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미지급 생보사 제재절차 착수…고강도 징계 예고
'제재 불복' 행정소송 가능성, 지루한 법정공방 이어질 수도

▲ 청구권 소멸시효 2년이 경과한 재해사망특약 보험금 지급을 놓고 금융당국과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 온 생명보험사들이 강도 높은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2년여간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해 온 생보사들에 '폭탄급' 제재의 역풍이 몰아칠지 주목된다. 진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표지석 모습. 사진=연합

[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를 놓고 금융당국과 팽팽한 기싸움을 벌여온 생명보험사들이 조만간 나올 제재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고객과의 약속'을 이유로 고강도 제재 방침을 고수해 온 금융당국이 시장의 예상보다 강력한 과징금과 임직원 제재를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2년여간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해 온 생보사들이 '폭탄급' 중징계의 역풍을 맞을지 주목된다. 

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청구권 소멸시효 2년이 경과한 재해사망특약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에 대한 현장검사를 마무리하고, 이들에 대한 과징금 규모와 임직원 제재수위 등을 결정하기 위한 법리적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은 보험업법 위반인 만큼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법규행위 위반을 따져 제재 조치에 나설 것"이라며 "현재 행정제재와 관련해 법리적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 6월 말부터 5주 동안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을 상대로 자살보험금 미지급 건수와 금액, 지연이자 등을 확인하는 현장검사에 돌입했다. 이후 한화생명·알리안츠생명·동부생명에 이어 KDB생명·현대라이프생명에 대한 추가 현장검사를 진행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들 보험사들이 강도 높은 수위의 중징계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보험사들의 보험금 부지급 행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강력한 처벌로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한 데다 진웅섭 금감원장도 이 사안과 관련해 '엄정 제재' 방침을 지속적으로 밝혀왔기 때문이다.

14개 보험사가 지급하지 않은 자살보험금은 지난 2월 기준으로 2465억원(지연이자 포함)으로, 이중 2300억원(81%)가 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이다. 특약이 아닌 주계약에서 자살을 재해사망으로 보장한 보험계약까지 포함할 경우 보험사들이 토해내야 할 보험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자살보험금 논란은 금감원이 지난 2014년 생보업계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현황을 대대적으로 검사한 뒤 보험금 지급을 권고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생보사들은 지난 2001년부터 재해사망 특별계약 보험상품을 팔아왔는데, 재해보험금은 일반사망보험금보다 금액이 2∼3배 가량 많다.

문제는 보험사들이 재해사망 특약 약관에 '가입 2년 후 자살한 경우에도 특약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한 데서 불거졌다. 한 생보사가 처음 만든 약관을 다른 생보사들이 줄줄이 베껴쓰면서 같은 약관의 상품이 잇따라 출시됐다.

2010년 4월 표준약관 개정 이전까지 자살을 재해사망으로 보고 보장해주는 보험상품이 10년 가까이 팔려나간 것이다. 약관 상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고객시민단체의 요구가 커졌지만, 생보사들은 약관 작성 때 발생한 실수로 '자살은 재해로 볼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한 채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생보사들은 재해특약 약관상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를 두고 소비자들과 소송을 벌인 끝에 지난 5월 대법원 판결에서 최종 패소했다. 보험금 지급 결정이 났지만 대법원까지 간 소송 과정에서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 2년이 지나버린 계약이 속출했다.

삼성·교보·한화 등 대형사를 비롯한 일부 중소형사들은 "소멸시효가 지난 건까지 지급한다면 배임 우려가 있다"며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지난 9월 말 대법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금감원은 대법원이 민사상 소멸시효 완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약속한 만큼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며 현장검사 등을 통해 생보사들을 압박해왔다.

동부생명은 금감원의 검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9월 말 자살보험금 전액을 지급하기로 입장을 바꿨고, KDB생명도 지난달 28일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74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로써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보험사는 삼성·교보·한화·알리안츠·현대라이프생명 등 5개사로 줄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예상보다 강도 높은 중징계를 결정할 경우 제재 대상 보험사들은 이에 불복해 행종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며 "자살보험금을 둘러싼 지루한 법적공방이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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