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일자리 창출 등 경제 성적표 ‘낙제’
재벌개혁 등 경제민주화 보다 강력히 추진해야
정부·기업·노조, 머리 맞대고 경제 현안 풀어야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을 교체했다. 청와대 정책실 경제라인 핵심을 한꺼번에 바꾼 것이다. 특히 소득주도성장의 토대가 된 임금주도성장의 주창자인 홍장표 경제수석의 퇴진이 눈길을 끈다. 그동안 그가 입안한 소득주도 성장의 정책들이 크게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물러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홍 전 수석은 지난 1년 동안 저소득층의 임금을 올려 소득격차를 줄이고 민생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 아래 최저임금 인상·비정규직의 정규직화·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등 소득주도성장의 세부 정책들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게 나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최근 통계로 확인된 소득분배 악화, 일자리 증가폭 감소 등으로 홍 전 수석의 입지는 약화됐고 물러나게 된 것이다.

반장식 전 일자리수석도 마찬가지다. 일자리 창출에 많은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지난 1월 30만명을 넘었던 취업자 수 증가 폭이 2월부터 4월까지 연속 10만명 선으로 낮아지더니 급기야 5월에는 7만명대로 추락했다. ‘일자리 정부’란 슬로건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반 전 수석의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 등 외교안보 현안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취임 1주년을 넘기면서 경제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고 한다. 경제가 잘못되면 70%대의 고공지지율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지난 6·13지방선거 이후 민주당 지도부들도 선거현장에서 이런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에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라는 세 바퀴 경제성장 전략의 기조를 유지하되, 추진력·집행력·실무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경제라인을 개편한 것으로 보인다. ‘포용적 성장’을 강조해온 경제관료 출신 윤종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대사를 경제수석에 발탁해 그동안 복지부동의 자세를 보였던 경제 관료들에게 드라이브를 걸어 정책집행에 속도를 내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정태호 정책기획비서관을 일자리수석에 기용한 것은 문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를 챙기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정 신임수석은 문 대통령의 ‘정책복심’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운 정책을 쉽게 설명하는 장점을 가진 인물이어서 문 대통령이 항상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참모 중 한 사람이다. 물론 그가 ‘광주형 일자리’에서 많은 성과를 낸 것도 발탁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시장은 자유로워야 한다”며 정부의 개입을 반대해온 자유시장 신봉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하지만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자유시장은 환상이 되지 않았던가. 어떤 경제학의 이론으로도 경제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게 된 현실은 시장이 잘 알고 있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구태의연한 주장은 경제적 불평등 불공정 불안정만 심화시킬 뿐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그 대표적 사례다. 지난 10년 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는 얼마나 벌어졌는가. 소득격차는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은 전대미문의 경제생태계가 조성됐다. 최근 AI(인공지능)가 주식시장을 분석-종목을 선택하고 있다. 투자회사들은 첨단 ‘미니위성’을 띄워 기업의 실적을 파악해 투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경제이론들은 박물관의 전시물이 되고 말았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경제의 운명’이다. 따라서 ‘홍장표의 실패’는 이른바 ‘운명적인 실패’로 봐도 된다. 애담 스미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부활해 경제수석을 맡아도 마찬가지였을 터. 독점거래 불공정거래행위 근절 등 대기업에 대한 경제민주화를 착근시키지 않은 상황에선 ‘소득주도성장론’은 그냥 하나의 이론일 뿐이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금산분리와 순환출자에 의한 방만하고 탐욕스런 계열사를 보유하는 것을 강력히 규제하지 않은 채, ‘최저임금제 주52시간근무’를 도입하는 것은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을 압박할 뿐이다. 그래서 성과가 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재벌개혁 등 경제민주화를 보다 강력히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을 장하성-윤종원-정태호로 이어지는 청와대 경제라인은 직시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헛바퀴를 돌리고 있는 상황에선 그 어떤 정책도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는 현실을 바로 봐야 한다. 책상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가령, 공정위 간부들이 왜 H, S, M 등 대기업의 불공정거래행위를 눈감아주고 있는지, ‘안전지대’ 범위를 30%에서 10%로 축소하지 않고 있는지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김상조 위원장이 겉돌고 있는 이유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소통이다.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 현장에서 왜 경제가 안 풀리는지를 정부와 시장, 시민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광장을 마련해야 한다. 고령화 고실업 저출산 저성장으로 인해 경제가 갈수록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공유하고, 경제 주체 모두가 ‘고통분담’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한다.

무엇보다 청와대 경제팀은 대기업들을 설득해야 한다. 무조건 조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기름을 쳐가며 조여야 한다. 80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이 일자리창출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노조와의 소통도 마찬가지다. 밤을 새워 토론하며 설득해야 한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산업 구조조정,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경제팀은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이렇게 외친다. “시장에 맡겨 두기만 하면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타당하고 공평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라는 널리 알려진 주장은 신화에 불과하다. 이 신화에서 벗어나 시장의 정치성과 개인 생산성의 집단적 성격을 이해해야만 더 공평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의 재능과 노력뿐 아니라 역사적 유산과 축적된 집단적 노력까지 적절히 고려해서 개인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 행해지는 사회 말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박사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