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부산 등 지역기반 약해…내년 지방선거 승리 장담 못해
이념·햇볕정책 등 놓고 충돌 가능성…화학적 결합 쉽지 않아
민주·한국당 뺀 두 당만의 ‘소통합’ 확장성 약해 실패 가능성
‘지방선거 승리’, ‘중도정당 건설’ 등 통합 정치적 명분도 약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논의가 정가의 관심사다. 그러나 과연 이번 통합논의가 여의도의 정치지형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까지 포함한 대규모 정치적 이합집산, 인위적 정계개편으로 번질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이번 통합논의가 선거에 승리할 수 있는 ‘통합조건’을 어느 수준에서 갖추느냐에 따라 태풍이 될 수도 있고 미풍에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당 간 통합논의는 큰 선거를 앞두고 한국정당사에 있었던 흔한 풍경이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정당통합논의가 불거진 것은 예상됐던 바다. 지난 15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통합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18일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만났다. 19일 주 원내대표는 “국민의당의 많은 의원이 바른정당과 통합을 원하고 있다”며 “바른정당 의원들의 뜻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했다. 20일 안 대표의 비서실장인 송기석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 이후 여러 의원들과 접촉해 물어보니 국민의당 의원 40명 중 약 30명 정도가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와 선거연대, 가능하다면 통합까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불을 지폈다.

통합논의가 이처럼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양당 통합에 대해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바른정당과 잘 되면, 영·호남을 통합 한 첫 지역주의 타파”라고 낙관했다. 유 의원도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간에 통합 논의가 이어지면 자유한국당에서도 동참할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두 사람은 만나 통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통합에 적극적일까. 둘 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였다는 점, 정치적 리더십과 당의 미래를 놓고 당내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는 점, 탈당파들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 등에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입장에 처해 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겐 돌파구가 필요하다. 결국 두 사람은 민주당과 한국당 간의 대결정치에 비판적인 중도세력을 끌어들여 제3의 세력을 강화한다는 명분과 호남당 이미지 탈피(국민의당), 교섭단체유지(바른정당)라는 실리를 각각 챙길 수 있다고 판단해 통합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두 당의 ‘완전통합’은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통합조건’이 제대로 갖춰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부분통합’은 가능하다. 그러나 ‘부분통합’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통합이 아니다. 단지 교섭단체를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통합조건’은 뭔가. 첫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확고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두 당은 지역기반이 약하다. 안 대표의 지역기반은 부산이지만, 부산에서 그의 지지도는 낮다. 호남에 지역기반을 둔 것처럼 얘기하고 있으나 흘러간 과거다. 지금 호남은 민주당의 텃밭이 됐다. 유 의원의 지역기반은 대구다. 그러나 대구에서 지지도가 낮다. 대구는 한국당의 텃밭이다. 따라서 지역기반이 약한 두 사람이 앞장서서 두 당을 통합시킬 경우, 그 통합정당 역시 지역기반이 약해 2018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쉽지 않다.

토머스 오닐 전 미국 하원의장은 “정치는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1936년 민주당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한 이후 17회나 하원의원에 피선됐으며 1987년 은퇴할 때까지 5차례에 걸쳐 하원의장을 역임했던 오랜 정치경험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갑윤 서강대 교수는 “민주화 이후 지난 20여 년간 한국인의 투표행태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투표결정 요인으로 출신 지역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는 것이다”고 분석했다. 박찬욱 서울대 교수도 “민주화이후 전국 규모로 실시된 선거에서 표심의 향방을 예측 또는 설명할 때 가장 먼저 고려된 것은 지역요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인들이 여러 세대를 같은 지역에 눌러 살아온 만큼 한국인의 지역의식은 뿌리가 깊다. 그래서 한국의 유권자들은 이념·세대·계층보다 지역을 우선시해서 투표에 임하고 있다. 지역을 배제한 정당통합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지원 의원이 “우리가 왜 호남을 버려야 하나”며 비판한 것이나, 천정배 의원이 “새정치나 개혁정치와 거리가 먼 일”이라고 날을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바른정당 통합파가 20일 “야합에 다름 아닌 일”이라고 비판한 것도 지역을 배제한 정당통합으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둘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이념과 정책에서 화학적 결합을 해야 한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걸림돌이다. 안 대표가 유 의원의 요구에 화답해 ‘햇볕정책’을 버릴 경우 호남 의원들은 통합에 합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 대표는 20일 “햇볕정책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며 “‘햇볕정책’이란 추상적 명칭에 대한 찬반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 북핵위기 해법을 놓고 해법이 같다면 함께 할 수 있다”고 사실상 ‘햇볕정책’을 버리고 유 의원의 강경 대북정책에 동조하는 스탠스를 취했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이른바 ‘DJP연합’이 붕괴된 것은 ‘햇볕정책’에 대한 DJ측과 JP측 간의 이념갈등과 정책대립 때문이었다. 이념과 정책에서 화학적 결합이 없는 통합은 끝없는 갈등과 대립을 불러일으킨다. 통합논의가 시작되자마자 박지원 의원이 “국민의당은 DJ의 햇볕정책의 이념을 계승 발전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보도대로 유 의원이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햇볕정책’의 상징적 인물인 박지원 의원을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면 ‘완전통합’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바른정당 김용태 의원도 한국당과의 보수통합추진위원회 모임에서 “한국당·국민의당과 통합을 얘기하면서 노선도 없이 한다는 것은 ‘자강’은 말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셋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민주당이나 한국당 가운데 어느 한 정당을 참여시키는 ‘대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두 당만의 통합은 군소정당 간의 ‘소통합’이어서 확장성이 약하다. 거대정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을 배제한 ‘소통합’이 성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국민의당의 절반은 민주당으로, 바른정당의 절반은 한국당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부분통합’을 이룬다 해도 여전히 제3당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과거 ‘3당합당’은 ‘소통합’이 아닌 지역연합에 기초한 ‘대통합’이었다. 그래서 성공했다. ‘DJP연합’도 지역연합에 기초한 ‘대통합’이어서 성공했다. 그러나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은 지역연합이 없는 ‘소통합’이다. 그래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만약 국민의당-바른정당이 민주당과 ‘대통합’을 이룰 경우 성공 가능성은 높다. 마찬가지로 국민의당-바른정당이 한국당과 ‘대통합’을 이룰 경우 성공 가능성은 높다.

넷째,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이 성공하기 위해선 설득력 있는 정치적 명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두 당의 통합에는 명분이 약하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통합하는가. 중도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통합하는가. ‘반문-대여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통합하는가. 국민들은 무엇 때문에 두 당이 통합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지방선거 승리’, ‘중도정당 건설’, ‘반문-대여투쟁’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만일 안 대표가 “호남진보를 떠나 보수진영으로 가고 싶다”고 밝혔고, 유 의원이 “교섭단체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면 국민들은 “솔직하다”며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섯째,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은 그 목표가 ‘지방선거 참패 모면’이 아닌 ‘집권’에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통합은 ‘지방선거 참패 모면’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양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을 1석도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바른정당의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의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당의 경우 ‘박지원 배제’로는 1석도 건지기 어렵다.

국민의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안 대표의 통합을 부추기는 세력들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도의원이나 시·군·구의원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겨우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 몇 명 당선시키자고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다수당이 된다거나 대통령을 당선시킨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어야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 있다.

또 다른 분석도 있다. 일부 국민의당 의원들이 통합에 찬성하는 것은 ‘안철수 배제’를 위한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을 말하고 서쪽을 쳐라) 전략이라는 것이다. ‘안철수 없는 국민의당’이 바로 민주당과의 ‘연정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논의는 이런 다섯 가지 통합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민주당과 한국당의 협공이 시작될 경우 두 당은 버티기 쉽지 않다.

실제로 한국당의 공격이 먼저 시작됐다. 한국당이 20일 당 중앙윤리위원회를 소집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자진 탈당 권고를 의결한 것이다. 친박 핵심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해서도 같은 처분을 내렸다. 한국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바른정당 통합파들이 힘을 받게 됐다. 강길부·김무성·김영우·김용태·이종구·정양석·홍철호·황영철 의원 등이 11월13일 바른정당 전당대회 이전에 탈당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10여명이 탈당하게 되면 유 의원 주도의 국민의당과의 통합논의는 동력을 상실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홍준표 한국당 대표 주도의 보수통합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민주당의 공격도 물밑에서 시작됐다. 과거 동교동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민주당 고문단과 국민의당 고문단이 최근 골프회동을 통해 통합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원 의원에게 전남지사후보, 정동영 의원에게 전북지사후보, 문병호 전 의원에게 인천시장후보를 주는 방안을 놓고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공식적인 논의는 아니지만 물밑논의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고 있다. ‘안철수는 보내고 우리는 다시 뭉치자’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DJ는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고, YS는 “정치는 세(勢)”라고 했다.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단하기 쉽지 않다. 다만 ‘정치는 세’이기 때문에, 지역기반이 약하고 세가 약한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은 확장성이 약하다. 선거는 곧 ‘표’이기 때문이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11월이 되면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여야는 이번 정기국회에선 북핵문제, ‘바젤 III (Basel III)’와 유럽 ‘디지털 싱글 마켓(Digital Single Market)’의 공세 등에 대비하기 위한 입법대책을 세우고, 정부의 개혁입법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통합논의는 천천히 해도 늦지 않다. 따라서 각 당은 올해 정기국회가 끝난 뒤 통합논의를 시작하기 바란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 회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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