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투기’ 17세기 ‘튤립 광풍’과 비슷하게 전개…우려 목소리 커져
투기 아닌 비트코인 기반 블록체인 기술 발전시켜야 4차 산업혁명 주도

네덜란드 서부 조이트홀란트 주에 위치한 인구 2만명의 작은 도시 리쎄(Lisse)의 큐켄호프(Keukenhof) 공원에서는 매년 ‘튤립 축제’가 열린다. 3월에서 5월 사이에 열리는 축제 기간 중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이 연간 80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튤립이 네덜란드의 최고 효자 관광 상품이라 하겠다.

지금은 네덜란드의 상징이 된 튤립이 한때 네덜란드 경제를 혼란에 빠트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튤립 광풍(Tulipomania)’의 이야기다. 튤립 광풍은 17세기 중엽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과열 투기로 역사상 최초의 거품 경제 현상이다.

1602년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주식을 발행했다. 유럽에서 막대한 자금이 네덜란드로 유입되어 네덜란드는 세계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덕분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 부를 과시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 중에서도 16세가 중반 오스만튀르크에서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한 튤립은 아름답고 희소성 때문에 부와 지위를 상징하는 기준이 되었다.

튤립 광풍은 꽃이 봄에만 피기 때문에 다른 계절에는 현물거래가 불가능했다는 데서 출발한다.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꽃이 피는 시점에 특정한 가격으로 거래’한다는 선물 거래 기법을 생각해 낸다. 이때부터 부자들뿐만 아니라 농민, 하인 등 서민까지 튤립 거래에 뛰어 들었다.

1634년 선물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실제 튤립 구근 수보다 몇 배나 되는 양이 거래되었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러나 1637년 2월 튤립 가격이 갑자기 폭락했다. 튤립의 미래 가치에 의심을 품은 몇몇 사람들이 튤립을 내다 팔기 시작하면서 구매자는 사라지고 가격은 순식간에 고점 대비 1/20 수준으로 떨어졌다. 튤립 광풍은 수많은 파산자와 소수의 벼락부자를 남기고 막을 내렸다.

하지만 튤립 파동이 당시 네덜란드 경제를 혼란스럽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주류경제사학자인 킨들버거(Charles P. Kindleberger)는 ‘서유럽 금융사(A Financial History of Western Europe)’라는 저서에서 튤립 광풍에 대해서 단 5줄만 할애하는 데 그쳤다. 또한 프랑스 경제사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미쉘 보(Michel Beaud)의 ‘자본주의 역사(Histoire du Capitalisme)’에서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네덜란드 경제를 언급하면서 튤립 광풍에 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경제사학자들은 튤립 광풍을 17세기 중반 유동성이 풍부해진 네덜란드 사회에서 인간의 탐욕과 광기가 불러일으킨 일시적인 해프닝 정도로 보고 있다.

최근 비트코인 때문에 튤립 광풍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비트코인과 튤립 광풍은 순식간에 가격이 비상식적으로 폭등했다는 것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인한 통화 팽창이 주요 원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초기에는 소수의 거래자만 참여하였지만 거래 대상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전통적인 경제학자들과 제도권 금융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기능은 못하고 튤립처럼 한순간 거품이 꺼질 것이라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비트코인은 살아남아 가치를 유지 할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비트코인이 튤립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한 만큼 조금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투기판으로 변질되어가는  비트코인 광풍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생들까지도 비트코인 거래에 뛰어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비트코인으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앞서 언급한 킨들버그는 광기어린 투기를 한마디로 잘 요약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특정한 광기를 돌아보면 붕괴나 공황이 뒤따라 일어났다는 것과 무엇이 잘못되어 가고 있었는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튤립은 과거 악몽에서 벗어나 매년 튤립 축제로 꽃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비트코인도 ‘묻지마 투기’에서 벗어나 가상 화폐 고유의 기능을 다하도록 기대해본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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