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자 1만달러 요구’ 등 가짜 뉴스 언론 신뢰성 훼손
사람 중심의 가치인 ‘언론의 인간화’ 뉴스의 중심축 돼야

‘TV조선’은 지난 19일 “북한은 사증 명목으로 1인당 1만 달러, 약 1100만원의 돈도 요구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TV조선’ 홈페이지의 ‘정치뉴스’에는 <단독> “北, 美 언론에 핵실험장 취재비용 1인당 1만 달러 요구”라는 제목의 엄성섭 정치부 기자의 기사는 23일 오전 8시 현재에도 실려 있다. 그런데 “북한은 사증 명목으로 1인당 1만 달러, 약 1100만원의 돈도 요구했습니다”라는 기사의 취재원에 대한 언급은 없다. “외신 기자들은 사증 비용과 항공요금을 합해 풍계리 취재에 1인당 3000만원 정도 들어간다고 전했습니다”는 기사에 ‘외신기자들’을 언급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외신기자들로부터 ‘1만 달러(약 1080만원)’의 내용을 입수한 것처럼 보도했을 뿐이다. 일부 다른 언론에서도 이를 그대로 받아 북한이 마치 ‘비자장사’에 나선 것처럼 보도했다. 상당한 파장이 일었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이 팩트를 체크한 결과 이 보도는 ‘가짜뉴스’로 드러났다. ‘한겨레신문’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한국 취재진은 이날(22일) 아침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원산행 비행기에 오르려고 수속을 밟던 외신 기자들에게 ‘북쪽에서 비자 명목으로 1만달러를 지불했는지’를 물었다. 미국 CNN의 티모시 슈워츠 베이징지국장은 ‘비용(fee)은 없었다’고 답했다. 다른 외신 기자도 ‘160달러를 사전에 냈고, 평소 출장비 정도의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중략)…익명을 전제로 ‘한겨레’의 취재에 응한 외신 관계자도 ‘평소 방북 취재와 같은 수준의 비자 비용을 냈다’며 ‘1만달러설을 들어서 알고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중략)…북한 관광상품을 판매하는 중국과 유럽 쪽 복수의 여행사에 따르면 북한 관광용 비자는 50유로(약 6만4000원)면 나오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북문제에 정통한 한 인사는 23일 “북한이 과거처럼 남한 측에 돈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한과 접촉할 때 돈을 요구하지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북한이 ‘과거에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섣부른 예단은 오류를 낳는다.

4·27남북정상회담 이후 보도경쟁이 치열해지다보면 자칫 ‘가짜뉴스’를 양산할 수 있다. 취재원의 말만 듣고 확인하지 않은 채, 그 말을 그대로 보도할 경우 기사의 신뢰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속보경쟁으로 데스크의 체크 없이 기자들이 직접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다보면 ‘가짜뉴스’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빛의 속도’로 퍼져나간다.

여기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오보와 ‘가짜뉴스’가 대량으로 양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리얼’을 가장한 ‘가짜뉴스’가 잠간 동안 확산되는 것만으로도 정치 상업적 이익을 취할 수 있다고 보고, ‘일단 저지르고 보자’식의 ‘사이비 언론’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반 여론을 사전에 탐색하기 위해, 어떤 협상에서 유리하도록 판을 짜거나 흔들기 위해 ‘익명의 당국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른바 ‘언론플레이’ 또한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이런 식의 보도가 지속되면 언론은 신뢰를 잃게 된다. 기자들의 판단을 토대로 한 기사는 아예 믿지 않게 된다. 반면 컴퓨터 활용 취재보도 (CAR·Computer Asisted Reporting)를 통해 대규모 데이터를 수집한 후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도하는 ‘데이터 저널리즘’이 부상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연합뉴스는 ‘데이터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AI(인공지능)기반 뉴스, VR(가상현실)뉴스플랫폼, 모바일 영상 스트리밍 등 고도화된 미디어 서비스가 제공됐다. 이어 전 경기 속보취재에 로봇 알고리즘 '올림픽봇'(olympicbot.yonhapnews.co.kr)을 개발해 투입했다. ‘올림픽봇’은 올림픽 개막과 함께 IOC의 공식 경기 데이터를 직접 받아 모든 경기종목에 걸쳐 매 순간 신기록 수립 경기결과 메달순위 한국 선수 활약상 등 올림픽 관련 속보를 자동으로 작성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기사를 송고했다. 상당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쏟아지는 데이터 중에는 많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오류가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할 경우 거기서 나온 정보들은 신뢰할 수 없게 된다. ‘데이터 저널리즘’에서 사용하는 시각화가 모바일에서 잘 작동되지 않아 독자에게 기사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특히 시각적 표현이 강조되다 보면 이슈의 심층적 의미를 제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양질의 기사는 단순히 데이터의 ‘수집-정리-분석-시각화-스토리화’만으로는 생산되지 않는다.

사실 인문학적 직관이나 문학적 상상력 등도 기사작성에 도움이 된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가 ‘미학은 상상력과 오성(悟性)의 자유로운 유희’라고 했던 명제는 기사작성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스포츠 날씨 주식 등 의미보다 실제 데이터가 중요한 부분에선 ‘데이터 저널리즘’의 정확도가 높지만 국내정치 국제정치 사회적 이슈 등을 다루는 기사에서는 ‘데이터 저널리즘’의 적용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데이터 저널리즘’이 언론의 미래일 수는 없다. 철학 역사학 문학 심리학 미학 윤리학 등 인문학의 토대 위에서 언론의 좌표는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 인문학은 인간학이고 언론의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매스미디어가 발달하면 할수록 주체인 인간은 소외돼 왔다. ‘인간이 없는 언론’으로 전락한 것이다. ‘권력의 하수인’, ‘자본의 노예’가 된 것이다. 오죽했으면 언론인들이 ‘기레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겠는가. 따라서 ‘언론의 인간화’가 답이다. ‘인간 중심의 언론’ 만이 언론이 가야 하는 바람직한 미래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언론의 인간화’, ‘인간 중심의 언론’이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언론(言論)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언론(言論)은 ‘언어의론(言語議論)’이며, 의론은 평론(評論)을 뜻한다. 그래서 영어 press를 지칭하는 ‘언론’은 ‘언어적 평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언어의 ‘언(言)’은 매우 심오하다. 중국 후한의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직언왈언, 논란왈어(直言曰言, 論難曰語·직접 말하는 것을 ‘言’이라고 하고 질문에 답하는 것을 ‘語’라고 한다. 염정삼의 ‘설문해자주’ 참조)”이라고 풀이했다. 논어(論語)의 마지막 구절은 “부지언 무인지인야(不知言 無以知人也·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서 공자(孔子)는 역(易)에 성인의 도(道)가 네 가지 있는데, 그 하나가 ‘언(言)’이라고 했다. 성경 요한복음 1장(1절-3절)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곧 하나님’, 즉 ‘언(言)이 곧 신(神)’이란 얘기다.

이처럼 ‘신성한 언(言)’을 다루는 언론은 매우 신성하며 고차원적인 인간의 정신활동이다. 언론은 ‘매체를 통해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해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이란 사전적 의미를 넘어 ‘성인(聖人)의 도(道)를 구현하는 활동’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굳이 ‘인간 중심’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언론’ 그 자체에 이미 ‘인간 중심’이란 뜻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언론’은 ‘인간 중심의 언론’이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인간이 없는 언론’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가짜뉴스’의 폐해에 따라 ‘데이터 저널리즘’, ‘로봇 저널리즘’이 발달할수록 언론은 ‘인간이 없는 언론’으로 고착화될 우려가 있다. SNS가 발달해 ‘모바일 저널리즘’이 극성을 부릴수록 ‘언론의 인간화’는 더욱 절실해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언론의 인간화’을 이루기 위해서는 언론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성인의 도를 구현하는 활동’이란 근본의 자리로 복귀(復歸)해야 한다는 얘기다.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곡학아세(曲學阿世)’식 보도를 일삼는 언론은 ‘참언론’이 아니다. 기업의 이익과 오직 광고 기획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참언론인’이 아니다. ‘직언(直言)’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고, 세상을 맑게 하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참언론’, ‘참언론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사람 중심의 가치’가 뉴스의 중심축이 돼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언론의 인간화’이며 ‘인간 중심의 언론’이다. 이념적 의도를 가지고 독자나 시청자들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려는 것은 언론의 길이 아니다. 언론이 본연의 길을 가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언론의 인간화’ 요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보도의 중심 가치를 ‘인간존중’에 둬야 한다. 성인의 도(道), 즉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구현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언론인들은 심신수행을 열심히 해야 한다.

둘째, 회사원으로 전락한 ‘직장인 기자’에서 정론직필(正論直筆)만을 고수하는 전통적인 ‘지사(志士)로서의 언론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언론인들은 인문학적 소양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셋째, 팩트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외신이나 SNS에 떠도는 뉴스를 그대로 옮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반드시 당사자나 전문가에게 확인해서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넷째, 모호한 ‘감(感)’에 의존한 해설이나 논설을 되도록 삼가야 한다. 직관(直觀) 통찰(洞察) 혜안(慧眼)을 토대로 한 해설이나 논설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언론인들은 독서와 명상을 생활화해야 한다.

다섯째, 인권을 최우선으로 존중하되, 야만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서늘하게 비판해야 한다. ‘균형 유지’는 독자와 시청자들의 혼선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바르게 가려서 확실하고 선명하게 보도해야 한다.     

요즘 일부 기자들은 ‘단독기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편승해 일부 언론은 ‘사적(社的)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을 비틀어 왜곡하고 ‘가짜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다. 특히 일본에 비해 중국과 북한에 대해 정체불명의 비판적 뉴스를 보도하는 것은 바른 언론의 태도가 아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국익도 생각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파탄이 나서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인가.

최근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쏟아지는 ‘가짜뉴스’를 접하면서 ‘성인의 도를 구현하는 활동’으로서의 언론의 근본 자리로 복귀하는 것이 참으로 멀고도 험난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언론인들에게 당부한다. ‘심사숙고(深思熟考)-정론직필(正論直筆)’의 언론정신을 항상 가슴에 간직하고, ‘팩트체크’에 소홀함이 없기 바란다.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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