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관계‧김여정 방남, 야당 등 고려 정 실장 낙점
정상회담 성사보다 ‘한반도 비핵화’ 의지 전달해야

남북접촉이 예상했던 대로 속도를 내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과 북은 특사를 교환하며 본격적인 대화에 나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대화, 남북정상 회담 등 현안을 둘러싼 남북협상이 봄비와 함께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일 대북 특별사절단을 1박2일 일정으로 북한에 파견했다. 특사단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수석)‧서훈 국가정보원장‧천해성 통일부 ‧국정원 2차장‧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 5명이다. 통일부 당국자 등 5명도 실무진으로 방북했다.

이번 특사단 방북은 평창올림픽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파견한 김여정 특사 방남에 대한 답방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특사단은 김정은 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들을 만날 예정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4일 이렇게 브리핑했다. “특사단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대화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 여건 조성, 남북교류 활성화 등 남북관계 개선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6일 오후 귀환하는 특사단은 귀국 보고 후 미국을 방문해 미국 쪽에 방북 결과를 설명할 것이며 중국·일본과도 긴밀히 협의를 이어나갈 것이다.”

그런데 주목을 끈 대목은 서 원장보다 의전서열이 낮은 정 실장이 ‘특사단 수석’이라는 점이다. 몇 가지 배경이 있는 것 같다.

첫째, 미국을 겨냥한 포석이다. 정 실장은 주미국대사관의 참사관과 공사를 지낸 ‘미국통’으로 미국 정부가 가장 신뢰하는 문재인 정부의 인사다. 정 실장이 ‘대미특사’로도 미국을 방문할 예정인 만큼, 문 대통령은 한‧미관계를 위해서도 정 실장을 수석으로 기용한 것으로 보인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정 실장은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거의 매일 통화하면서 모든 현안을 조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둘째, 정 실장과 서 원장은 둘 다 서울 출신으로 서울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정 실장이 서 원장보다 고교와 대학의 8년 선배다. 사석에선 서 원장은 정 실장을 ‘선배님’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특사단 수석’ 자리를 서 원장이 고사했을 수도 있다.

셋째, 정치적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자유한국당은 서 원장에 대해 “친북 대화 놀이에 푹 빠져 있는 서훈 국정원장”이라고 비판했으나, 정 실장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도 ‘서훈 특사’에 대해 반대했으나 ‘정의용 특사’에 대해서는 찬성했다. 따라서 정 실장을 ‘특사단 수석’에 기용한 것은 야권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문 대통령의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넷째, 북한 김여정 특사의 ‘답방형식’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답방형식’에 적합한 특사는 청와대 고위인사여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서 원장이 의전서열이 높지만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 실장이 ‘답방형식’에 적임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북특사단은 ‘정의용-서훈 투톱체제’로 운영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미통=정의용, 대북통=서훈 카드’는 ‘신의 한 수’라는 일각의 분석이 이를 말해준다.

정 실장은 조용하고 침착하다. 절대로 오버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직후 모두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던 한‧미관계를 원만하게 조율하고 있는 숨은 실력자다. 원래 정 실장은 주제네바대표부대사를 지낸 다자외교와 통상분야의 전문가다. 17대 국회에선 열린우리당 비례대표의원도 지냈다. 하지만 그는 조용하게 의정활동을 했다. 이때부터 문 대통령은 정 실장을 눈여겨봤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의 대선캠프 외교자문단인 ‘국민아그레망’의 단장을 맡겼고, 초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발탁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이번 방북에서도 사전에 미국 측과 충분히 조율해 미국의 오해를 불식시켰다고 한다. 그의 방북 보따리에는 미국의 메시지도 담겨 있다.

서 원장도 조용하고 침착하다. 자신의 목소리가 없는 사람이다. 일점일획의 가감이 없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서 원장은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담당했다. 문 후보를 자문했던 역대 정권에서 고위직을 두루 거친 한 인사는 문 후보의 메시지를 갖고 찾아온 서 원장을 만났다. 당시 서 원장은 한 마디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직 문 후보의 메시지만 전달했고, 그 인사의 메시지를 그대로 메모해 문 후보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서 원장은 사전에 그 메모를 정리해 보내왔는데 그 인사의 발언 내용을 99% 복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다. 야당의 반대에도 그를 평양에 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대북특사단은 남북정상회담 성사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 ‘북미대화 중재’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핵폐기’에 대한 문 대통령의 구상과 의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2006년 11월 23일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건의했을 때, 노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이 중요한데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바로 그것이다. 당시의 ‘노무현 스탠스’가 지금의 ‘문재인 스탠스’여야 한다.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특사단 포함이 ‘정상회담 카드’라는 일각의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

특사단이 이번 방북에서 큰 성과를 얻어내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야말로 ‘탐색대화’에 머물러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10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 시간이 많다. 미국 백악관이 지난 2일 성명에서 밝힌 ‘북한과의 어떠한 대화도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으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대목을 유념해야 한다. 남북접촉에선 ‘합법적 절차’와 ‘국민여론’이 중요하다. 국민이 공감하는 ‘접촉‧대화‧교류‧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이번 특사 파견은 ‘남북관계 비정상화의 정상화’의 첫 걸음이다. 그 정상화의 키워드는 ‘비핵화’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중요하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 회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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