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간 스위스에서 외교관 활동…비밀자금 관리, 김정은 유학 생활 후견인
시진핑 주석에게 ‘구두친서’ 전달할 만큼 실세…핵 등 대외정책 깊이 관여

북한의 권력을 움직이는 진짜 실세는 누구일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혼자서 북한 국정을 쥐락펴락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뒤에서 김 위원장을 받쳐주고 있는 배후 세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김정은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후 세력의 핵심인물을 파악해야 한다.

북한전문가와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외교담당 부위원장이 김 위원장의 핵심측근으로 파악된다. 한 인사는 “리수용이 북한의 ‘상왕’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리 부위원장은 1935년 함경남도 출신으로 김일성 종합대학, 국제관계대학 불어과를 졸업했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해 1973년부터 1980년까지 북한 외교부 의례국장, 외교부국제기구 국장,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서기실 책임비서 등으로 근무했다. 1980년 6월 스위스 제네바 대표부 공사에 부임하면서 처음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1987년 9월 스위스 제네바 대표부 대사, 1991년 10월 제네바 유엔사무국 대표부 상임대표, 1998년 1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스위스 주재 대사를 맡았는데, 2000년 7월 합영회사 KOHAS 대표, 2001년 8월 리히텐슈타인 주재 대사, 2001년 12월 네덜란드 주재 대사 등도 겸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2003년 9월 제11기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009년 4월 제12기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도 맡았다.

북한의 사정을 감안할 때, 웬만한 실세가 아니면 무려 23년 동안이나 스위스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이는 리 부위원장이 스위스에서 ‘김일성 체제’와 ‘김정일 체제’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말해준다.

리 부위원장은 스위스에서 크게 두 가지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첫째, 리 부위원장은 김정은 위원장과 그의 친형 김정철, 여동생 김여정이 스위스 베른에서 교육을 받을 때 ‘후견인’ 역할을 했고, 앞서 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스위스 유학시절에도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이 1998년부터 2000년 가을까지 스위스 베른의 슈타인횔츨리 공립학교를 다녔는데, 학적부에는 스위스 주재 북한대사 ‘리수용의 아들’로 기록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리수용이 김정은의 양부(養父)’였던 셈이다.

둘째, 리 부위원장은 ‘김일성김정일의 절대 신임’ 아래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약 50억달러로 추산되는 북한의 비밀계좌를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영회사 KOHAS 대표, 리히텐슈타인 주재 대사, 네덜란드 주재 대사 등을 겸직한 것도 북한의 비밀계좌를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가 북한의 ‘유럽경제통’으로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리 부위원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후견인’으로 핵심측근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다. 그가 김 위원장 집권이후 승승장구했던 것이 바로 이를 웅변한다. 한 때 그가 ‘장성택의 두뇌’로 알려져 숙청설이 나돌았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낭설에 불과하다.

2014년 4월 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에서 외무상에 임명됐으며, 2016년 5월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 부장,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위원을 맡았다. 2016년 6월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 2017년 4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정치국 위원과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지금도 겸직하고 있다.

리 부위원장은 2014년 9월27일 북한 외무상으로는 1992년 김영남 부총리 겸 외교부장, 1999년 백남순 외무상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유엔총회에서 회원국 대표로 연설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리 부위원장은 2016년 6월1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구두친서’를 전달했다. 당시 그의 북한 내 위치가 어느 정도 막강한지를 보여줬다. 수십명에 달하는 리 부위원장의 일행은 승용차 10여 대와 버스 등에 나눠 타고 베이징 시내로 주행했으며, 중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경찰과 순찰차량을 배치해 리 부위원장 일행을 적극 경호했다. 최룡해 부위원장은 2013년 중국 방문에서 이런 대우를 받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리수용 부위원장이 ‘30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 출신’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 권력의 ‘막후 실세’가 서유럽에 정통한 ‘외교관 출신’이라는 점은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 북한의 대외정책은 매우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단수’가 높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군부 출신이 실세라면 상대하기 쉽다. 그러나 북한 외교관은 매우 까다롭다. 미국 외교관들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정도로 다루기가 쉽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하나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은 북한을 우습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가 북한을 상대할 때 너무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

둘째,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만 포커스를 둔 우리의 대북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의 ‘언행’만 분석해 판단하다가는 오판할 수 있다. 노회한 리 부위원장이 막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타이밍도 그의 머리에서 나오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가 지난 9월8일 북한을 방문한 안토니오 이노키 일본 참의원 의원을 만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해 “우리들은 개발을 계속해 최후 목표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핵미사일 개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따라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전략전술을 제대로 파악하고 바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분석과 함께 외교적 분석을 깊게 해야 한다.

셋째, 북한이 대남적화를 위해 핵전쟁도 불사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외교관들은 입으로는 거칠게 하면서도 뒤로는 협상을 제안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가령, 이노키 의원이 북일관계에 대해 “인적 교류를 중지하면 안 된다”고 말하자 리 부위원장도 “정말로 동감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근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중국 시진핑 주석이 축전과 답전을 주고받으며 양국관계 발전을 언급한 것도 ‘리수용의 작품’인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북한이 당분간 ‘대화모드’로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북대화를 추진할 수 있는 타이밍이 된 것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 회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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