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죽은 늦벼가 좋다. 돌솥을 쓴 것이 맛이 좋다. 무쇠 솥이 다음이고 노구솥이 하류이다. 감천수를 쓰면 더 좋다. 샘이 나쁘면 죽의 색이 누렇고 잘 되지 않는다. 쑤는 법은 흰 쌀을 정미하여 여러 번 씻어 뜨거운 솥에 넣고 참기름을 떨어뜨려 살짝 볶아 기름이 다 들어가기를 기다린다. 그런 연후에 물을 많이 붓고 섶 불로 계속하여 졸여 반쯤 익어 즙이 흐르려고 하면 곧 놋 국자로 그 즙을 깨끗한 그릇에 떠낸다. 또 놋 국자의 등으로 아주 잘게 문질러서 쌀알이 엉기지 못하게 한다. 다시 참기름을 넣어서 고르게 저어 조금도 눌어붙지 않게 하여 끓인다. 놋 국자를 이용하여 떠내놓은 즙을 서서히 죽에 더하여 넣는데 그 즙이 졸아들면 바로 더하니 끓여서 더할 즙이 없는데 이르러 그치면 그 죽이 충분히 되게 되어 우유죽처럼 된다. 맑은 새벽에 마시면 진액이 생겨 노인에게 매우 좋다.”

조선후기 실학자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가 저술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제8지인 ‘정조지(鼎俎志)’의 갱미죽방(粳米粥方) 내용이다. 즉, 멥쌀 죽을 쑤는 레시피다. 레시피가 매우 구체적이어서 지금 당장 이를 따라 멥쌀 죽을 쒀도 된다. 서유구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 동시대 인물로 성리학의 대가이자 규장각 제학, 전라관찰사, 이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한 고위 관료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1천500종의 레시피를 기록했다니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단호박 한 통과 찹쌀가루를 준비한다. 찜기에 물을 붓고 20~30분간 찐다. 젓가락을 이용해 잘 먹었는지 확인한다. 식은 단호박을 칼로 잘라 속에 있는 씨와 껍질을 제거한다. 냄비에 담은 단호박을 포테이토 매셔로 잘 으깨준다. 냄비에 물 한 컵을 붓고 센 불로 끓여준다. 죽이 끓기 전부터 눌어붙지 않도록 조리용 나무수저 등을 이용해 잘 저어준다. 죽이 끓으면 중불로 줄이고 밥숟가락 기준으로 찹쌀가루 반 스푼을 넣어준다. 찹쌀가루가 뭉쳐 있으면 밥숟가락을 이용해 풀어준다. 기호에 따라 단호박에 꿀이나 설탕, 잣을 넣어 먹어도 좋다.”

세계일보 기자출신으로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을 지낸 신진호 중소기업신문 대표가 최근 저술한 ‘아재여! 당신의 밥상을 차려라’의 한 대목이다. 이는 단호박 죽을 쑤는 레시피다. 상당히 구체적이며 누구나 죽을 쑬 수 있을 정도로 쉽게 기술돼 있다. 여기자(女記者)가 아닌 남성 기자가 요리책을 집필했다니 놀랍다.

서유구는 경학보다 실용학문에 심취해 1806년에 낙향해 18년간 임진강변 장단에서 농사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홀어머니를 위해 몸소 조석의 끼니를 봉양했다. 물론 ‘정조지’의 레시피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은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음식과 요리를 잘 하여 재료는 적게 쓰고 사람을 적게 부리면서도 풍족한 재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을 데리고 요리한 것과 맞먹었다고 전해진다.

신진호도 마찬가지로 어머니로부터 요리를 배웠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아들만 삼형제인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본의 아니게 딸 노릇을 해야 했다. 어머니의 잔심부름은 내 전담이었고, 종종 장보기를 하며 식재료들을 눈과 손으로 익힐 수 있었다. 어머니를 거들다 보니 부엌 출입도 잦아 어깨너머로 수많은 집밥 요리를 접하곤 했다…나는 이제 집밥 요리라면 나름 일가견을 갖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요리의 기본은 양념류를 익히고 육수 내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는 그의 설명에서 그가 강호의 고수 면목을 드러냈다. ‘요리의 참맛=양념과 육수’가 바로 요리의 기본공식이라는 얘기다. 핵심을 찔렀다. 요리책에서 터득한 게 아니라 부엌에서 온 몸으로 익힌 내공을 토대로 기술한 레시피들은 살아 있다. 매우 과학적이며 때로는 예술적이다. ‘음식미학(飮食美學)’의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

이 책은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엄마나 아내의 어깨너머로 배우고 다져왔던 36가지의 집밥 요리의 기본을 소개하고 있다. 이 시대 고단한 삶을 보내는 아재들이여! ‘먹방’의 화려하고 멋있는 요리는 단지 ‘쇼’에 불과하다. 가족을 위해 소박하고 따뜻하면서도 그대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는 한 끼 식사를 마련해보라! 아내의 사랑이 절로 살아나고 자녀가 그대의 요리 솜씨에 감동해서 느슨해졌던 가족애가 되살아날 것이다. 이런 인생반전은 기꺼이 노려야 하지 않겠는가. ‘아재여! 당신의 밥상을 차려라’의 일독을 권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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