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평화의 제전이었다. ‘2018년 정상회담’의 첫 걸음부터 마지막 걸음까지 평화축제의 연속이었다. 시종 드라마틱했다. 전쟁의 마침표를 찍고, 남과 북 모두가 ‘평화’, ‘평화’, ‘평화’의 노래를 불렀다. 1년 전만 해도 한반도에는 전운(戰雲)이 감돌았다. 그러나 오늘의 한반도에는 평화의 봄꽃이 활짝 핀 것이다. ‘휴전선 위 세계를 흔든 악수’는 민족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아! 판문점 선언! 마침내 ‘통일의 문’을 과감하게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통해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며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종전 선언과 평화체제 전환의 시점을 ‘올해’로 못 박았다. 그리고 ‘남·북·미 3자회담’, ‘남·북·미·중 4자회담’ 등 정전체제의 ‘직접 관련국 정상들과의 회담’이라는 구체적 방식을 제시했다. 특히 두 정상은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내용도 공동 선언에 담았다. 기대 이상의 성과다. 다만, ‘완전한 비핵화’의 구체적 실현방안은 북 미정상회담의 과제로 남겨 놨다. 

'하나의 봄’이란 주제 아래 진행된 마지막 피날레 영상과 ‘아리랑’ 공연은 한반도가 ‘통일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역사는 발전한다. 그러나 수직상승곡선을 그리지 않는다. 반드시 암흑기와 번영기를 번갈아가면서 나선형(螺旋形)의 곡선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역사는 나선형으로 반복돼 동시성(同時性)의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상당한 기간의 호흡을 가지고 볼 때, 역사의 사이클의 윤곽을 발견할 수 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20대 총선과 87년 체제의 재편성’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미국 정당사를 연구하는 이들에 의하면 한 세대가 지나가는 30년이라는 시간은 유권자와 정당이 맺어져 있는 하나의 ‘체제’가 만들어지고 붕괴하는, 즉 재편성되는 사이클이기도 하다. 30년대의 뉴딜연합과, 60년대의 미국의 시민권 운동, 그리고 90년대의 공화당 양원 석권 등을 본다면 30년의 시간에 매우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2018정상회담’은 역사의 어느 단계인가. 한국사의 어느 사이클을 돌고 있는 것인가. 암흑기인가, 번영기인가.

박 교수의 주장처럼 ‘30년 세대론’은 한국사에도 나타난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계산하는 한국인들은 30년이 지나면 한 세대가 바뀐다고 본다. 30년이라는 한 세대가 지나면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나간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경우 고종(高宗) 이후의 역사를 보면 매우 흥미롭게 전개된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21일 승하(昇遐)했다. 일제에 의해 독살됐다는 설이 나돌아 민심이 크게 동요했고 40일 만에 3·1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부터 1949년까지 30년간의 시대정신은 ‘항일독립’이었다. 그 ‘항일독립’의 중심인물은 1949년 6월26일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의 저격으로 서거(逝去)한 김구(金九) 선생이다. 이는 ‘항일독립의 미완(未完)’을 의미한다. ‘친일적폐’의 완전한 청산은 역사의 과제로 남은 것이다.

1949년부터 1979년까지 30년간의 시대정신은 ‘산업화’였다. 그 ‘산업화’의 중심인물은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서거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다. 이는 ‘산업화의 굴절’을 상징한다. 지금의 양극화현상이 그 폐해다.

1979년부터 2009년까지 30년간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그 ‘민주화’의 중심인물은 2009년 8월18일 노환으로 서거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다. 김영삼(金泳三)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도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시련을 적게 겪었다. ‘87년체제’로 민주화는 제도적 정착을 이뤘으나 실질적 정착은 ‘2016-2017년 촛불혁명’을 통해 이뤄졌다. 동시에 이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도화선이 됐다. 다름 아닌 ‘통일의 시대’다.

따라서 2009년부터 2039년까지 30년간의 시대정신이 ‘통일’이지만, 통일시대의 진정한 출발은 촛불혁명 이후가 되는 것이다. 1979년 민주화는 시작됐지만 7년간의 전두환 군사독재 기간을 거쳐 1987년 민주항쟁으로 민주화의 제도적 정착을 이룬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통일시대’는 촛불혁명의 성과 위에서 ‘2018정상회담’에서부터 본격화되는 것이다.

그 ‘통일’의 중심인물은 누구일까. 문재인 대통령인가, 김정은 위원장인가. 둘 다 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인물인가. 현재로서는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남북통일’을 이루는 중심인물이 될지, 새로운 인물이 될지 알 수 없다. 2039년은 미래다. 21년이 남았다. 그 때 어떤 인물이 서거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일’을 위해 가장 노력한 자가 그 자리를 쟁취할 것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 회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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