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투자 등 지표 급속도로 악화…1500조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도 문제
혁신성장 통해 대·내외 어려움 극복해 나가야 하지만 마땅한 대책 없어

국제통화기금(IMF)은 9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 한국의 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월 전망 대비 0.2% 포인트와 0.3% 포인트 내린 2.8%와 2.6%로 하향 조정했다. 계속되는 미·중 무역전쟁과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의 금융시장 불안을 우리 경제의 하향 요인으로 지목했다. 수출의존도가 높아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 그만큼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IMF는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 성장률의 하향 조정에 최근 진행 중인 무역조치가 일부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밝히면서, 우리 경제의 내부 요인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의 많은 전문가들은 투자와 고용부진, 그리고 가계부채 등의 내부요인이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런데 이번 IMF의 경고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와 내년 성장 전망치를 각각 0.1%포인트 내린 2.9%와 2.8%를 제시했다. 또한 BOA메릴린치, 노무라, 골드만삭스와 같은 외국계 투자은행과 현대경제연구원, LG경제연구원 등 국내 민간 연구기관들도 일제히 전망치를 2%대로 내려 잡았다.

특히 지난 8월 발표된 OECD의 한국 경기선행지수(CLI)는 15개월 연속으로 전월 대비 하락세를 나타냈다. OECD 경기선행지수는 통상 6~9개월 후의 경기를 예측하는데, 2017년 3월 100.98에서 올 6월까지 15개월 연속으로 하락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9월부터 2001년 4월까지 20개월 연속 경기선행지수가 하락한 이후 15개월 연속 하락은 이번이 처음이다. OECD는 경제 성장 전망치를 당초 3.0%에서 2.7%로 0.3% 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처럼 전망치에 대한 하향 폭의 차이는 있지만, 각 기관이 일제히 경고음을 내고 있어 향후 우리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사실 우리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신흥국 금융 불안이라는 외생 변수보다는 심각한 상황에 이른 내부 요인이 더 큰 문제다.
 
올해 들어 우리 경제는 고용과 투자 등의 지표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고용은 지난 8월 취업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3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9월에 4만5000명 증가해 한숨을 돌렸지만 여전히 10만명 아래에 머무르고 있다.

투자 또한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건설투자는 5개월 연속 내림세고, 향후 성장 동력을 가늠할 수 있는 설비투자는 전달보다 1.4% 낮아져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뒷걸음질 치고 있는 고용과 설비투자 지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라 기록하고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현재의 경제 상황이 외환위기 상황에 버금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결론적으로 괜찮지 않다는 의견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보호무역주의 추세 등 외생적인 변수는 논외로 치더라도, 내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단도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그 중심에는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은 15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버티고 있다. 가계부채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금리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없다. 또한 고용확대와 내수 진작을 통해 경기를 회복시킨다는 소득주도성장은 더욱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은 혁신성장을 통해 현재의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 밖에 없다. 정부도 이 점을 잘 아는지 지난해 말부터 부쩍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미미하다. 말로만 혁신성장을 외칠 뿐, 성과를 내기 위한 기반 조성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부문인 ‘공유경제’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기득권의 반발에 부딪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인 우버(Uber)는 국내에서 금지되었다. 이후 카카오모빌리티 등 국내업체들이 기존 산업을 넘어서는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으나, 택시업체와 대화가 쉽지 않다. 혁신성장을 외치는 정부는 이 사이에서 팔짱만 낀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슘페터(J. Schumpeter)는 그의 저서 <경제발전론>에서 ‘이윤은 혁신적인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행위를 성공적으로 이끈 기업가의 정당한 노력의 대가’라고 했다. 즉, 기존의 낡은 틀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혁신적인 기업이 혁신 성장을 이끈다는 것이다.

혁신성장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희생이 따른다. 다시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뼈를 깎는 산업구조조정과 기득권 타파를 위한 규제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해야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라는 미국 속담을 잘 새기자.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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