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태’ 연루는 물론 ‘황금박쥐’ 모임 만들어 노무현 정부 ‘몰락 일조’
자신의 잘못 반성도 없이 정치권 맴돌아⋯시민단체·공공연구노조도 강력반대
“국민은 권력자의 실수보다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에 훨씬 부정적 반응”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서 자신이 연루됐던 2005년 '황우석 난자 매매 및 논문 조작 사건'에 대해 머리 숙이며 사과하고 있다. 황우석 사태가 터진 지 12년간 사과 한마디 없이 버티다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선임된 뒤에야 고개를 숙인셈이어서 진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연합.

‘박기영 사태’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거의 민란(民亂)수준이다. ‘반(反)문재인 정서’가 확산될 조짐이다. 그냥 방치하다간 문재인 대통령과 국민 간의 ‘정서적 유대감’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의 최대 위기다.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지난 10일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밝히자 과학기술계는 “아!”하는 장탄식과 함께 “이제 대한민국은 과학기술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고 개탄했다. 순천대 교수 출신 박 본부장이 물러나지 않으면 정부에 일체 협조하지 않겠다고 한다. 수도권 대학의 한 교수는 “우리 과학자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그런데 박 교수가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며 통탄했다. 순천대의 한 교수는 “박 교수는 변변한 과학기술 논문도 없다. 실력이 없는 정치교수다. 정치하러 다니면서 언제 제대로 연구했겠는가. 왜 문재인 정부는 그런 형편없는 사람을 기용하는지 모르겠다. 끼리끼리 해먹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황우석 사태 교훈 잊은 박기영 임명’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번 박기영 혁신본부장 임명은 황우석 사태 후 10여 년 간 과학계가 어렵사리 쌓아 올린 연구 진실성의 역사를 무시하는 처사다. 진리를 탐구하는 자부심으로 사는 과학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촛불 혁명으로 다시 태어난 대한민국의 격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촛불 광장에는 과학자들과 교수들도 많았다. 진리를 밝히려는 촛불 시민의 뜻을 문재인 대통령이야말로 제대로 헤아려야 할 것 아닌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어떤 자리인가. 차관급이지만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고 R&D(연구개발)예산의 심의와 조정, 성과 평가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어마어마한 자리다. 대략 20조원을 주무르는 ‘꽃보직’이다. 웬만한 장관을 능가하는 자리다. 그런 요직에 박기영 순천대교수를 임명한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이다. 박 본부장은 더 이상 문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부담을 주지 말고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 그가 사퇴해야 하는 이유는 일곱 가지나 된다.

첫째, 박 본부장은 약 12년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이른바 ‘황우석 난자 매매 및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됐던 인물이다. 거대한 사기극 배후에 박 본부장이 있었다. 황우석의 가짜 연구에 대해 2005년 한 해에만 과학기술부로부터 275억원을 지원받도록 주선했던 것이다. 그런 전력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할 수 없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천문학적인 혈세를 허공에 날릴 우려가 크다. 그래서 박 본부장은 당장 사퇴해야 한다.

둘째, 박 본부장은 황우석과 함께 고(故) 성완종 전 의원과 친분관계에 있었다. 성 전 의원은 황우석의 스폰서였고 박 본부장도 황우석의 지원자였다. 세 사람은 한 때 연일 몰려다녔다고 한다. 황우석은 성 전 의원의 개인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학문의 길을 걷던 중 서산장학재단 성완종 이사장을 만나 형제지간의 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내 나이 50을 넘기며 적지 않은 ‘인생스승’으로부터 삶의 가치와 자세를 배워왔다. 성 이사장으로부터 다른 어느 스승으로부터도 전수할 수 없는 ‘참인생’을 배우고 있다.” 성 전 의원의 씀씀이로 볼 때, 청와대에서 황우석을 지원했던 박 본부장을 외면했을 리가 없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박 본부장을 엄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셋째, 박 본부장은 이념적으로 문재인 정부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촛불혁명 때 박근혜 탄핵반대의 선봉에 섰던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 집행위원장인 서경석 목사와 함께 시민운동을 했다. 서 목사가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경실련) 중앙위의장이었을 때 박 본부장은 경실련 과학기술위원장을 맡았다. 두 사람은 매우 친하다고 한다. 박 본부장의 진영이 진보인지 보수인 헷갈린다. 촛불혁명 때 그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넷째, 박 본부장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황우석이 연구 윤리에 위배되는 난자 매매 등을 공식적으로 시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박 본부장은 “비윤리적 난자 확보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2004년에는 사이언스 논문에 공동저자(제13저자)로 참여했다. 자신의 전공(식물생리학)과 관련 없는 줄기세포 연구 공저자로 참여한 것이다. 논문 초반 기획에 참여했고, 연구윤리 부분을 자문했다는 해명은 매우 초라하다. 그냥 이름만 올린 게 아닌가. 게다가 ‘황우석 난자 매매 및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됐음에도, 지난 12년 동안 한마디 사과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자신의 본부장 임명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마지못해 사과했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게 되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당장 사퇴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2004년 1월 청와대 보좌관에 임명된 이후 황 교수와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진대제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과 함께 이른바 ‘황금박쥐’(황우석·김병준·박기영·진대제)모임을 구성해 황 교수에게 정부가 지원하도록 적극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현혹시켰다. 노 전 대통령이 서울대 황우석 연구실을 방문하는 퍼포먼스까지 추진하는 등 황우석의 줄기세포 프로젝트에 대한 국가 차원의 후원을 주도했다. 당시 박 본부장은 노 전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보고는 믿을 수 없다. 대통령을 ‘현혹’시킬 수 있는 사람이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의 사퇴만이 국가재난을 막을 수 있다.

여섯째, 2005년 11월 황우석 사태를 처음 보도한 MBC ‘PD수첩’의 최승호·한학수 PD가 박 본부장 임명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임명철회를 주장하게 되면 진보 언론까지 등을 돌리게 된다. 한 PD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황금박쥐의 일원으로 황우석 교수를 적극적으로 비호했던 인물. 노무현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었어야할 임무를 망각하고 오히려 더 진실을 가려 참여정부의 몰락에 일조했던 인물”이라며 “나는 왜 문재인 정부가 이런 인물을 중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 과학계의 슬픔이며, 피땀 흘려 분투하는 이공계의 연구자들에게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건강과대안·보건의료단체연합·서울생명윤리포럼·시민과학센터·한국생명윤리학회·환경운동연합 등 9개 시민단체도 “역사에 남을 만한 과학 사기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라며 임명철회를 요구했다.

일곱째, 정부 출연 과학기술연구소 소속 과학기술연구자 조합원들로 구성된 민주노동 공공운수노조 산하 공공연구노동조합(위원장 김준규)도 박 본부장의 임명 철회를 촉구했다. 공공연구노조는 박 본부장을 겨냥, “연구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연구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했으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도 반성이나 사과도 없었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정치권을 맴돌며 그럴듯한 ‘4차 산업혁명’의 미사여구와 얄팍한 ‘쇼’로 장밋빛 환상을 설파하던 자를 혁신본부장으로 임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박 본부장이 쓴 ‘제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경쟁력’이란 책은 과학기술 서적도 아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자료를 가져다가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는 2002년 ‘생명과학’이란 책을 낸 이후 2017년까지 책을 출판하지 않았다. 15년을 정치만 하고 돌아다닌 것이다.

촛불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진행형이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적어도 앞으로 10년간 촛불혁명은 지속될 것이다. 투명사회다. 감출수록 다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매사 정직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정직하지만 주변 참모들이 정직하지 못한 것 같다. ‘박기영 민심’을 제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박 본부장이 과거 노 전 대통령에게 황우석 사태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던 것처럼⋯.

정치심리학자 강흥수 박사가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가슴을 때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보좌진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사실이 하나 있다. 탁현민, 김현종, 그리고 박기영 인사 건은 하나씩 따로 떼어보면 정권이 충분히 극복 가능한 반대여론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한데 뭉치면 얘기다 달라진다. 1이 셋 합쳐지면 3이 아니라 10, 30이 되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다. (중략) 지금 이 시점에서 박기영 임명 건을 하나의 독립된 사안으로 보고 대처한다면 문제를 제대로 읽지 못한 잘못을 저지르는 짓이다. 박기영 임명 건은 그 사안 자체의 부정 임팩트도 작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임팩트 크기를 넘어 문재인 대통령과 국민과의 감정적 유대(connection)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중략) 국민은 권력자의 실수보다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소통 거부, 불통)에 훨씬 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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