

한 변호사는 "이번 논란의 핵심은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지 여부"라며 "판례가 충분치 않아 판단하기 쉽지는 않지만, 노동계에서 문제를 제기해 법원으로 간다면 성과연봉제 도입을 불이익 변경이 아니다고 인정받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노조는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94조 위반으로 법적 절차를 무시한 행동인 만큼 소송을 통해 사측 결정의 부당성을 다투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현재 내부적으로 법률대응팀을 구성해 고소 대상을 선정하는 등 향후 법적대응을 논의하고 있다"며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외부 법률전문가들과도 구체적으로 논의, 협조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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