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농산물 세이프 등 독소조항 반드시 시정해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5월에 회동하기로 했다는 뉴스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상상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 같았던 한반도 주변 상황이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국민은 한도의 한숨을 내 쉬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미 간 통상 문제로 돌아가면 여전히 가슴이 답답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조치의 효력은 서명일로부터 15일 후 발효되는데, 캐나다와 멕시코산은 예외적으로 관세 조치 대상국에서 제외됐다.

미 상무부가 제시한 3가지 수입 규제안 중 ‘53% 관세’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지만, 이미 대미 수출 철강에 63%의 반덤핑관세가 부과되고 있는데 추가로 25%의 관세가 적용된다면 국내 철강 산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7일 주최한 ‘대미통상전략 긴급점검 세미나’에서 전북대 최남석 교수는 “글로벌 관세 25% 적용 시 5년 간 최소 24억달러(약 2조5000억원)의 손실과 1만3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15일의 유예 기간 동안 관세 면제를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칠 예정이다. 미 정부가 미국 안보 협력국가에 대해서는 미국의 우려를 해소할 방안을 제시하는 경우 미 무역대표부(USTR)와 협의해 관세 부과를 면제할 수 있다고 밝힌 만큼,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 관계를 내세워 미국에 철강 관세 면제를 설득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뜻대로 될지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우리나라의 철강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미국이 이번 규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대상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서는 적용을 보류하는 등 '관세 폭탄'을 FTA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개정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미 FTA 재협상은 지난달 1일 2차 개정협상을 마무리 지은 뒤 3차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달 말에 예정인 3차 협상에서 미국은 자동차 시장 추가 개방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제약, 지식재산권, 농업 등의 분야에서도 미국의 통상압력이 갈수록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미 FTA 재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나가기 위해 철강 관세를 협상 카드로 활용해 압박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제로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실익이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통상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것은 결국 다른 목적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한미 FTA 재협상뿐만 아니라, 중국 내 지적재산권 조사 결과 발표 및 대응조치를 앞두고 있다. 또한 일본과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TPP) 재가입 가능성을 두고 더 나은 조건을 저울질 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과 협상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목적이 크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한미 FTA 재협상은 미국의 추가 시장 개방 요구로 시작되었지만, 우리도 그동안 불리하게 작용했던 독소조항을 바로 잡을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 안전규정만 지켜도 한국 수출이 가능하다는 자동차 규정과 자동차 관세 원상회복 조치인 스냅백(Snapback) 조항,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농산물 세이프가드 등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4월 말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 등 주변 상황은 한·미간 동맹 관계를 부각시키기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어, 멕시코와 비슷한 예외조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철강 문제로 인해 한미 FTA 재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에 끌려 다니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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