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안적 대책으로 경제 체력 바닥…미·중 경제전쟁 속 한국 피해 심각
가계부채·양극화 해소하며 혁신성장 할 수 있는 근본 대책 제시해야

‘미국 경제가 기침하면 일본 경제는 감기에 걸리고, 한국 경제는 병원에 입원한다’는 말이 있었다. 1970년대에 경제 상황을 풍자한 유머다. 2000년대 들어 중국 경제가 급부상하면서 이 말은 ‘중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세계 경제는 감기에 걸리고, 한국경제는 앓아눕는다’로 바뀌었다.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 나라가 삐걱거려도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데, 최근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두 나라 모두 휘청거리니 우리 경제의 앞날이 어둡기만 하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보복관세를 선언한 초기만 해도 중국이 큰 피해를 입고, 미국은 제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날 것 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에게도 무역전쟁의 충격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피해를 주면서 최근 양국 증시는 폭락 장세를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사태의 진앙지인 미국과 중국에 비해 우리 증시는 하락세가 더 크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아시아 증시가 전반적으로 약세장을 보이는 가운데 우리 증시가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외부 충격에 취약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다른 나라의 감기에 우리는 앓아누운 꼴이다.

하지만 외부 충격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외부 요인을 흡수해야할 우리 경제의 내부 경쟁력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 10년간 경제 정책의 실패로 성장 잠재력은 떨어지고 있다. 현 정부도 원인만 파악할 뿐 제대로 된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정부의 경제 정책은 차세대 성장 동력의 육성과는 거리가 먼 근시안적인 정책에 머물렀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과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을, 박근혜 정부는 ‘빚내서 집사라’로 대표되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에 정부의 경제정책에 맞물린 한국은행의 금리정책 실패까지 더해졌다.

이 결과는 양극화 심화로 나타났다. 수출은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고, 상위 30개 그룹의 사내 유보금은 약 900조원에 달한다. 반면 차세대 성장 동력산업의 미비로 미래를 확신 못하는 기업들은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당연히 양질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지지 않고, 청년 실업 문제를 포함한 고용절벽은 참사에 가깝다. 15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 문제는 몇 년째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고 있으나, 역대 어느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심화된 양극화 해소에 초점을 맞추어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정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올바른 진단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잘못 정하는 오류를 범했다. 혁신성장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끌어 올린 다음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소득주도성장을 우선 정책으로 선택해 성장과 분배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부랴부랴 혁신성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아직까지 혁신성장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정부와 청와대는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중장기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계부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안, 과감한 기업 및 산업 구조조정,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 철폐, 4차 산업혁명 사회로 나아가면서 발생할 다양한 사회적 갈등 조정 등 힘들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미·중 무역전쟁과 이에 따른 수출과 성장 둔화, 증시 폭락 등은 우리 경제가 가진 구조적인 모순을 드러나게 한 현상이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겉으로 나타난 현상에 주목해 단기 일자리 창출 등 눈앞에 보이는 정책에 매달린다면, 구조조정 및 규제 철폐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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