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지정학적 위치 탁월…중국의 ‘일대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한국의 ‘신남방정책’이 교차하는 전략지역

6·12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의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다. 백악관이 5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회담 장소와 시간이 결정·발표됐으니 북미정상회담이 6월12일 오전 9시 개최되는 것은 확실해졌다. 갑자기 동남아 특급 휴양지 센토사가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 본섬에서 800m 떨어진 센토사 섬에서 개최되는 것은 보안 경호, 경관, 그리고 지정학적 상징성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싱가포르 본섬과 센토사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지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카펠라 호텔(Capella Singapore Hotel)이 나온다. 오솔길을 차단하면 외부인 출입을 막을 수 있다. 안전하다. 6성급 카펠라 호텔은 센토사 중심부에 숲으로 뒤덮인 작은 언덕에 있다. 동남아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해변 팔라완비치(Palawan Beach·영웅의 해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경관이 빼어나다.

그래서 과거 영국군이 이곳에 주둔했다. 호텔 본관은 영국군 막사를 아름답게 꾸민 건물로 영국풍이다. 신관은 현대적 건물이다. 카펠라(Capella)는 ‘수염소’를 의미하는 라틴어로 ‘마차부자리 α별’의 이름. 초겨울에 보이는 밝은 별이다. 매우 신성한 의미를 지닌다. 로마 교황청의 교황전용성당 이름도 ‘Capella Papale’이다. 카펠라 호텔이 교황 이미지를 담고 있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23년 전 가족들과 함께 센토사를 여행한 적이 있다. 카펠라 호텔은 멀리서만 보고, 샹그릴라스 라사 센토사 리조트에서 숙박을 했다. 익스프레스 모노레일을 타고 섬을 일주하면서 S.E.A아쿠아리움, 유니버셜 스튜디오, 멀라이언 타워, 팔라완 비치, 키사이드 아일, 희귀석박물관·싱가포르역사박물관 등을 구경했다. 본섬으로 돌아올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 위를 지나왔었다. 센토사는 기억에 남는 관광지였다.

센토사(Sentosa)는 싱가포르 남쪽에 있는 섬이다. 동서길이 4㎞, 남북길이 1.6㎞인 작은 섬이다. 지명은 산스크리트어로 ‘만족’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으며,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를 뜻한다. 1970년대 당시 리콴유(李光耀) 총리가 싱가포르 독립 이전 영국군 주둔지였던 곳을 관광단지로 개발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원래는 ‘등 뒤에서 죽음을 맞는 섬’이라는 뜻의 뿔라우 벌라깡 마띠(Pulau Belakang Mati)였다. 해적들의 본거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죽음의 장소’에서 ‘평화와 고요’의 섬으로 변신한 센토사에서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것은 그 ‘지정학적 상징성’이 크다.

싱가포르는 역사적으로 번갈아가며 해양 세력의 지배를 받았었다. 1511년 포르투갈이 말레시아반도 남서부에 있는 전략적 항구 말라카(Malacca)를 점령이후 싱가포르는 유럽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포르투갈이 인도양에서 말라카 해협에 이르는 해상 무역권을 장악했던 것이다. 그러나 17세기에는 네덜란드와 영국이 그것을 나눠 가졌다. 영국은 인도, 네덜란드는 동남아 일대를 지배했다. 싱가포르는 19세기 초까지 네덜란드 영향권에 있었던 것이다.

1819년 6월7일 영국의 래플스(Sir Thomas Stamford Raffles)가 조호르(Johor) 왕국과 술탄 거주지역과 떼멩공(Temenggong)을 제외한 싱가포르 전역을 영국 동인도회사에 영구적으로 할양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1826년 싱가포르를 해협식민지(the strait settlements)에 편입시켰고, 1867년 직할 식민지로 삼았다. 2차 대전 당시(1942년부터 1945년까지)에는 일본이 점령했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으로 1946년 다시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됐다.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일본-영국’으로 이어지는 해양세력들이 싱가포르를 지배했었던 것이다.

중국 광둥(廣東) 출신 하카((客家·이주민)의 후예인 리콴유 전 총리는 1965년 집권하면서 이런 비극적인 싱가포르 역사를 깊이 인식했다. ‘부강(富强)한 나라 건설’을 위해서 독재도 마다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었다. ‘평화와 고요’를 뜻을 가진 센토사를 작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리콴유 전 총리는 해양세력인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대륙세력인 중국과도 선린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959년 싱가포르 영연방 자치령의 초대 총리를 지냈다. 아울러 그는 중국 지도자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덩샤오핑(鄧小平)을 ‘위대한 지도자’라며 자신의 존경하는 인물의 반열에 올렸다. 오죽했으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1년 5월23일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해 “우리가 존경하는 원로이시다. 우리는 양국 관계를 위해 애써온 선생의 막중한 헌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겠는가. 리콴유 전 총리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간의 등거리외교, 중립외교를 통해 싱가포르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이 북미회담 장소를 영국군이 주둔했던 센토사로 결정한 것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말라카 해협의 거점이자 동남아시아 물류의 중심지인 싱가포르가 중국에 기울어지는 것을 견제하면서 중국과 혈맹관계인 북한을 미국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이중전략이 담겨 있는 것이다. 미국은 태평양의 서쪽 끝 싱가포르에서 한반도 평화, 아시아 평화, 세계 평화의 신호탄을 올림으로써 태평양 해양세력의 패자의 위치를 공고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사실 미국이 센토사에서 북미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것은 싱가포르에는 엄청난 ‘선물’이다. 관광 금융 물류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싱가포르에겐 북미회담처럼 좋은 호재는 없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 한국의 ‘신남방정책(新南方政策)’이 3각으로 교차하는 세계적인 전략지역이다. 우리는 단순히 ‘센토사 회담’이 개최되는 것에 기뻐할 일이 아니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바로 봐야 한다. 우리도 자주적으로 ‘신남방정책’을 구현하는 거점으로서의 싱가포르를 주목해야 한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는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지만, ‘한반도 주도론’을 ‘신남방-신북방정책’과 연결-발전시켜 아시아-태평양을 넘어 세계로 웅비해야 할 것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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