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효율성·노동생산성 높이고 규제 완화해야 주력산업 위기 넘길 수 있어

1980년대 초 일본의 한 언론에서 일본 자동차 산업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기사를 낸 적이 있었다. 산업의 중심축이 기계 산업에서 전자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와 같은 재래 산업은 일본에서 경쟁력을 잃고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1980~90년대를 통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 이유는 전자 산업에서 나온 첨단 결과물들이 대거 자동차에 적용되면서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가 끊임없이 생산되어 시장을 넓혀나갔기 때문이다.

이는 첨단 산업이 기존 산업을 업그레이드 혹은 생산성을 향상 시키면서 이끌고 나간다는 사례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 첨단 산업이 기존의 재래 산업을 없애지 않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특히 첨단산업은 초기 단계에서는 존립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기존의 제조업에서 받쳐주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일국의 주력 제조업은 당장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중요할 뿐만 아니라, 미래 산업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도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위기가 갈수록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국내 8대 주력산업 중에서 철강과 조선은 글로벌 업황 침체, 석유화학은 중국의 성장, 기계는 기술경쟁력 취약, 자동차는 글로벌 수요부족에 직면해 있다. 스마트폰도 중국, 인도 등 주력시장에서 부진으로 세계시장 점유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나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아직까지는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향후 2~3년 안에 위기가 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조업 위기의 요인으로는 R&D 효율 저하, 규제, 취약한 노동생산성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세 가지 요인의 현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R&D 투자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다. 우리나라의 R&D 투자비중은 GDP 대비 R&D투자 세계 1위이며, 투자액의 절대 규모도 605억달러로 세계 6위이다(미국 4570억달러, 중국 2119억달러). 그러나 최고 기술국 대비 기술 수준은 78.6%에 불과하고 기술 격차도 평균 4.2년에 달한다. 매년 60억달러의 기술무역적자도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글로벌 변화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관료적인 R&D정책에 기안하는 바가 크다.

둘째, 규제의 문제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지만,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는 말은 항상 나오고 있다. 낡은 규제가 없어지는 만큼 끊임없이 새로운 규제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법률이 규제를 양산하는 주범이라는 지적이다. 국회의원 발의 법률은 정부안과 달리 사전영향평가 의무화가 있지 않아 무분별하게 규제가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규제를 없애기 위해 두 가지 규제를 만드는 현실에서는 규제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나가 힘들 것이다.

셋째, 노동생산성과 관련해서 우리나라 노농생산성은 OECD 34개국 중에서 28위로, 평균 대비 68%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1.2달러로 OECD 평균대비 68%, 미국 대비 50.0%, 일본 대비 79.3%에 그치고 있다. 반면 노동 시간은 OECD 평균 대비 1.8배에 달한다. 그동안 낮은 노동생산성은 높은 노동시간을 통해 보완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노동시간 단축법이 통과되면서 낮은 노동생산성 문제는 제조업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위 세 가지 요인에 대한 대비책이 없으면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의 위기는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4차 산업혁명과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등에는 관심이 많지만 주력산업의 위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 같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주원 실장이 주력산업의 위기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신산업에 환상을 갖지 말고 주력산업 위기부터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새겨들어야 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과 ICT가 융합해 산업경쟁력을 창출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기존의 주력산업에 대한 언급 없이 4차 산업혁명만 논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위기에 대한 대비가 없으면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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