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군산복합체를 핵심으로 하는 강경파와 온건파 경쟁·대립
북미정상회담 개최되기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 행동 믿을 수 없어

“미국에는 두 개의 정부가 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2005년 9월20일 당시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한 말이다. 이는 2005년 9월 19일 제4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와 IAEA(국제원자력기구)로 복귀한다는 약속을 한 ‘9·19공동성명’이 채택된 지 하루 만에, 미국 재무부가 BDA(Banco Delta Asia) 제재를 단행한 데 대해 당시 정 장관이 힐 차관보에게 따지자 힐 차관보가 던진 말인 것이다. BDA제재는 존 볼턴 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측근인 스튜어트 레비 당시 재무부 차관 주도로 이뤄진 북한계좌 2500만 달러를 동결한 조치다.

이처럼 미국 행정부 내에는 ‘9·19공동성명’을 주도한 온건파와 ‘9·19공동성명’을 무산시키기 위한 BDA제재를 주도한 강경파가 존재한다. 좀 더 깊게 들어가면,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온건한 정통관료집단(현실주의 외교관)과 전쟁과 갈등을 부추기는 네오콘(neocons)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가 서로 경쟁 대립하면서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힐 전 차관보는 ‘크리스토퍼 힐 회고록 : 미국 외교의 최전선’에서 ‘9·19공동성명’을 위한 북한과의 협상과 관련, “그들(네오콘)은 북한을 자신들의 최후 투쟁 상대로 만들려고 했다”면서 대북 협상 곳곳에서 네오콘의 견제와 방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힐은 당시 네오콘으로 분류된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존 볼턴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 등이 배후에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 네오콘을 후원한 그룹은 미국의 군산복합체였다.

박한식 전 미 조지아대 교수는 ‘선을 넘어 생각한다’에서 “부시 행정부를 탄생시킨 한 축인 군산복합체로서는 ‘9·19공동성명’이라는 외교적 성과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하루만에 ‘9·19공동성명’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던 배후에 군산복합체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군산복합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군산복합체는 미국의 군부와 군수업체, 의회와 상호의존적 결탁 체제입니다. 이는 이익 공동체인 동시에 담론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산복합체를 모르면 결코 미국의 외교정책, 특히 대북정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군산복합체는 미국을 좌지우지합니다. 돈이 미국을 움직이고 그 돈은 총칼에서 나옵니다.”

박 전 교수는 이어 그 군산복합체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북핵문제야말로 미국 군수산업의 마중물을 뜻합니다. 더구나 남북 간의 긴장은 한국을 미국의 최대 무기 수입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군산복합체는 북한의 ‘악마’이미지가 필수인 셈이며, 북한은 한국과 일본에 무기를 팔아먹기 딱 좋은 알리바이에 불과합니다.” 즉, 미국 군수산업 때문에 북한이 악마화되고 남한은 미국 무기를 구입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네오콘이나 군산복합체는 같은 그룹으로 봐야 한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에서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가리켜 ‘군산정학복합체(軍産政學複合體)라도 부르는 거대한 기득권 연합체’라고 주장했다. 즉, 미국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군부 군수산업 정계 학계의 연합체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이론적 토대는 네오콘을 배출한 학계가 마련했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박성래 KBS기자는 ‘레오 스트라우스’에서 독일계 유대인 정치사상가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 전 시카고 대학 교수가 네오콘에게 사상적 배경을 제공한 학자라고 지적했다. 스트라우스는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주장한 ‘철인정치(哲人政治)’를 비틀어 해석했다. ‘진리’는 냉혹함을 견딜 수 있는 소수의 엘리트만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보수주의 백인우월주의 유대교의 선민사상을 지닌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철인’이며, 이들이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힘으로 세계평화를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전쟁이나 정권교체(regime change·체제를 붕괴시켜 새 체제를 세움)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네오콘의 생각도 바로 스트라우스로부터 나왔던 것이다.

이런 스트라우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미국 행정부 내의 핵심인물은 폴 울포위츠(Paul Wolfowitz) 전 미 국방부 부장관이다. 그는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부 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이라크가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으며,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허위정보를 퍼뜨려 이라크 전쟁을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불렀던 것도 울포위츠의 작품이다. 물론 당시 존 볼턴 국무부 차관은 울포위츠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이다. 볼턴 보좌관은 2002년 5월 국무차관 시절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악의 축’ 국가들과 함께 리비아 시리아 쿠바도 추가적으로 ‘악의 축’의 국가라고 불렀던 것이다.

볼턴 보좌관이 지난 4월29일(현지 시각)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 협상은 리비아식 모델(선(先)폐기-후(後)보상’의 일괄타결 비핵화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밝힌 것도 울포위츠의 ‘악의 축’ 전략과 맥락을 같이 한다. 네오콘으로 분류되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1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16일 볼턴 보좌관을 겨냥해 “핵개발의 초기단계에 있던 리비아를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와 대비하는 것 자체가 아둔하기 짝이 없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24일 펜스 부통령에 대해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 ‘무지몽매’ 등의 표현을 사용해 강하게 비난했다. 이는 북한이 이들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김계관-최선희의 비난은 펜스 부통령과 볼턴 보좌관을 비롯해 미 행정부 내 네오콘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결과를 낳았다. 한마디로 ‘군산정학복합체’를 자극했던 것이다.

그 결과 볼턴 보좌관이 총대를 메고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주도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저녁 백악관에서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켈리 비서실장 볼턴 보좌관 등과 북미정상회담 취소에 대해 논의했는데, 이 자리에서 볼턴 보좌관의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NBC뉴스는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회담 취소 결정을 이끈 사람은 볼턴”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이도록 볼턴이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당신을 몹시 만나고 싶었지만 슬프게도 당신들이 최근의 담화문에서 드러낸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볼 때, 나는 이번에는 오랫동안 계획해온 회담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던 것도 볼턴 보좌관의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박성래 기자는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에 대해 그의 제자 토머스 팽글의 ‘현명한 철학자는 정치적으로 철학해야 한다’는 언급에 대해 “이는 사회질서 유지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고귀한 거짓말’이 정당하다는 말이다. 거짓말로 철학을 구성해야 한다는 말이다.”고 지적했다. 네오콘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비로운 패권주의’를 표방하면서 ‘고귀한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얘기다.

박 기자가 13년 전 네오콘에 대해 분석한 글이 오늘의 미국 정치현실을 관통한다. “스트라우스의 국제정치 무대는 ‘강자의 자연권’이 지배하는 정글이다. ‘정의’라고 불리는 것들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강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행동하고는 이를 ‘정의’라고 부른다. 윌리엄 크리스톨과 로버트 케이건의 ‘자비로운 패권주의’도 마찬가지다. 강자인 미국이 마음대로 행동해놓고 이를 ‘자비’라고 부르는 것이다. 강자는 반드시 약자의 희생을 제물 삼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므로 스트라우스에게 제국주의는 좋든 싫든 언제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그는 “스트라우스와 그 제자들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윌리엄 크리스톨은 네오콘 기관지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장을 지낸 네오콘의 전도사이며, 로버트 케이건은 ‘미국이 만든 세계’의 저자로 네오콘 외교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직후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고 하루 만에 유턴해 6·12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은 네오콘의 논리에 따른 ‘강자의 자연권’이며 신(新)제국주의다. 미국이 하는 모든 일은 ‘정의’이며 ‘자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 미국 대륙에 이주한 유럽인, 특히 영국인들은 ‘청교도 정신’을 포장해 수세기 동안 조용히 지내오던 원주민인 인디언들에게 화약 냄새를 풍기며 악정 폭행 착취를 자행했었다. 그것이 그들의 ‘정의’였고 ‘자비’였던 셈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정치에서 미국정신을 가리켜 ‘경쟁(competition)’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쟁’이 과열되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투쟁’으로 변모한다. 스포츠에서 ‘경쟁’은 아름답고 시장경제에서 ‘경쟁’은 생산을 배가시키지만, 국제정치에서 ‘경쟁’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행정부에서의 외교는 이런 ‘경쟁’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패권적 미국 지상주의’다. 말을 수시로 바꿔가며 북미정상회담 취소와 재개를 거듭하는 ‘트럼프식 밀당’, 즉 ‘부동산 거래식 협상’도 ‘경쟁’인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두 얼굴이 있다. 정의와 불의, 참과 거짓, 선과 악의 ‘이중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는 하루 전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언제나 미국 외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하나가 아닌 둘이어야 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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