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미학 전통 계승…페이크러브 ‘풍류도(風流道)의 미’ 공존

예술은 ‘기쁨’을 창조한다. 인간은 누구나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느낀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은 바로 그 작품에 ‘미(美·아름다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는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정적자극(情的刺戟)’이다. 즉, ‘미’는 인간이 정적(情的)으로 느끼는 예술 작품의 가치인 셈이다.

미학(美學)의 창시자인 독일 철학자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이 미학을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이라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노영덕은 ‘처음 만나는 미학’에서 “감성에 호소하는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이성으로 개념화하고자 하는 학문”으로 해석했다. ‘느낌의 언어화’를 도모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칸트(Immanuel Kant)는 ‘판단력비판’에서 미적 판단과 취미 판단은 하나의 직관적 판단으로서 대상의 표상(表象)을 객체로서가 아니고 주체의 쾌(快), 불쾌(不快)의 감정에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 ‘미’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만족한 감정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즉, 칸트 미학의 특징은 ‘미’의 본질을 밝히기보다 ‘미’를 판정하는 능력을 문제 삼았다는 점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술로서의 음악은 우선 인간에게 감성적으로 ‘기쁨’을 준다. ‘기쁨’을 느끼지 않다면 누가 음악을 듣겠는가. TV 라디오에서 자신의 감성에 맞지 않는 음악이 나오면 바로 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울러 음악은 고대로부터 ‘카타르시스(katharsis·정화)’를 느끼게 한다. 카타르시스는 원래 종교적 제의(祭儀)로 인한 정서적 효과를 가리킨 말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의 때의 음악과 춤, 그리고 연극 등이 이를 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정을 달래고 영혼을 세척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정화작용을 카타르시스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카타르시스를 언급하면서 ‘시(詩)가 감정을 해방시킨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요즘 전 세계 젊은이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페이크러브(Fake Love)’는 확실히 그들에게 강렬한 기쁨을 준다. 동시에 묘한 카타르시스도 느끼게 한다.   

‘페이크러브’는 “Love Yourself 轉 ‘Tear’”의 타이틀곡이다. 대중음악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노래는 ‘기이한 음울함을 자아내는 이모 힙합(Emo Hiphop) 장르의 곡’이라고 한다. ‘Emo’는 ‘emotional’의 줄임말이며 힙합에 이모가 더해지면 복합장르가 된다. 유튜브를 통해 ‘그런지 록(Grunge Rock·미국 시애틀에서 유래한 시끄러운 록 음악의 일종)’의 기타 사운드, 매우 자극적인 ‘트랩 비트(Trap Beat·흐느적거리면서 몸 들썩이기 좋은 사운드로 미국 남부 흑인풍의 ‘사우스 힙합’의 한 장르)’가 세계 각국의 세 원숭이 이미지를 비틀어 진실을 외면하려 하는 소년을 형상화한 안무와 조화를 이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판타지 영화를 보거나 몽환의 세계를 유영할 때 느끼는 형용할 수 없는 그 어떤 ‘느낌’이 감정의 심연을 강타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카타르시스’ 이상의 ‘감정 해방’을 느끼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을 키워낸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서울대 미학과 출신이어서 그런 것인가. ‘페이크러브’의 가사에도 미학적 요소가 듬뿍 담겨 있다.

무엇보다 ‘구성’이 절묘하다. 질 들뢰즈 (Gilles Deleuze)의 ‘차이와 반복’의 미학을 구현한 것인가. 가사 사운드 댄스 퍼포먼스가 ‘반복’되면서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차이’가 ‘반복’의 중독성을 아름답게 만드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느끼게 한다. 들뢰즈가 강조한 ‘곡선’과 ‘변곡’이 중간 중간에 있어 다양한 ‘기쁨’을 주고 있다.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널 위해서라면 난 슬퍼도/기쁜 척 할 수가 있.었.어/널 위해서라면 난 아파도/강한 척 할 수가 있.었.어/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길/내 모든 약점들은 다 숨겨지길/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I'm so sick of this/Fake Love (3번)/I'm so sorry but it's/Fake Love (3번)”

“I wanna be a good man just for you/세상을 줬네 just for you/전부 바꿨어 just for you/Now I dunno me, who are you?/우리만의 숲 너는 없었어/내가 왔던 route(루트) 잊어버렸어/나도 내가 누구였는지도 잘 모르게 됐어/거울에다 지껄여봐 너는 대체 누구니” 등등의 특이한 가사들이 중간에 있다. 절창이다. ‘거울에다 지껄여봐 너는 대체 누구니’가 가슴에 비를 내리게 한다. 카타르시스다.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I'm so sick of this/Fake Love (3번)/I'm so sorry but it's/Fake Love (3번)/널 위해서라면 난 슬퍼도/기쁜 척 할 수가 있.었.어/널 위해서라면 난 아파도/강한 척 할 수가 있.었.어/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길/내 모든 약점들은 다 숨겨지길/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 ‘반복’이지만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어와 영어가 섞여 있다. 절묘하다. 그러다보니 우리 노랫말이 영어처럼 들린다. 방탄소년단의 7개 앨범이 연속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 올랐고, 빌보드 메인 차트인 빌보드 200에 1위로 진입했다. ‘페이크러브’가 메인 차트인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0위로 진입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미국인들의 귀에도 노래가 전혀 거슬리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필자는 본지 2017년 11월6일자 ‘왜 ‘방탄소년단’이 대세인가‘라는 칼럼에서 그들의 성공요인을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로 분석(보다 자세한 분석은 당시 기사 참조)한 바 있었다. 첫째로 방탄소년단은 평균 20대 초반(20~24세)의 ‘조각미남’들로 이뤄져 있다. 둘째로 리더인 RM을 비롯해 방탄소년단 모든 멤버는 작사·작곡 능력을 갖추고 있다. 셋째로 방탄소년단의 퍼포먼스, 칼 군무가 압권이다. 넷째로 방탄소년단은 문학·영화 등 다른 예술분야의 콘텐츠를 활용한다. 다섯째로 방탄소년단은 SNS, 개인 인터넷 방송을 잘 활용한다. 여섯째로 방탄소년단은 단순한 사랑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학교폭력·입시를 비롯해 청소년의 고민·희망·사랑을 노래한다. 일곱째로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를 실천하고 있다. 지금도 이 분석은 압도적으로 유효하다. 다만 이번 ‘페이크러브’는 ‘DNA’보다 감성적으로 깊이가 있고, 내용과 형식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 완성도가 높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이처럼 낭만주의 미학의 전통을 계승했다. 감성과 상상력에 의한 독창성, 형식을 타파하는 개성과 자유분방함, 그리고 무 법칙성, 기이함, 이국적 취향 등 낭만주의 예술을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크러브’에는 ‘우울한 아름다움’과 ‘신(神)’ ‘멋’ ‘한(限)’이 융합돼 있는 ‘풍류도(風流道)의 미’가 공존한다. 특히 뮤직비디오의 빼어난 ‘영상미’는 한국 영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싸이(박재상)의 음악이 음악 춤 퍼포먼스의 융합이었다면,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여기에 한국의 전통적인 ‘풍류도의 미’가 가미됨으로써 종교적 제의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성함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이들의 수명을 길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풍류도의 미’를 상실하면 방탄소년단도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방시혁 대표는 ‘풍류도의 미’를 세계화하는 음악을 꾸준히 만들기 바란다. 한국 젊은이의 미래가 ‘풍류도’에 있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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