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 기술신용대출 잔액 87.8조원, 순수 평가액 52조원 돌파
은행 몸사리기는 여전…中企 기술금융 재이용·추천 의향 감소

▲ 금융당국의 전방위 드라이브에 은행권의 기술신용대출 공급액이 87조원을 돌파하는 등 기술금융제도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여전한 담보위주의 여신심사와 기술평가 역량 부족, 과도한 서류제출 부담 등으로 기술금융 혜택을 받는 중소기업의 만족도는 되레 낮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모습. 사진=연합

[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 신용도와 담보력은 떨어지지만 기술력·성장성을 갖춘 벤처·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기술금융제도가 도입 3년차에 접어들었다. 은행 기술신용대출 공급액은 제도 시행 이후 2년 3개월 만에 87조원을 돌파했고, 기존 대출의 연장 및 대환 실적을 제외한 순수 기술신용대출 평가액은 누적 기준으로 52조원을 넘어섰다.

금융당국의 전방위 드라이브에 은행권의 기술금융 지원 규모가 양적으로는 큰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정작 자금지원을 받는 중소기업의 만족도는 되레 낮아지고 있다. 기술력보다는 매출과 납품실적 등 회사 규모에 치중한 여신심사가 여전한 데다 기술평가 역량 부족, 과도한 서류제출 부담 등도 제도 정착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28일 전국은행연합회의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기술신용대출 누적잔액은 87조8840억원으로 전월에 비해 4.6%(3조8820억원) 증가했다. 이중 기술신용대출 평가액 공급액은 52조7528억원으로 전월대비 5.2%(2조5865억원) 늘었다.

기술신용대출 평가액은 기존 중소기업대출의 연장 및 대환, 증액을 제외한 순공급금액으로, 금융위원회의 '기술금융 체계화 및 제도 개선방안' 발표에 따라 지난해 6월부터 집계를 시작했다.

은행들이 절대적인 기술금융 실적을 맞추기 위해 기존 중소기업대출을 기술신용대출로 둔갑시키거나 통계상 중소기업대출로 분류되는 자영업자대출을 기술금융에 끼워 넣는 등 '무늬만' 기술금융을 취급하는 행태가 이어지자 기술금융 실적 집계방식을 개선한 것이다.

올해 들어 순수 기술금융 지원액은 1월 1조1293억원, 2월 1조5497억원, 3월 2조2519억원, 4월 2조5119억원, 5월 3조2673억원, 6월 2조4571억원, 7월 1조8941억원, 8월 2조5269억원 등으로 총 20조1747억원이 신규 공급됐다.

이처럼 은행권의 기술금융 실적이 금융당국의 요구에 부응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부실위험이 상대적으로 큰 벤처·중소기업을 기피하는 '보신주의' 대출관행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회사 규모나 신용도가 낮은 벤처기업과 중소기업들은 기술력만으로 기술신용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다"며 "기술력 평가보다는 매출이나 보유 부동산, 신용도 등이 여신심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뿐더러 아에 대출이 불가하거나 금리나 한도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기술·창의형 중소기업 지원을 '금융개혁 1순위'로 정한 이후 기술금융 지원을 늘려야 하는 은행권의 고민도 깊다. 치열한 실적경쟁에 따른 무리한 대출 확대가 부실화를 초래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제도 도입 초기에 은행 자체적으로 기술력을 검증할 인력이나 노하우가 부족한 상황에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실적 채우기가 많았다"며 "절대적인 기술금융 규모는 수십배 증가했지만 실제 중소기업대출은 거의 늘지 않은 곳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리스크가 적은 중소기업에 대한 선별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규모 부실로 이어지거나 자금이 한계기업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며 "당국이 은행 자체적인 기술신용평가 구축을 독려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문인력과 시스템 구축 면에서 기술금융 역량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가 최근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400명과 은행지점장 25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술금융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기술금융제도의 보완점을 묻는 질문에 중소기업의 30%가 기술신용평가 때 회사의 기술력 반영 및 전문성 등 평가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답했다.

서류제출 부담이 크다는 의견(30.3%)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의 평가서가 대출 시점에 맞춰 발급되는 것이 중요한데,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많고 평가 절차가 복잡해 발급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기술금융 전반에 대한 만족도는 3.90점(5점 만점)으로 지난해 말 조사 때보다 0.02점 하락했다. 기술금융을 다시 이용하고 싶다는 의향은 96.3%에서 89.3%로 떨어졌고, 추천하겠다는 의향도 82.3%에서 70.8%로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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