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 정권 입맛에 맞는 낙하산 인사, 정치적 판단에 좌우된 경영간섭은 금융권에 뿌리깊게 박힌 관치금융의 민낯이다. 금융감독을 장악한 모피아(재무관료 출신)는 금융기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치권력은 모피아를 이용해 금융을 제 입맛에 맞게 주무른다.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가 방만경영과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를 낳고, 관치금융 인맥으로 인한 감독소홀이 대규모 부실의 불씨가 되는 일련의 사태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 경제를 위기로 내몬 조선·해운업계의 부실경영, 구조조정 실패로 자신들이 부실해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천문학적인 규모의 혈세 투입의 책임을 온전히 국책은행에 돌리며 '꼬리자르기'에 나선 정부의 모습은 관치금융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국민의 혈세로 되살아난 회사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대우중공업 조선부문이 분리돼 설립된 대우조선해양은 1987년부터 지금까지 7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과 국책은행 자금을 지원받았다. 

2000년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된 이후 대우조선해양의 속은 곪아갔다. 진짜 주인이 없다 보니 내부통제 시스템에 구멍이 났고, 비리가 만연했다. 2013년에 선박자재 납품 대가로 수십억원의 뒷돈을 받는 등 납품업체에 노골적인 '갑질'을 일삼은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이 대거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현재는 분식회계와 경영진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다. 검찰은 대우조선해양의 수조원대 분식회계와 전직 최고경영자(CEO)들의 비리 의혹에 산업은행이 깊이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국책은행 밖에서는 부실 책임을 놓고 네 탓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책은행과 조선·해운산업의 부실을 키운 건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라고 폭로했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원대의 유동성 지원은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 수장이 참석한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됐고, 산업은행은 총대를 메고 들러리만 섰을 뿐이다." 애초부터 시장의 원리는 끼어들 여지조차 없었고, 채권단이 결정해야 할 일을 정부가 나서 좌지우지했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했다. "계열사 인사에 청와대 몫이 3분의 1, 금융당국이 3분의 1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산업은행의 몫이었다." "산업은행은 실질적인 업무 관련자를 보내지만, 당국은 배려해 줄 사람을 보낸다." 대우조선해양 등 산업은행 계열사들이 '모피아', '정피아', '산피아' 같은 낙하산의 놀이터가 됐다는 얘기다.

홍 전 회장의 폭로는 조선해운업 및 국책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자신에게 쏟아질지 모를 비난이나 책임 추궁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자기변명적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그가 언급한 서별관회의는 이전부터 밀실행정의 온상으로 지목돼 온 곳이다. 법적 근거조차 없는 회의체다 보니 기록이 남지 않을 뿐더러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회의 참석자들은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

관치금융의 고리를 끊으려면 잘못된 구조조정으로 수조원의 혈세가 낭비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부터 밝혀내야 한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 끝까지 책임을 추궁하는 시스템 정착이 관치금융 척결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금융당국과 청와대, 정치권이 휘두르는 관치의 칼날에 제2, 제3의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되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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