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미·중·일·러 자극할 수 있지만, ‘평화’는 그렇지 않아
완전한 평화 구축 위해 한반도 비핵화 반드시 실현해야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외교 행보는 분주했다. 미국 뉴욕에 도착한 뒤 24일 아침 첫 일정으로 ‘세계마약문제에 대한 글로벌 행동촉구(Global Call to Action on the World Drug Problem)’ 공동 주최 행사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미정상회담→한미FTA서명식→안토니우 구테헤쉬 유엔사무총장 면담→미국 ‘폭스 뉴스’ 인터뷰→한일정상회담→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환담→미국 외교협회 연설→한·이집트정상회담→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접견→한·칠레정상회담→유엔총회 기조연설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키워드는 ‘평화’다. 가는 곳마다 ‘평화’를 강조했다. ‘평화의 전도사’를 자임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4일(미국 현지시간) 오후 2시45분에서 4시10분까지 1시간25분 동안 뉴욕의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 5층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에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고,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공조 방안과 한미동맹 강화 방안 등에 대해 폭넓고 심도 있게 협의했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전 세계 언론 앞에서 비핵화 의지를 직접 밝히고, 또 내가 15만명의 평양 시민들 앞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한 비핵화 합의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이제 북한의 핵 포기는 북한 내부에서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공식화되었다.”

문 대통령은 이어 25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외교협회(CFR) 코리아 소사이어티(KS) 아시아 소사이어티(AS) 등의 공동 주최로 미국 뉴욕 외교협회(CFR)에서 열린 ‘위대한 동맹으로 평화를 :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Our Greater Alliance, Making Peace : A Conversation with President Moon Jae-in)’ 합동 간담회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를 강조했다. 그는 '평양공동선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이번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군사 분야 합의다. 남북은 한반도 전체에서 서로에 대한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전쟁의 위험을 상당 부분 해소한 실질적 종전조치이다. 비무장지대와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하여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전쟁 없는 한반도’ 실현에 성큼 다가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대표적 보수언론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평화론’을 개진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우선순위를 두고 계신 것은 무엇인지요. 통일입니까, 아니면  비핵화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은 평화다. 이 평화가 먼저 이루어지면 남북 간에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고, 그것은 경제 협력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러면 한국 경제가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넘어서서 러시아, 중국, 유럽까지 북방경제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평화가 굳어지고 나면 어느 순간엔가 통일도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 평화의 선결조건이 비핵화다. 그래서 우리는 남북 간에 완전한 평화구축을 위해서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해야 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6일(미국 현지시간) 오후 1시40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3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를 이렇게 역설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전쟁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다짐했다. 북미 회담에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적대관계 청산,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노력할 것을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평화를 바라는 세계인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중략) 이제 국제사회가 북한의 새로운 선택과 노력에 화답할 차례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이 올바른 판단임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 북한이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의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왜 ‘통일(統一)’보다 ‘평화(平和)’를 강조할까. ‘평화’라는 말을 좋아해서인가. 우선 ‘통일’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는 ‘평화’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통일’은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지만, ‘평화’는 자극하지 않는다. 세계 어느 나라도 대놓고 ‘평화’를 반대하는 나라는 없다. 즉, ‘평화, 새로운 미래’라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프레임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평화의 ‘평(平)’이라는 글자는 ‘물의 평면에 뜬 수초(水草)의 상형’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평평함’을 뜻한다. 나아가 ‘平’은 ‘올바름(正)’, ‘고름(均)’, ‘편안함(安)’의 뜻도 지니고 있다. ‘화(和)’라는 글자는 ‘좋은 곡식’을 의미하는 화(禾)와 입을 뜻하는 구(口)의 합성어로 ‘좋은 곡식을 입으로 먹는다’는 뜻이다. 나아가 입으로 ‘소리를 맞추고, 고르게 하고, 부드럽게 하다’는 음악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화성(和聲), 화음(和音)의 뜻에서 화해(和解) 화평(和平) 화합(和合) 융화(融和)의 뜻으로 발전한 셈이다. 따라서 ‘평화’란 모두가 함께 고르게 먹고 마시며 노래하는, 차별이 없고 정의로우며 편안한 것을 일컫는다. 결국 ‘평화’는 하나(一)를 이룬다. 즉, ‘통일(統一)’이다. 단군(檀君)의 ‘홍익인간(弘益人間)’이요, 원효(元曉)의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이며, 이이(李珥)의 ‘화(和)’와 정약용(丁若鏞)의 ‘균(均)’이다. 

문 대통령은 이런 맥락에서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우리 모두는 평화를 바란다. 사랑하는 가족, 이웃, 그리운 고향이 평화다.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일이 평화다. 모두 함께 이룬 평화가 모든 이를 위한 평화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비핵화를 향한 길, 평화로운 세계를 향한 여정에 여러분 모두, 언제나 함께 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이런 ‘평화’의 철학이 국정에 바르게 반영되길 바란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 회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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