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G20정상회담서 양국 정상 만남을 계기로 획기적인 전환점 마련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기 ‘아메리카 퍼스트’를 제안했을 때, 조셉 나이(Joseph Nye)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기존의 강국(미국)과 신흥 강국(중국) 간 갈등이 야기할 비극에 대해 경고했다. 나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가 제공하는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과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이 지나치게 강한 경우 투키디데스 함정에, 중국이 지나치게 약해져 세계에 공공재를 제공할 수 없게 될 경우 킨들버거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조언했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의 원인을 설명한 그리스 군인 투키디데스의 말에서 유래한다. 새로운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패권국가가 무력으로 해소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으로, 신구 강대국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런데 충돌의 결과는 고대 그리스의 몰락에서 보듯이, 두 세력 모두 크게 상처를 입고 동반 쇠퇴한다는 데서 ‘함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킨들버거 함정’은 신흥 강국이 기존 패권 국가가 가졌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때 재앙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그의 저서 ‘대공황의 세계 1929~1939’에서 영국의 자리를 차지한 신흥대국 미국이 고립주의 원칙을 고수해 세계의 리더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공황이 발생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상황을 두고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7월6일 미국은 이전에 예고했던 340억달러의 중국 수입품에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했고, 중국도 34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품, 자동차 등에 25% 보복관세로 대응했다. 미국은 이어 7월16일 160억달러, 9월17일 2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를 발효했다. 중국도 600억달러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서 맞서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전망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들은 압도적인 경제력을 가진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를 점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각종 경제지표는 부정적인 전망 일색이다. 상하이종합지수는 무역 전쟁 이전인 지난 3월 말에 비해 20% 하락했다. 같은 기간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도 약 10% 급락했다. 특히 무역전쟁 이후 처음 발표되는 3/4분기 GDP 성장률은 6.5%로 전분기(2/4분기) 및 전년 동기 대비 둔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호언장담과 달리 중국경제 위기론이 부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역 전쟁이 미국의 의도대로 흘러가고만 있지는 않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전쟁도 불사한 이유는 막대한 규모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이를 통해 미국 내 제조업을 활성화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있었다. 하지만 무역전쟁 이후 미국의 대(對)중국 적자 폭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 관세보복의 효과가 현재까지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중국의 보복관세로 인해 중국 수출이 힘들어진 미국 기업들 중 일부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내 일자리도 생각만큼 늘지 않아 미국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미국 기업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

‘아테네-스파르타 전쟁(펠레폰네소스 전쟁)’을 회고해 보면, 전쟁에서 패한 아테네는 해양 세력을 잃고 몰락했다. 승리한 스파르타도 내분으로 또 다른 도시국가인 테베에 의해 무너졌다. 결국에는 그리스 전체가 북쪽에서 일어난 신생국가 마케도니아에 복속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미·중 무역 전쟁이 예전의 아테네와 스파르타처럼 서로에게 피해만 양산하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반면 지난 10월17일 미국 재무부가 발간한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고 관찰대상국을 유지한 것은 무역 전쟁이 환율 전쟁으로 번지는 사태를 모면했다는 점에서 ‘킨들버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보고서는 중국의 통상 관행을 노골적으로 비난을 했지만,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을 때 가져올 파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 경제가 심하게 흔들리는 시점에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면, 중국경제는 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 중국이 지나치게 약해져서 역할을 못하면 세계경제는 1920~30년대 대공황과 같은 파국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공동의 위기감이 ‘킨들버거 함정’을 비켜간 것으로 해석된다. “지금은 어느 한 국가가 공공재를 공급하기에는 세계가 너무 복잡하다”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말처럼, 중국의 약화는 국제 사회에도 결코 이롭지 않다.

다음 달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무역전쟁 이후 처음으로 만날 것이라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회담 날짜는 G20 정상회담 정식 개막일 하루 전인 11월29일이 거론된다. 중국의 환율조작국 배제됨에 따라 소강상태에 접어든 무역 전쟁이 양국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투키디데스 함정과 킨들버거 함정은 모두 피해야한다”는 죠셉 나이 교수의 조언을 새겨들어야 한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