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론’, ‘큰 뚜껑론’ 모호…이번 회담 계기로 ‘문재인표 평화사상 통일철학’ 창안해야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4월27일 판문점 남측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개최된다. 회담의 공식 명칭은 ‘2018 남북정상회담’. 이 명칭은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매년 개최되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인 셈이다.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됨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대화국면’에 접어들었다. 북미정상회담이 5월에 개최되고, 이어서 6월 쯤 북일정상회담도 개최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중정상회담은 이미 지난 26일 개최됐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중정상회담을 가진 것이다. 북러정상회담은 빠르면 4월에 개최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북중정상회담이 관심을 끌고 있다. 전격적으로 이뤄진데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북중정상회담에서 “선대의 유훈에 따라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에 힘쓸 것이다. 남한과 미국이 우리 노력에 선의로 응하고, 평화 실현을 위한 계단성·동보적 조치(阶段性 同步的 措施)로 평화·안정의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키워드는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 그리고 ‘계단성 동보적 조치’다. ‘계단성 동보적 조치’는 ‘점진적·동시적 조치(progressive and synchronous measures)’를 뜻한다. 즉, 이는 북·중이 정상회담을 통해 ‘점진적·동시적 조치’를 통한 비핵화 방안에 합의한 것을 의미한다.

‘점진적·동시적 조치’는 뭔가. 일종의 ‘살라미(salami) 전술’이다. 과거 협상 때마다 여러 단계(동결-불능화-신고-검증-폐기)로 나누어 사용한 협상전략이다.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비핵화 과정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단계마다 남한과 미국의 안보 경제적 양보와 보상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즉, 북한은 비핵화를 실현하되 ‘핵개발유보→핵동결→핵폐기→CVID’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각 단계별로 상응하는 조치(체제보장, 불가침조약, 북미수교, 평화체제 구축, 경제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보장을 받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남 북정상회담과 북 미정상회담에서 남한과 미국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요구하면, 북한은 이에 상응하는 ‘CVIG(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체제안전 보장)’를 역으로 요구하겠다는 전략이다. 따라서 ‘점진적·동시적 조치’는 과거 북핵 6자회담에서 원칙적으로 합의한 ‘행동 대 행동’에 의한 ‘단계적 방식’의 비핵화를 뜻한다. 중국이 과거 제안했던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협상 병행)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점진적·동시적 조치’를 미국이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남한이 중재에 나서도 쉽지 않다. 미국은 이런 방식에 맞서는 ‘일괄타결’ 방식이나 그 이상의 파격적인 방식을 북한 측에 제안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첫 대면에서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미국과 선핵포기 후보상에 합의한 뒤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것을 상기시키는 ‘리비아식 해법’을 불쑥 꺼낼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수용한 뒤 ‘선(先)핵폐기 후(後)보상’을 핵심으로 하는 ‘리비아식 해법’을 선호하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발탁한 것은 ‘트럼프식 협상’을 위한 전략적 고려에서 이뤄진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부동산 거래 협상에서 ‘후려치기 방식’으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가령, 건물 매수협상에서 처음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가격’을 제시해 상대를 당황하게 만든 다음, 반값으로 가격을 후려쳐 인수하는 협상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중정상회담에서도 비핵화를 포함한 모든 현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꺼번에 협상을 타결하는 ‘일괄타결’ 이상의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의 의표를 찌르고 당황하게 만들 수 있는 협상카드를 제시할 수 있다. 대북 군사 옵션 등 ‘플랜B’카드를 가장 먼저 꺼낼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과 미국은 ‘점진적 동시적 조치’ 방식 대 ‘일괄타결’ 방식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은 북한의 장기인 지연 전술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속전속결로 협상하려 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북미정상회담 이전에 북한과 미국이 충돌할 수 있다. ‘문재인 운전자론’이 중대 고비를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자 청와대는 새로운 방식을 거론하며 ‘북 중충돌’을 경계하고 나섰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큰 뚜껑론’을 거론했다. 그는 그 새로운 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든, 일괄타결이든, 리비아식 해법이든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방식을 상정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핵 문제가 25년째인데 TV 코드를 뽑으면 TV가 꺼지듯이 일괄타결 선언을 하면 비핵화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검증과 핵 폐기는 순차적으로 밟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세하게 잘라서 조금씩 나갔던 것이 지난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두 정상 간 선언을 함으로써 큰 뚜껑을 씌우고 그 다음부터 실무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하지만 ‘큰 뚜껑론’은 아직 모호하다. 북미 두 정상이 무엇을 선언한다는 말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수차례 “과거의 실패는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존 볼턴 내정자는 지난 25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수록 좋다”고 했다. 때문에 그런 모호성으로는 ‘문재인 운전자론’을 성공적으로 밀고 나갈 수 없다.

‘문재인 운전자론’의 차축(車軸)은 ‘2018 남북정상회담’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잘 굴러가야 북미 북일정상회담도 잘 굴러갈 수 있다. ‘문재인 운전자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차축’이 튼튼해야 한다. ‘차축’은 평화사상이요, 통일철학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사상 통일철학은 무엇인가. 아직은 정리되지 않은 것 같다. 문 대통령은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협상프로세스 협상시나리오 등은 참모들에게 맡기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을 튼튼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문재인표 평화사상 통일철학’을 이번 기회에 창안하기 바란다.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인류문화가 정상에 도달한 시기를 ‘차축시대(기원전 500년 경)’라고 했다. 이 ‘차축시대’에 성경 불경 사서삼경 도덕경 등 위대한 경전들이 나왔다. ‘2018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중심의 ‘제2의 차축시대’를 여는 계기가 돼야 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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