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 프레스센터 등 제반시설 완벽…김정은 위원장 개혁개방 벤치마킹할 수도

6월12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싱가포르(Singapore)는 섬으로 이루어진 동남아시아 도시 국가다. 정식 명칭은 싱가포르 공화국(Republic of Singapore). 1819년 영국이 무역 거점으로 개발한 도시로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1959년 6월 새 헌법에 의해 자치령이 됐으나 1963년 말레이연방·사바·사라와크와 함께 ‘말레이시아’를 결성했다. 2년 뒤 1965년 8월 분리 독립했다.

13세기 말레이반도 남부와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자바섬을 거점으로 발전한 고대 해상왕국이었던 스리위자야 왕국(Srivijaya Kingdom)의 뜨리부아나(Tri Buana) 왕자가 싱가포르에 표류했을 때, 사자를 목격하고 싱가뿌라(Singapure·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도시)라고 부른 것이 싱가포르 국명의 유래다.

고(故)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1959년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31년간 총리로 재임하고 2011년까지 선임장관 고문장관을 역임하면서 나라의 기초를 확고히 다졌다. 그가 취임 당시 싱가포르 1인당 국내총생산(GDP) 400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5만6000달러를 넘어선 세계 물류 금융 비지니스의 중심지이자 청렴한 나라로 발전했다. 깨끗하고 질서정연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든 리콴유는 탁월한 통찰력 강력한 추진력 실용주의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언론규제 자유억압 강권통치 총리세습 등에선 혹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리콴유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지 H.W.부시 제41대 미국 대통령은 “리콴유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겨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평가했고, 빌 클린턴 제42대 미국 대통령은 “공직자로서의 리콴유의 삶은 독특하면서도 특출하다”고 호평했고, 버락 오바마 제44대 미국 대통령은 “20세기와 21세기 아시아의 전설적 인물 중 한 분”이라고 극찬했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멘토인 헨리 A.키신저까지 “리콴유는 우리가 직면한 이 세계의 본질을 설명해줄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으며, 특히 자신이 속한 지역의 분석에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고 칭찬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이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싱가포르를 선택한 것은 싱가포르가 미국과 가까운 나라이고 동남아를 관할하는 미 해군 기지가 있기 때문만은 아닐 터.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리콴유가 이룩한 나라를 정상에서 보고 싶었던 점도 장소 선택에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아시아를 방문할 때 일부러 싱가포르를 방문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역대 최대급 언론인들이 모일 것에 대비해 대규모 프레스센터가 필요하다는 점, 구글 페이스북 등의 아시아 본부가 있어 SNS활용이 용이하다는 점, 경호문제 등을 고려한 백악관 참모들의 실무적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홍보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판문점 송도 몽골 등은 싱가포르에 밀렸다고 봐야 한다.

반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도 싱가포르는 매력적인 장소이다. 중국 덩샤오핑에게 개혁개방의 길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리콴유이며, 2007년 10월 중국 공산당대회에서 중국의 차기 최고지도자로 결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처음 만난 외국인사가 바로 리콴유였다. 때문에 김 위원장은 덩샤오핑식 개혁개방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선 싱가포르를 직접 방문해 리콴유가 이룩한 업적을 현장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그는 비록 2015년 3월23일 사망해 지금은 없지만, 그의 아들 리센룽(李顯龍)총리가 싱가포르를 이끌고 있다는 점 또한 김 위원장에게는 ‘성공한 세습정치’를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게다가 북한과 싱가포르는 1975년 정식 수교를 맺었다. 이후 북한 대사관이 주재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북한의 주요 대외경제활동의 무대다. 북한에서 투자한 대규모 호텔이 있으며, 상당한 자금도 싱가포르 은행에 예치돼 있다고 한다. 2009년 10월17일 당시 남한 임태희 노동부장관과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접촉을 했던 곳도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는 김 위원장에게 큰 부담이 없는 장소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리콴유의 유산을 목격하면서 가장 먼저 그가 남긴 다음과 같은 자신의 평가(‘리콴유가 말하다’, 231쪽)를 가슴에 새기기 바란다. “나는 국가지도자(statesman)로 기억되길 바라지 않는다. 우선 나부터 나를 국가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평가하는 나는 그저 단호하고 일관되고 끈기 있는 사람 정도다. 무슨 일을 하면 나는 성공할 때까지 매달린다. 그게 다다. 자기가 국가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는 게 좋다.” 

“지인자지(知人者智), 자지자명(自知者明)”이라고 했던가. “타인을 아는 자는 지혜로울 뿐이지만, 자신을 아는 자라야 명철하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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