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제 폐지 논의 본격화…내달 개편안 공개
은행권 "고임금·저효율 임금구조 개편은 필수적"
노사간 '새로운 성과주의' 논의 본격화할 수도

▲ 새 정부 출범 이후 은행권의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의 추진 동력이 빠르게 약화하는 가운데 노사간 대화를 통해 새로운 성과주의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사진=pixabay

[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 은행권의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새 정부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지 방침을 정하고 개편안 마련에 본격 착수한 데다 법원도 시중은행들이 채택한 근로자의 동의 없는 성과연봉제 시행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추진 동력이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생산성·효율성 등을 이유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적극 반겼던 은행들은 180도 달라진 정책기조에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일각에서는 은행권 노조도 큰 틀에서 합리적인 성과평가체계 마련에 공감하는 만큼 노사간 대화를 통해 새로운 성과주의 물꼬가 터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정기획위는 내달께 구체적인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개편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이는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노사 합의 없는 성과연봉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공약한 데 따른 조치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지난 23일 "(성과연봉제) 폐지를 깊이 있게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에서도 노조 합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18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근로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낸 성과연봉제 관련 소송에서 법원은 "노조 동의 없는 성과연봉제 도입은 무효"라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박근혜 정부시절 금융위원회는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성과연봉제 확대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간부급 직원에게만 적용하던 성과연봉제를 비간부직 일반 직원으로 확대하고, 기존에 성과연봉제를 시행하던 기관들은 성과급 격차를 더 벌리는 내용이었다.

금융노조가 총파업을 벌이며 저항했지만 정부는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과 상충하지 않는다며 각 기관에 이사회 의결을 통해 도입할 것을 압박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금융공공기관은 노조와의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결정했다.

시중은행들도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노조와의 개별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강행모드'로 태세를 전환했다. 우리·신한·KB국민·농협·KEB하나·SC제일·씨티은행 등 7개 시중은행은 지난해 12월 긴급 이사회를 열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로 의결했다.

이들은 올해 안에 노사간 협상 등을 통해 내년 1월부터 성과연봉제를 확대 적용하기로 방침을 세웠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반전돼 실현가능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이 지난해와 같이 노조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를 추진하기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은행권이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영업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인력구조의 고령화와 인건비 부담 가중으로 조직운영의 비효율성이 가중되고, 현행 연공형 호봉제에 기반한 임금 체계로는 1인당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은행의 대표적인 수익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지난 2005년 말 2.82%에서 2015년 말 역대 최저 수준인 1.60%까지 떨어진 반면, 총이익 대비 임금비중은 같은 기간 6.3%에서 10.6%로 상승했다. 은행의 성과와는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성과연봉제가 잘하는 사람이 더 대우받고 충분히 보상받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구축해 생산성을 높이자는 취지인 만큼 노조에서도 제도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라며 "각 행별로 노조와의 협의를 통해 보다 객관적이고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임금체계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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