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 ‘창조경제’와 별반 다르지 않아…대기업 위주 정책 회귀 우려도

정부는 지난 13일 혁신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 ‘플랫폼(platform) 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데이터경제’, ‘인공지능(AI)’, ‘수소경제’의 3대 플랫폼 전략투자 분야와 공통분야로 ‘혁신인재 양성’을 선정했다. 또한 스마트공장, 에너지 신산업, 핀테크 등의 분야에 바이오헬스를 더해 8대 선도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김동연 부총리는 플랫폼 경제를 설명하면서 “5년간의 중장기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며 “플랫폼 경제 구현과 8대 선도 사업을 위해 내년에만 총 5조원의 예산을 반영할 계획인데, 특히 플랫폼 경제를 위해서만 1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2023년까지 9~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했다.

플랫폼이란 기차역의 플랫폼에 각자의 목적을 위해 사람과 물건이 모여 들 듯이 ‘공급자와 수요자 등 복수의 그룹이 참여해 각 그룹이 얻고자 하는 가치를 교환하도록 구축된 환경’으로 정의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에서 말하는 플랫폼 경제는 다양한 경제 주체가 활동 가능하도록 해주는 기반기술, 즉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의 분야가 여기에 속한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산업 인프라’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정부가 혁신성장을 위해 4차 산업혁명의 인프라에 해당하는 플랫폼 경제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은 우선 환영할 만하다. 모처럼 정부가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지난해부터 사용해온 혁신성장의 정의를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미래 산업 육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추진 분야와 ‘5개년 계획’이라는 명확한 기간 목표를 설정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총론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다.

첫째, 이번에 발표한 플랫폼 경제가 지난 정부에서 흐지부지 끝난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와 비교해 차별화되는 점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8대 선도 사업 또한 참여 정부의 ‘10대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 이명박 정부의 ‘17대 신 성장 동력', 박근혜 정부의 ‘13대 미래 성장 동력' 등과 이름만 바뀌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정부에서 실패한 신 성장 동력 프로젝트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도 그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둘째, 지난해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을 추진하면서 중소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중소기업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기업보다 가볍고 발 빠른 의사 결정이 용이해 혁신성장에 알맞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력이 높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 동력의 핵심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이번 플랫폼 경제에서는 중소기업 주도의 성장 동력이 빠져있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혁신 성장보다는 대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정부의 한 관계자는 “대·중소기업 협업을 통해 모두가 혜택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수소경제는 현대자동차 그룹이, 바이오헬스 분야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 중심으로 프로젝트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여러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김동연 부총리가 삼성전자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바이오산업의 규제 완화를 건의한 직후, 8대 선도 사업에서 ‘초연결 지능화’가 빠지고 ‘바이오헬스’가 새로 포함된 사실로 미루어 짐작컨대, ‘믿을 것은 대기업 뿐’이라는 과거의 논리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정부가 신 성장 동력 관련 정책을 발표할 때 마다 나오는 말이지만, 정부주도의 정책이 과연 실효성과 진정성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번에 정부에서 발표한 3대 전략 분야와 8대 선도 사업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창의성’과 ‘융·복합’, 그리고 ‘혁신’이 생명이다. 특히 ‘융·복합’은 소통과 협업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 ‘혁신’은 기존 질서에 대한 새로운 도전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정부 주도 및 대기업 위주의 미래 산업 추진이 중소·벤처 기업 등 다양한 혁신 기업들에게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업 환경을 보장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플랫폼 경제를 설명하면서 지난해 설립된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정부가 깊은 고민과 부처 간 다양한 논의를 통해 내놓은 방안인지 진정성에도 의심이 든다.
 

결국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대외 환경의 변화와 신규 일자리 창출이 벽에 막히는 등 대내  경제 환경 악화에 직면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전에 이미 발표했던 정책들을 재편집해서 이름만 바꾸어서 급하게 내놓았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흔히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환경에서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환경으로 전환’으로 비유하곤 한다. 우리 정부가 할 일은 물고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고, 물고기들이 빠르게 활동할 수 있도록 수중보(규제)를 제거해 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플랫폼 경제’가 성공하려면 정부가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고 이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규제 철폐 하나에만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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