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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의 프리즘] 김기식은 더 이상 버티지 말라
야당뿐 아니라 국민 여론 싸늘…청와대, ‘대안 없다’는 생각 버려야
2018년 04월 13일 (금) 18:43:08 조한규 webmaster@smedaily.co.kr

“이 기회에 인사 때마다 하게 되는 고민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논란을 피하는 무난한 선택이 있을 것입니다. 주로 해당 분야의 관료 출신 등을 임명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하지만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습니다. 늘 고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김기식 파문’에 대한 입장을 서면 메시지를 통해 밝혔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특정 인사의 거취 문제에 대해 직접 메시지를 쓴 것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거취에 대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인사의 어려움을 토로한 내용이다.

위의 메시지는 후자다. ‘관료 임명’이냐, ‘외부 발탁’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그리게 한다. 특유의 솔직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안이 중대하고 복잡함을 내비치고 있다.

청록파 시인이지 논객으로 명성을 날린 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 전 고려대 교수는 ‘의기론(意氣論·선비를 대접하는 법)’에서 인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양의 정치는 ‘야무유현(野無遺賢)’을 이상으로 삼는 것이 아닌가. 경륜이 있는 자는 스스로 감추지만 현명한 치자(治者)는 그를 찾아내야 하고 끝내 찾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능하고 경륜 있는 사람을 초야에 묻혀 썩게 하고 아첨하는 소인배(小人輩)만을 등용하는 치자는 망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야무유현(野無遺賢)’은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로 ‘현명한 사람을 모두 발탁해서 초야(민간)에 인물이 없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초야의 현자는 모두 발탁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김기식 원장은 과연 ‘초야의 현자’인가. ‘관료 출신 임명’이 아닌 ‘과감한 외부 발탁’인 것은 맞다. 하지만 ‘초야의 현자’는 아니다. 그는 이미 국회의원을 지낸 ‘기성 정치인’이다.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 연일 언론에 얼굴을 내민 유명인사이기도 하다.

여권의 고위 인사는 “금융개혁을 강력히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은 김 원장이 적임이다. 대통령이 직접 발탁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김기식 카드’는 빛이 바랬다. ‘관행’을 거론하면서 그를 ‘엄호’할수록 민심은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관행’에 대한 국민의식은 과거와 다르다. 20대 국회가 아닌 19대 국회일지라도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간 ‘관행’에 대해서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국민은 위법 여부를 떠나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김 원장은 누구인가. 과거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국회의원 시절 공직자의 윤리와 도덕성을 누구보다 강조했던 사람이 아닌가. ‘김영란법’도 주도했다. 그랬기에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더 클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서면 메시지를 통해 “김 원장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문제 되고 있는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춰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위법이 아니더라도 사임토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지층에서조차 공감을 크게 얻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은 ‘사임’이란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했다. ‘사임(辭任)’의 뜻은 ‘맡아보던 일자리를 스스로 그만두고 물러남’이다. 검찰과 중앙선관위의 판단에 따라 ‘사임 여부’를 결정토록 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은 ‘알아서 결정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공은 김 원장에게로 넘어갔다. 검찰과 선관위의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읽고 또 읽고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정의당이 김 원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김 원장의 ‘친정’인 참여연대마저 비판적이다. 국민 절반 이상이 ‘사퇴’에 찬성하고 있다. 보수 언론들과 야당이 과도하게 비판하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민심이 떠나면 어쩔 수가 없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제2장'에서 “공성이불거 부유불거, 시이불거(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弗去)”라고 했다. “공(성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룬 공위에 자리 잡지 않는다. 오로지 그 공위에 자리 잡지 않기 때문에 버림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위공직자일수록 항상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지 않는 길, 역사로부터 버림받지 않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으면 즉각 떠나야 한다.

아울러 청와대는 ‘대안이 없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비판과 저항’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동양의 정치이상이었던 ‘야무유현’을 구현할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초야의 현자는 많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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