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고통분담 요구에 대주주 ‘묵묵부답’...정기선 승계 초읽기

[중소기업신문=김두윤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의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증손회사 문제와 순환출자를 해결하면서 지주회사 출범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 이와 궤를 맞춰 오너 3세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은 지주회사 지분을 확대하고 거액의 재원 마련에 나서고 있어 사실상 경영승계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정치활동에 집중하면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현대중공업그룹이 다시 오너경영 체제로 돌아가는 셈이다.

조선업 불황을 예견하지 못한 경영실패로 수천명의 직원들이 희망퇴직 등 고강도 인력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난 상황에서 대주주의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직원들의 목소리에 ‘묵묵부답’이었던 오너일가의 경영복귀라는 점에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 22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현대삼호중공업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투자회사를 현대중공업이 흡수합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 12월까지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현재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중공업지주→현대중공업(자회사)→현대삼호중공업(손자회사)→현대미포조선(증손회사)'으로 이어지는 형태로 이번 분할·합병을 거치면 현대중공업 아래에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이 자회사로 들어가는 형태로 바뀐다. 이에따라 현대중공업은 지주회사 행위제한 요건중 하나인 증손회사 지분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지분 매각도 이뤄진다. 현대중공업지주와 현대미포조선은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 3.9%를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현대중공업지주에 매각하기로 결의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 본격화하면서 오너경영 부활도 주목된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인 정치활동에 집중하면서 지난 2002년 현대중공업 고문을 끝으로 경영에서는 물러났다. 이에따라 현대중공업그룹은 그동안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왔다.

그 중심에는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있다. 이미 정 부사장은 올해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지분을 3500억원 가량 사들이며 정몽준 이사장(25.8%)과 국민연금에 이어 3대 주주에 올랐다. 그의 경영 보폭도 넓어지고 있다. 2013년 부장에서 현재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한 그는 현재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와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영업부문장, 그룹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룹 경영여건도 그가 경영성과를 내기에 그리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조선업황이 바닥을 쳤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수차례 인력 구조조정으로 인건비 부담이 주는 등 수익성 중심의 체제가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강성 노조로 통했던 현대중공업 노조도 계열사 분리 등으로 그 세가 약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앞서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건설기계 등 경영상황이 나쁘지 않은 계열사까지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그 배경이 3세 경영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노조는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했지만 사측은 직원들이 원한 희망퇴직이라고 해명했다. 희망퇴직은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중공업은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해양사업본부 임직원 중 5년차 이상 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신청 받는다. 일자리 창출에 비상이 걸린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성적표를 깍아 먹는 대표적인 업종중 하나가 조선업이다.

결론적으로 정 부사장이 부친인 정 이사장의 지분만 잘 물려받기만  하면 사실상 승계작업이 마무리되는 셈이다. 아울러 이들은 8000억원에 달하는 현대중공업지주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으며, 정 부사장은 약 1400억원 규모의 현대중공업지주 주식을 세금 연부연납을 위해 공탁 형태로 담보제공 했다. 세금 납부용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사회적 승인 문제가 남아있다. 오너일가의 책임의식에 대한 문제다. 앞서 구조조정 위기에 직면한 직원들이 10년간 3000억원대 배당금 수령을 근거로 대주주인 정 이사장의 사재출연 등 고통분담을 요구했지만 정 이사장 측은 특별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당시 사측은 정 이사장이 경영에 손을 뗀 지 오래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선을 그은 바 있다. 이후 수천명의 직원들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고 이제 그의 아들이 경영 전면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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