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 있는 자세로 ‘차이’를 인정하고 새로운 접근을 해야

남북관계가 출렁이고 있다. 예상됐던 일이다. 개인이나 국가의 일의 건 간에, 세상의 모든 일은 ‘역(易·변화)’으로 이뤄진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 (Gilles Deleuze)는 이를 ‘차이와 반복’으로 설명했다. 이 세상에선 ‘차이’가 나는 것들이 부정되지 않고, 계속 그 자체로 ‘반복’되면서 사물들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반복’은 ‘동일성’이 아니라 ‘되풀이 되는 시간’이다. 때문에 ‘사이(between)’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일과 일 사이, 사물과 사물 사이, 대화와 대화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들뢰즈의 ‘차이’는 헤겔식 ‘부정성’이 아니라 ‘비관계’를 뜻한다. 빛과 어둠이 병행적으로 있다는 사실에서 번개가 생긴 것처럼, ‘차이’는 변증법적 대립의 운동이 없이 사물을 출현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이’는 본질적으로 긍정의 대상, 긍정 자체라는 얘기다. 가령, 음악(재즈)은 선율이 반복되면서 생성된다. 그리고 선율의 반복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부정의 선율이 아니다. 긍정의 선율이다. 따라서 반복되는 선율보다 ‘차이’를 어떤 선율로 채우느냐가 중요하다. 명곡이 거기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비관계’의 ‘차이’가 중요하다. 대화하고 협상할 때보다 그 사이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다. ‘4·27남북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관계가 다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4·27남북정상회담’과 ‘6·12북미정상회담’ 사이의 ‘차이’가 중요하다. 그 ‘차이’를 방심했다간 얼마든지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16일 갑자기 남북고위급회담을 연기했다. 이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로 미국의 대북 압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이 성명은 미국 행정부 안에서 북한이 반발하는 ‘리비아 핵폐기 방식’을 거론한 데 대해 극도의 불쾌감을 표시했다. “미국이 일방적인 핵포기 정책만 강요하려 든다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까지 경고했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리비아모델’을 북한에 적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모델’을 언급, 비핵화에 합의할 경우 강력하게 김정은 체제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북한의 경제적 번영을 지원할 것도 시사했다. ‘당근’을 주면서 북한을 달래는 한편 엄포도 놨다. 미국은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킬 뜻을 분명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다. 대응이 미지근하고 모호하다. 회담과 회담 사이의 ‘차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7일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남북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 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무런 대응이 없다. 18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리 위원장의 발언을 보니 통일부가 오전에 발표한 대변인 성명에 대해 거론한 것이 아닌가”라며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위급 회담을 중단한 북한의 진의가 파악이 됐는가’라는 기자들의 물음에는 “알지도 못하고, 설사 안다고 해도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북한이 언급한 ‘엄중한 사태’는 한미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을 가리킨다. 일각에선 F-22 스텔스기가 평양까지 비행했기에 북한이 놀라서 반발한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한다. ‘판문점 선언’ 제2조 1항이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데 대해 말문이 막힌다. 무조건 북한에 ‘사과’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차이’의 대처에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타이밍을 놓치면 그 ‘차이’가 ‘번개’가 돼서 남북관계를 파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1주일 만에 83%포인트에서 76%포인트로 급락한 것을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8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북한의 남북고위급회담 연기와 대남강경발언 원인을 국방부가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간 적대 행위 중지’를 담은 판문점선언 이후에도 국방부가 맥스선더 훈련 축소를 검토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문 대통령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 ‘경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문재인 운전자론’은 ‘이상(理想)’이 아니다. 엄연한 ‘현실(現實)’이다. 현실이라면 수시로 운행을 해야 한다. 생물처럼 살아 움직여야 성공할 수 있다. 남북관계, 북미관계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고개도 있고 늪도 있다. 오는 23일부터 25일 사이가 중대 고비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실행 여부가 관건인 것이다. 불과 며칠 남지 않았다.

미국이 2002년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 배경, 2005년 북한의 평화적 비핵화를 위한 9·19공동선언을 철저히 유린한 이른바 ‘BDA(Banco Delta Asia)사태’를 일으킨 배경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강경파들이 불충분한 증거들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역사적 합의들을 휴지로 만들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관계와 관계의 사이에서 ‘차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다.

모든 일은 쉽다가 어렵고 어렵다가도 쉽다. 쉬움은 어려움과의 관계 속에서 쉬운 것이 되고 어려움도 쉬움과의 관계 속에서 어려운 것이 된다. 그러면서 ‘반복’된다. 즉, ‘차이와 반복’이다. 따라서 상대(반대편)가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상대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나)은 그 상대(반대편)를 향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진정 북한에 대해 열려 있는가.

남북회담에 임할 때, ‘동일성(북한은 그런 국가다. 이번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에 대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매번 새롭게 임해야 한다. 열려 있는 자세로 그 ‘차이’를 인정하고 새로운 접근을 해야 한다. ‘정치는 생물’이란 말은 ‘정치는 역(易)’이란 말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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