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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의 프리즘] ‘협치’를 넘어 ‘연합정치’로 가야
‘무늬만 협치’로 ‘김이수 부결’ 정국 돌파 못해⋯왕건도 호족과 연합정치
슈뢰더 “현재의 정책이 미래의 결실로 이어지기 위한 연정(聯政)할 시점”
2017년 09월 13일 (수) 10:39:07 조한규 webmaster@smedaily.co.kr

   
▲청와대와 민주당이 협치를 넘어선 ‘연합정치’ 구현을 통해 ‘김이수 부결’ 사태로 한계를 절감한 여소야대 현실을 넘어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지역연합을 통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보수·진보대연정’을 통해 부국강병의 기틀을 쌓았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충고 역시 ‘연정’이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정치부기자로서, 정치학자로서 요즘 정치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 너무나 정치 수준이 낮기 때문에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그렇다고 마냥 입을 다물 수도 없다. 나라를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11일 국회에서 부결됨에 따라 추석 정국은 ‘협치(協治)냐, 대치(對峙)냐’의 기로에 서 있다. 부결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진정한 협치의 길로 가야 한다”는 여론 또한 적지 않다. 과연 협치로 가야 하는가.

지난 2016년 4월13일 20대 총선 결과 국회의 정당별 의석수는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으로 나타났다. 어느 당도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른바 ‘3당 체제’가 출범한 것이다. 총선민의는 ‘협치’로 요약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입만 열면 협치를 노래했다. 그러나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독주·독점·독선은 개선되지 않았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은 그 산물이다. 그리고 촛불혁명이 이를 심판했다.

19대 대선을 거치면서 국회의 정당별 의석수는 ‘더불어민주당 120석, 자유한국당 107석, 국민의당 40석, 바른정당 20석, 정의당 6석, 새누리당 1석, 무소속 5석’이 됐다. ‘3당체제’가 ‘4당체제’로 바뀌었다. 더욱 ‘협치’가 요구되는 환경이 됐다.

국회선진화법(2012년 개정된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 내 다수당이라 하더라도 의석수가 180석에 미치지 못하면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의 강행 처리는 불가능하다. 민주당 의석은 180석에서 60석이나 모자란 120석에 불과하다. 민주당 단독으로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자유한국당과의 ‘적과의 동침’을 선택하든가, 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과의 ‘탄핵연대’를 선택해야 할 처지다. 정부와 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검찰·국정원 개혁, 방송개혁, 증세, 건강보험 확대 등 각종 개혁 입법을 원만하게 처리하기 위해선 어쩔 도리가 없다. 물론 자유한국당의 입장에서도 재적의원 5분의 2인 120석을 확보해야 정부와 여당의 입법을 저지할 수 있다. 단독으로는 불가능하다. 바른정당과의 연대와 통합이 절실한 실정이다. 따라서 여야 모두에게 협치는 피할 수 없는 정치현실이다. 누구도 20대 총선 민의인 협치를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글자 그대로의 협치는 쉽지 않다. 여야가 서로 대화를 통해 협력하는 ‘협력의 정치’, ‘타협의 정치’로서의 협치는 현실정치에선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실 20대 총선 직후 언론들이 협치란 말을 잘못 사용한 점이 없지 않다. 원래 협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뜻을 지녔다. 즉, 정부를 대체하는 대안적 관리체제인 공치(共治)인 것이다. 노사정위원회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마디로 ‘협력적 거버넌스(cooperative governance)’다. 따라서 이런 거버넌스의 의미는 한국정치의 협치에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한국정치의 협치는 네덜란드·오스트리아·스위스의 ‘협의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에 가깝다.

레이파트(Arend Lijphart)가 주장한 ‘협의민주주의’는 권력공유를 기초로 몇 개의 정당 혹은 정치적 구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밀한 제휴를 통해 작동하는 민주주의 형태다. 연합정부  행정부와 의회 사이의 권력분산  효과적인 양원제도  다당제도  비례대표제  연방주의 혹은 이양(devolution)  성문법과 권리장전 등 일곱가지 특징과 연관을 맺고 있다. ‘협의민주주의’ 핵심은 대화와 협상, 권력공유를 통한 대연합이다. ‘합의형 정치(consensual politics)’다. 그런 의미에서 ‘4당체제’ 하에서의 협치는 이런 ‘협의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즉, 협치는 대연합, 대연정을 지향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협치란 말보다 ‘연합정치(coalition politics)’가 20대 총선민의에 가깝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여야가 협력하는 정치는 3당체제, 4당체제가 아닌 양당체제에서도 기본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서는 이런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차라리 ‘DJP연합’과 같은 연합정치가 보다 현실적이다.

연합정치에선 ‘권력공유’와 ‘정책연대’가 핵심 기둥이다. 서구의 사례를 거론하기에 앞서 우리의 역사에서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고려 초기의 ‘호족연합정치’가 그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된다. 고려 태조 왕건이 어떻게 ‘호족연합정치’를 추진했는가는 오늘날 한국 정치지도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귀부(歸附)와 혼인정책, 사성(賜姓)과 사명(賜名)을 통해 ‘지역연합적 호족연합정치’를 추진함으로써 왕권을 유지·발전시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명주(강릉)의 호족 김순식(金順式)의 귀부다. 왕건이 김순식의 귀부를 성시시킬 수 있었던 것은 왕건의 협상력과 인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건의 협상은 매우 치밀하고 단계적으로 이뤄졌다. 김순식의 귀부는 크게 3단계의 협상과정을 거쳐 성사됐다.
 
◆왕건과 김순식의 협상과정

   

 

 

 

왕건은 국왕에 즉위하자 김순식에게 사신을 보냈다. 많은 선물을 전달하면서 김순식의 귀부를 타진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왕건은 포기하지 않았다. 김순식의 아버지 김허월(金許越)을 보내 귀부를 재차 타진했다. 이에 김순식은 큰 아들 김수원(金守元)을 왕건에게 보내고 귀부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왕건은 김수원에게 왕(王)씨 성(性)을 하사하고 전택(田宅)을 제공했다. 나중에는 이들 3대에게 모두 왕씨 성을 하사했다. 왕건은 심지어 김순식과 함께 귀부한 명주 호족 관경(官景)에게도 왕씨 성을 하사했다.

이처럼 왕건은 무력을 사용해 김순식을 복속시킨 것이 아니라 10년 간 인내심을 갖고 협상을 통해 귀부를 성사시켰던 것이다. 지분을 약속하고 권력을 공유했고, 다양하고 단계적인 협상을 통해 송악 중심의 호족세력과 명주 중심의 호족세력간의 지역연합을 추진함으로써 정치적 이익과 권력을 공유하는 연합정치를 구현했던 것이다.

아울러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총리가 추진했던 ‘보수·진보대연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13년 11월 메르켈의 중도우파정당으로 제1당인 기독교민주연합(CDU·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은 이념과 노선이 같은 기독사회연합(CSU·Christlich-Soziale Union)과의 ‘보수연정’을 통해 집권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결단을 통해 중도좌파 정당으로 제2당인 사회민주당(SPD·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과의 ‘보수·진보대연정’을 추진했다. CDU·CSU·SPD 등 3개 정당은 17시간30분에 걸친 마라톤협상 끝에 185페이지에 달하는 연정합의문을 도출하고, 2차 대전이후 세 번째로 대연정을 구성한 것이다. 이런 대연정은 메르켈 총리가 SPD의 공약이었던 최저임금제를 전격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파가 좌파의 정책을 수용해 대연정을 성사시킴으로써 오늘의 독일을 만들었다. 메르켈은 오는 24일 총선에서 4선고지도 넘보게 됐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120석의 여소야대 정치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를 바로 봐야 하는 것이다. 지지도에 의존한 ‘무늬만 협치’로는 ‘김이수 부결 정국’을 돌파하지 못한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 답은 ‘협치’를 넘어 ‘연합정치’로 가는 길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과의 연정을 모색해야 한다. 심지어 자유한국당
   
과도 연정을 추진할 수 있는 ‘대화와 포용의 정치’를 전개해야 한다.

독일의 사민당·녹색당 연정을 성사시켰던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der) 전 독일 총리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그동안 여야가 교체되면서 정책의 지속성이 문제가 되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현재의 정책이 미래의 결실로 이어지기 위한 연정(Coalition)을 할 적절한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연정’, 즉 ‘연합정치’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정부와 여당은 인내심을 갖고 이념과 노선을 넘어 대화와 협력, 상생의 정치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북핵 위기로 요동치는 동북아정세를 헤쳐 나갈 수 있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 회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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