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개국 백성들의 마음(一心)을 얻어야
원효의 화쟁사상으로 한중관계 발전시켜야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오른쪽)이 지난 16일 중국 국가종교국을 방문해 슈에수치(薛樹琪) 외사부국장과 환담을 나눈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근 한 중정상회담 이후 한 중교류가 각 분야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종교분야도 마찬가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중 불교 교류다.

한국 조계종 법타 스님과 종수 스님, 선상신 불교방송 사장 등 불교계 지도자들과 중견 언론인들이 중국 외교부 초청으로 지난 16일 중국을 방문했다. 한중불교 교류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날 오후 3시(현지시간) 슈에수치(薛樹琪) 외사부국장 등 중국 국가종교사무국 간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먼저 중국 측으로부터 중국의 종교현황에 대해 브리핑을 듣고 한중 양국 간 불교 문화교류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국가종교사무국은 중국의 모든 종교를 관리하는 국가기관이다.

슈에 부국장의 브리핑에 의하면 중국의 5대종교는 불교 도교 기독교 이슬람 천주교이며, 전체 종교인은 약 2억명 정도. 그 중에서 불교인이 1억 명, 도교인이 4000만명, 기독교인이 3000만명, 무슬림이 2300만명, 천주교인이 600만명이라고 한다. 중국 헌법 36조에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  종교단체의 독립적 운영 등 세 가지 원칙이 명시돼 있다고 했다. ‘종교사무조례’에 따라 정부가 종교단체를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중국 영토 내에서 외국인의 종교 활동을 보장하는 조례를 새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종교단체를 관리하는 최고 책임자는 국무원 총리이며, 실무를 담당하는 곳이 국가종교사무국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날 간담회에서 한 중교류의 기본 철학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전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 북송의 철학자 강절(康節) 소옹(邵雍)은 ‘황극경세(皇極經世)’에서 우주의 1년을 12만9600년이라고 주장했다. 즉, 한 ‘세대=30년’을 단위로 하여 일원(一元=12만9600년)마다 천지가 경신(更新)된다고 보고, 이것을 우주 시간의 최초의 순환 단위로 생각했던 것이다. 일각에선 ‘황당한 주장’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조선(朝鮮)의 허준(許浚)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이를 인용한 바 있다.

그렇다면 천지가 경신되는 시점, 즉 우주의 새해는 언제 시작되는 것일까? 소옹의 철학에 심취한 한국의 재야 철학자들은 2012년 12월21일 동지부터 2022년 12월21일 동지까지 10년을 새 우주의 설날로 보고 있다. 중남미 마야 문명시대인 기원전 3114년부터 작성된 ‘마야달력’은 2012년 12월21일 동지에 마침표를 찍어 종말론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한국에선 2012년 12월19일 18대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예정에도 없었던 2017년 5월9일 19대 대통령선거가 있었으며, 2022년 12월21일에는 20대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2013년 3월14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해 2022년까지 중국을 통치한다. ‘소강사회(小康社会, Xiǎokāng Shèhuì)’가 단기 목표이고 ‘대동사회(大同社會)’가 중장기 목표다. 대변혁(大變革), 대전환(大轉換)이 예상된다.

아무튼 새 우주가 시작됐다고 전제할 때, 그 우주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한국의 유학자 하연순은 “향후 200년은 화(和)의 시대”라고 말한 바 있다. ‘화(和)’가 키워드라는 것이다. 원래 ‘화’라는 말은 ‘좋은 곡식’을 의미하는 화(禾)와 입을 뜻하는 구(口)의 합성어로 ‘좋은 곡식을 입으로 먹는다’는 뜻이나, 입으로 ‘소리를 맞추고, 고르게 하고, 부드럽게 하다’는 음악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화성(和聲), 화음(和音)의 뜻에서 화해(和解) 화평(和平) 화합(和合) 융화(融和)의 뜻으로 발전한 셈이다.

한국에선 이 ‘화’라는 말을 이야기할 때, 원효(元曉)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을 가장 먼저 거론한다. ‘화쟁’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화’는 ‘화해’이며 ‘쟁’은 ‘주장’이다. 화해와 자기주장, 전쟁과 평화의 문제이다. ‘화쟁’은 여러 다양한 이론 사이의 다툼을 화해시켜서 부처님의 일심사상(一心思想), 즉 올바른 진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의 서문에서 “개측무량무변지의위종(開則無量無邊之義爲宗) 합측이문일심지법위요(合則二門一心之法爲要)이문지내(二門之內) 용만의이불란(容萬義而不亂) 무변지의(無邊之義) 동일심이혼융(同一心而混融) 시이개합자재(是以開合自在) 입파무애(立破無礙) 개이불번(開而不繁) 합이불협(合而不狹) 입이무득(立而無得) 파이무실(破而無失)”이라고 했다. 이 문장의 뜻은 이렇다.

“(기신론)뜻을 펼치면(開) 무량무변한 이치로 으뜸(宗)이 되고, 합치면(合)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 이문(二門)이 일심법(一心之法)의 요체가 된다. 이문(二門) 안에 만 가지 이치를 포용하지만 어지럽지 않고, 끝없는(無邊) 이치가 일심(一心)과 같아(同) 혼융(混融)되어 있으니, 이러한 까닭에(是以) 개합(開合)이 자재하며, 입파(立破)가 자재하여 펼쳐도 번잡하지 않고, 합하여도 편협하지 않으며, 세워도 얻을 것이 없고 깨뜨려도 잃을 것이 없다.”

원효는 이처럼 ‘화쟁’의 방법을 논의하면서 ‘개합(開合)’ ‘입파(立破)’ ‘여탈(與奪)’의 논리를 이용했다. ‘개합’은 ‘펼침과 합함’이며, ‘입파’는 ‘세움과 깨뜨림’이다. 그리고 ‘여탈’은 ‘주는 것과 빼앗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연기(緣起)이기 때문에 전체와 부분은 같이 있다는 것이다. 전개와 통합이 자유롭고 긍정과 부정에 걸림이 없고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다는 뜻이다. 곧,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 논리에 근거해 종합과 회통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쟁사상’은 연기론(緣起論)과 실상론(實相論)을 바탕으로 모순과 대립을 하나의 체계 속에서 다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원효는 “위도자영식만경(爲道者永息萬境), 수환일심지원(遂還一心之原)”이라고 했다. “도를 구하는 자로 하여금 만 가지 경계(번뇌 이론 주장 다툼 차별 망상)를 길이 쉬어(永息) 드디어(遂) 일심(一心 : 한 마음)의 근원(心源)으로 돌아가게(還)하고자 함이다.”고 강조한 것이다. 화쟁사상의 바탕에는 ‘일심(一心)’이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가 한마음이 될 때 주체와 객체의 분별이나 다툼이 사라진 ‘화쟁’이 된다는 의미다. ‘일심(一心)’은 선종(禪宗)의 대표적 화두인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이 하나는 어디로 가는고?)’의 ‘일(一)’이며, 조선(朝鮮)의 서산(西山) 휴정(休靜)이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밝힌 ‘일원상(一圓相)’이다. 대우주 대자연이며 삼라만상(森羅萬象) 그 자체다. 차별도 없고, 분별도 없고, 다툼도 없고, 걸림도 없는 ‘대자유 대길상 대광명(大自由 大吉祥 大光明)’의 세계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서로 다르겠는가! ‘일심(一心)’, 즉 ‘한 마음’에선 ‘하나’다. 오늘 모인 우리들이 서로 다르겠는가! ‘일심(一心)’, 즉 ‘한 마음’에선 ‘하나’다.

한중관계도 마찬가지다. 한중관계를 정상적으로 복원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일심(一心)’을 토대로 화쟁의 방법인 ‘개합(開合)’ ‘입파(立破)’ ‘여탈(與奪)’의 논리를 활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개합 입파 여탈’이 자유자재한 한중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가령, 국익(國益)과 민심(民心)이 상충할 때가 많다. 이런 경우에 원효는 “같지도 않게(非同) 다르지도 않게(非異) 실천하라”고 이야기한다. 상대국과 다르지 않음(非異)을 실천함으로써 국익을 잃지 않고, 같지 않음(非同)을 강조함으로써 민심에 위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동비이(非同非異)’의 뿌리가 바로 ‘일심(一心)’이다. ‘일심(一心)’은 다른 것도 없고 같은 것도 없는 ‘오직 하나’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가전략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의 경우도 ‘일심(一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줄여서 ‘일로(一路)’라고 한다. 그리고 이 ‘일로(一路)’는 ‘일도(一道)’를 의미한다. ‘일도(一道)’는 무엇인가. 바로 ‘일심(一心)’이다. ‘도(道)’는 곧 ‘심(心 : 마음)’이기 때문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일도(一道)’이며, ‘일심(一心)’인 것이다. 따라서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성공하기 위해선 원효의 ‘일심지원(一心之元)’을 잊어서는 안 된다. 65개국의 백성들의 마음(一心)을 얻어야 한다. 군사적 패권주의만으로는 실패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일심(一心)’을 바로 보고 간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신(信 : 믿음)’이 필요하다. 한국의 옛 고전 ‘참전계경(參佺戒經)’에는 “신자 천리지필합 인사지필성(信者 天理之必合 人事之必成)”이라는 말이 있다. ‘믿음은 하늘의 이치와 합하는 것으로서 인간만사를 반드시 이루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의(義) 약(約) 충(忠) 열(烈) 순(循)’이란 다섯 가지 방편을 제시했다. ‘의로움을 가져야 하고’, ‘약속을 지켜야 하고’, ‘충성이 따라야 하며’, ‘절개를 지켜야 하고’, ‘순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신(信)’을 실천하기 위해 만났다. 진정한 한 중관계는 ‘일심(一心)’에 있으며, ‘신(信)’을 토대로 ‘개합(開合)’ ‘입파(立破)’ ‘여탈(與奪)’의 ‘화쟁(和諍)’을 통해 이뤄진다. 서산 대사의 게송(偈頌)으로 마무리하겠다.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지만,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이라.  “우거진 풀밭은 가질 않지만, 꽃이 지는 마을에는 가기가 꺼려진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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