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항목 내밀며 사사건건 제동…실현 가능한 것부터 실천하는 노력 필요

‘8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1일 청와대로부터 흘러나왔다. 아직은 ‘설’ 수준이다. ‘가능성’이란 언제든지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성’보단 ‘필요성’에 무게 있어 보인다.

사실 두 차례 정상회담이후 철도 도로 등 부문별 실무회담, 이산가족 상봉행사 준비, 장성급 군사회담 등 남북접촉이 이뤄졌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여전히 경협 등 본격적인 남북 교류협력 사업은 교착상태에 놓여 있다. 특히 북 미 비핵화 협상의 진전은 더딘 상태다.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 해체와 미군 유해 송환 이외에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북한이 강하게 요구하는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북 미 비핵화협상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달 31일 논평에서 “실속 있게 진행되는 게 없다”며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핑계로 관계개선에 소극적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도 촉구했다. 이는 북한의 ‘불만’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청와대는 하루 만에 ‘조기 남북정상회담설’을 흘렸다. 위기를 느낀 것이다. 돌파구 마련을 위해 뭐든지 해야 할 상황이다.

그동안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한 원인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있다. 가령, 유엔 안보리 결의가 규정한 대북 유류공급 한도로 인해 발전기 등 기본설비 가동이 지연되는 바람에 8월 중순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개소도 차질이 우련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말 서훈 국정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잇따라 미국에 보내 대북제재 면제를 요청한 것도 돌파구 마련을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키는 미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25일 한국을 방문한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은 지난달 26일 미국 대사관에서 코레일 KT 포스코 코오롱 한라와 개성공단기업협회 등 남북 경제협력 기업 관계자 15명을 만나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으려면 민간 기업들이 북한과 교류 사업을 추진할 때 반드시 정부와 사전 협의를 하고, 필요하면 미국 측에도 직접 문의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대북 경협에 너무 앞서 나가지 말라’는 얘기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대북제재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지 강경한 어조로 ‘협박’을 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우리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그가 얼마나 높은 미국의 고위직 인사라고 부른다고 우르르 달려간 것은 또 뭔가.

정리하자면,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때문이며, 그 배후에는 미국이 있는 것이다. 물론 한 미동맹은 혈맹의 차원에서 유지돼야 한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끌려가는 것은 ‘혜두(慧頭·지혜의 머리)’가 없는 어리석은 짓이다.

아울러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뛰고 있지 않다. “업무에서 초월해 있다”고 한다. 반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정의용 실장 서훈 원장만 눈에 띈다. 그러다보니 통일부 실무책임자들도 청와대와의 ‘직거래’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특히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총괄하는 통일부 교류협력국의 이주태 국장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교류협력국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추진  남북한 간 교역·수송과 경제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추진  사회문화 분야 교류협력 관련 현안에 대한 대책의 수립·시행  개발지원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 및 시행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따라서 교류협력국이 제동을 걸면 남북 교류협력 사업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다.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협력을 위해 최근 교류협력국을 방문했던 한 인사는 “이 국장이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있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인사는 “교류협력국 공무원들은 (교류협력)얘기만 꺼내면 파란 책(대북제재 항목을 세밀하게 적은 책)부터 꺼낸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문 대통령만 뛰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 정부 때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이 국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통일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냈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가장 소극적이었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실무담당자였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에선 잽싸게 청와대 고위직과의 ‘직보 라인’을 구축하고 ‘오직 출세’를 위해 뛰고 있다는 관가의 평가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통일부 교류협력국이 이처럼 ‘교류협력 복지부동’이라고 하니 남북 교류협력 사업은 요원해 보인다. 갈수록 판문점 선언은 빛이 바래고 있을 뿐이다. 특히 1항 ④의 “남과 북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하였다”는 남북합의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김영평 고려대명예교수는 ‘행정개혁의 신화와 논리’에서 행정개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비선형적 복잡성의 세계에서는 작은 변화가 파격적인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 반복적 점진적 개혁에서는 초기 조건의 작은 차이가 급격한 차이로 전환된다…작고 점진적이지만 지속적인 개혁이 성공적 개혁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점진적 개혁은 성공적 개혁의 가장 강력한 표현이다.”

남북 교류협력 사업도 이런 점진적 개혁의 논리와 궤를 같이 한다. 실현 가능한 작은 것부터 점진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일간신문 1면 톱 거리만 생각해선 안 된다. 대북제재 항목에 들어가 있지 않는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 사업은 과감하게 허용돼야 한다. 이주태 국장은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추진 가능한 작은 교류협력 사업들을 다양하게 발굴해 민간에 권유해야 할 것이다. 교류협력국 직원들은 입만 열면, “비

핵화 실현 이후 가능하다”며 교류협력 사업을 차단해선 안 된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아직도 박근혜 정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최근 북한을 방문한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북한 측 인사들을 만나보니 ‘왜 남측이 대북 교류확대에 적극 나서지 않느냐’는 말이 많았다”고 전했다. 누구의 책임인가. 통일부 공무원들은 애국심을 갖고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적극 지원하기 바란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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