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상환 부담에 소득은 정체, 소비성향 역대 최저치로 '뚝'
생활비 쪼들리는 가계…보험대출·해지환급금 나란히 급증

▲ 경기불황 속에 가계빚이 늘고 소득은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서민가계를 중심으로 지갑을 닫는 '소비절벽'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에 있는 한 대형 할인점에서 시민들이 쇼핑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

[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 경제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가계의 '소비절벽'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각종 소비진작 정책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 증가와 실질소득 정체 등의 여파로 서민가계의 씀씀이를 보여주는 평균소비성향은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가계의 여웃돈이 줄자 '마지막 보루'인 보험을 깨는 생계형 해약도 늘고 있다. 보험계약의 중도해지에 따른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 서라도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서민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보험부터 정리하고 나선 탓이다.

◆ 가계빚 늘어만 가는데…실질소득은 제자리 걸음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의 카드사용액까지 합친 가계신용 잔액은 올 상반기 동안 54조원 급증해 6월 말 현재 1257조3000억원에 달했다.

은행 가계대출의 경우 7월에 6조3000억원 늘었고 8월에는 8조7000억원 증가하는 등 주택시장의 비수기인 여름철에도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부채의 급증행진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모습이다.

늘어나는 가계빚에 원리금 상환부담이 커지면서 소비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통계청의 '2016년 2분기 가계동향' 자료를 보면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중 소비지출액 비중을 나타내는 평균소비성향은 70.9%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1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계가 쓸 수 있는 돈이 100만원이었다면 70만9000원만 쓰고 나머지는 저축했다는 의미다.

가계소비가 위축된 데는 가계소득 증가세가 둔화된 영향이 크다. 올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30만6000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0.8%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물가상승을 제외한 실질소득은 0.2% 감소했다.

초저금리 기조에도 가계의 저축률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올해 한국의 가계저축률은 8.66% 수준이다. 가계저축률은 2011년 3.86%에서 2012년 3.90%, 2013년 5.60%로 뛰었고 2014년 7.18%, 2015년 8.82%로 계속 오름세다. 

가계저축률은 전체 저축률 가운데 정부나 법인의 저축을 뺀 것으로, 가계저축을 가처분소득으로 나눠 산출한다. OECD 34개 회원국 중 올해 한국보다 가계저축률이 높은 나라는 스위스(20.13%), 스웨덴(16.45%), 룩셈부르크(17.48%), 독일(10.38%) 등 4곳 뿐이다.  

◆ 팍팍한 살림에 보험 깨는 서민 늘어…약관·담보대출은 증가

이처럼 부채 증가와 실질소득 감소 등으로 가계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보험을 깨는 서민들도 늘고 있다.

생명·손해보험협회의 월간보험통계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국내에서 영업중인 25개 생명보험사의 해지환급금은 11조316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조7459원)에 비해 5704억원(5.3%) 증가했다.

보험사별로 살펴보면 삼성생명의 해지환급금이 2조575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한화생명(1조4140억원), 농협생명(1조2524억원), 교보생명(1조1176억원), 흥국생명(5976억원), 동양생명(5406억원), 신한생명(5095억원), 알리안츠생명(4666억원), ING생명(4627억원) 등의 순이었다.

손해보험업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올해 1~6월까지 31개 손해보험사의 장기보험에 대한 해약환급금은 4조9900억원으로 전년(4조9700억원)과 비교해 200억원(0.4%) 늘었다.

삼성화재의 장기해약환급금이 1조597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동부화재(7824억원), 현대해상(7574억원), KB손보(5838억원), 메리츠화재(3311억원), 한화손보(3009억원), 농협손보(2289억원), 흥국화재(1970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불황형 대출'로 불리는 보험사 가계대출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올 7월 말 기준 생보사의 대출채권 잔액은 110조8002억원으로 1년 전(100조2759억원)에 비해 10.5%(10조5243억원) 늘었다. 보험약관대출금이 41조1101억원으로 전체의 37.1%를 차지했고 부동산담보대출금(30조9946억원)과 신용대출금(25조2321억원) 비중은 각각 27.9%, 22.8%를 기록했다.

손보업계의 대출 규모는 생보업계의 절반 수준이지만, 대출 증가세는 더 가파르다.  올 6월 말 기준 손보사 대출채권 잔액은 53조565억원으로, 1년 전(44조1855억원)에 비교해 20.1%(8조8710억원) 급증했다.  부동산담보대출금이 22조3425억원(42.1%)로 가장 많았고 기타 대출금 16조2664억원(30.7%), 보험약관대출금 10조2100억원(19.2%), 신용대출금 3조6328억원(6.9%) 등이 뒤를 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마지막 보루인 보험을 중도에 해지하는 가계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에 비해 금리가 높은 보험사에서 급전을 빌리는 계약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는 경기불황 여파로 생활비에 쪼들리는 서민가계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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