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실상 '합병비율 공정성'에 대한 의문 제기
'BW 헐값 발행' 등으로 들끓었던 ‘편법승계’ 논란 재점화

▲ 법원이 구 삼성물산 주주 일성신약과 일부 소액주주 등이 제기한 주식매수청구 가격 조정 소송에서 "합병시 삼성물산이 제시한 주식매수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합병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재점화되고 있다. 사진은 1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 행사장에 들어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소기업신문=김두윤 기자] ‘일감몰아주기’, ‘BW 헐값 발행’ 등으로 얼룩진 삼성가의 ‘부의 세습’이 또 다시 편법 논란에 휩싸였다. 법원이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의 합병시 주식 매수청구 가격이 이재용 부회장 등 대주주 이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너무 낮게 책정됐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두 회사의 합병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표가 다시 커진 셈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31일 구 삼성물산 주주 일성신약과 일부 소액주주 등이 제기한 주식매수청구 가격 조정 소송에서 "삼성물산측이 합병시 제시한 주식매수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는 판결을 내리고 “제일모직 주가가 높게, 삼성물산 주가가 낮게 형성돼야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지배 주주 일가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에서 삼성물산이 건설 수주에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나서는 등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췄다고 의심하는 데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가가 인위적으로 형성됐을 개연성이 있다는 말이다.

지난해 합병은 '이재용 삼성'을 여는 9부 능선으로 평가됐다. 실제 이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현재 17.23%) 자리에 올라서면서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확고한 지배력을 확보했다. 당시 경제개혁연대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업재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합병에 반발한 주주들도 많았다. 구 삼성물산 주주들 중에서는 왜 제일모직 보다 자산이 휠씬 많은 삼성물산이 3분의1비율로 합병돼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며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급기야 삼성물산 경영진의 배임을 거론하며 합병을 반대한 엘리엇에 의결권을 위임하는 소액주주들도 나타났다. 지난 국감에서도 “이 부회장이 제일모직 대주주가 아니었다면 합병비율이 그대로 적용됐을 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이재용 삼성’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끊이질 않았던 '편법승계' 논란을 재점화시키고 있다. 이 회장 승계의 중심이 된 제일모직과 삼성SDS는 일감몰아주기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두 회사가 이 부회장에게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도 문제가 됐다. 결국 이건희 회장은 아들인 이 부회장에게 삼성SDS BW를 헐값에 발행했다는 혐의(불법승계 및 조세포탈)로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두 회사의 상장으로 이 부회장이 막대한 상장차익을 올리면서 부당이득 논란이 불붙었다.

이 부회장은 1996년 부친으로 부터 받은 60억원을 밑천으로 현재 300조원대의 글로벌기업 삼성그룹의 중심에 섰지만, 편법승계 논란은 20년째 끝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국민의 세금과 마찬가지인 국민연금이 특정재벌의 편법상속을 묵인해준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재벌개혁은 재벌의 편법 승계부터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삼성물산 측이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며 재항고해 최종 판단은 이제 대법원 몫으로 넘어갔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