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들 10여년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지고, 거리감도 느껴지지 않아
“작은 규모라도 행사 규모와 횟수 늘려나가면 큰 성과 거둘 수 있어”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북한에 와서 실상을 볼 수 있도록 주선해달라.”

김영대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의 회장이 지난 4일 북한 금강산 삼일포 간담회에서 김홍걸 남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에게 부탁한 말이다. 남한 보수세력들도 북한을 방문해 변화된 모습을 보고 북한을 바르게 인식해주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김홍걸 남한 민화협 대표, 김영대 북한 민화협 회장, 더불어민주당 설훈의원, 김한정 의원(왼쪽부터)이 지난 4일 북한 금강산 삼일포에서 야외 즉석 간담회를 갖고 향후 남북 민화협 공동행사에 대해 환담하고 있다.

사실 남북 민화협이 지난 3일부터 4일까지 금강산에서 개최한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민화협 연대모임’에 자유한국당 의원 한 명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내 사정으로 불참했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민화협에 가입돼 있다. 나경원 의원이 8명의 상임의장 중 자유한국당 몫 상임의장이다. 그래서 김영대 회장은 자유한국당 의원 불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북한 방문을 희망한 것이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에선 설훈, 김한정, 이재정 의원과 장경태 청년위원장, 김빈 가짜뉴스대책위 대변인 등이 참석했다.

1998년 9월3일 민화협이 출범할 당시 국민회의 설훈 의원, 한나라당 제정구 의원, 자민련 박철언 의원이 당을 대표해서 공동참여를 합의한 바 있다. 민화협은 ‘3당연합’의 산물인 셈이다. 따라서 민화협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보수와 진보, 중도를 망라해 민족화해와 통일준비를 위해 만들어진 정당, 종교, 시민사회단체의 협의체로 매우 의미가 있는 단체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란 이름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작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이 남북 민화협 행사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광복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농협중앙회, 대한체육회, 한국교총,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등 200여개의 참여단체들의 영향력이 적지 않은 만큼, 민화협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부담’은 커질 수 있다고 본다. 2008년 6·15 공동선언 기념 민족공동행사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금강산에서 개최된 이번 대규모 남북 민간단체 공동행사에 남측에서만 노동·농민·여성·교육·청년학생·종교계 등 각 분야에서 총 256명의 대표단이 참가했다.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남북 민화협은 이번 금강산 모임에서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 치하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논의할 공동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남북 민화협은 지난 7월 평양에서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있는 조선인들의 유골송환을 위한 남북 공동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남북 민화협이 이번에 채택한 공동결의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남북 민화협은 공동결의문에서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비롯한 민족 공동의 주요 계기들에 다양한 연대 회합들과 사회문화 협력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민족의 화해와 공동 번영,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김홍걸 대표는 삼일포 간담회에서 김영대 회장에게 “벽이 높고 두껍다고 해서 벽을 허무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작은 망치로 벽을 계속해서 조금씩 두드리다보면 구멍이 생기는 만큼 앞으로 지속적으로 민화협 행사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비록 작은 규모 일지라도 금강산 행사의 규모와 횟수를 늘려나가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 민화협이 주선하되 금전적 거래가 없고 남한 측에서 발생하는 비용만을 민간인 참가자 각자가 지불하는 수준이라면,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미국이 특정하는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으로 하여금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융제재 방식)과는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화협은 내년 1월 금강산 행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필자도 이번 민화협의 금강산 행사에 참가했다. 18년만의 금강산 방문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금강산은 그대로였다. ‘천하제일경관’과 1만2000봉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심연(深淵)의 민족혼을 일깨웠다. 금강산호텔 옆 수정봉의 영기(靈氣)는 민족의 영기로서 승화되는 듯 했다. 억새풀이 장관을 이룬 가을 들녘도 오늘의 남북관계를 보여주는 듯 스산해 처연한 심사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금강산호텔, 외금강호텔 등을 비롯한 숙박과 위락 시설들은 10년 전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때의 윤기를 잃고 있었다. 당시 장전항의 해금강호텔과 포함해 하루 2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현대아산이 6개월 정도 보수해야 원상회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가까운 수정봉(773m)의 웅장한 모습. 수정처럼 맑고 기운이 넘친다고 해서 수정봉이라고 한다.

북한 사람들은 18년 전보다 친절했다.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훈 의원은 “많이 부드러워 졌다”고 말했다. 배기선 전 의원은 “과거처럼 자존심을 내세우며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확실히 북한 주민들의 변화를 실감했다”고 했다. 매 식사 때마다 그릇을 비운 김옥두 전 의원은 “음식 맛이 예전보다 좋아졌다.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고 입에 딱 맞는다”고 평가했다. 북한 인사들의 표정도 밝았다.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다. 만찬장에서 남한에서 준비한 전주 모주를 권하자 북한 인사들은 “맛있다”며 서너 잔을 거푸 마시기도 했다.

▲남북 민화협 대표단들이 지난 3일 저녁 북한 금강산호텔 2층에서 밝은 표정으로 만찬을 즐기고 있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일포 주변을 산책할 때 북한 민화협 간부들은 미국에 대해 질문을 많이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명했다. 필자에겐 상식적인 질문이었지만 그들은 진지했다. 북한이 북미관계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 필자가 율곡 이이 선생이 돌아가신 뒤 금강산 산신이 됐다는 전설을 들려주자 처음 듣는 얘기라며 친구들에게 전해주겠다고 했다. 금강산은 오행으로 볼 때 화산(火山)이나 해금강의 수기(水氣)와 균형을 이뤄 방문객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며, 특히 삼일포가 바위와 호수, 그리고 섬(와우도)이 절묘한 ‘삼균조화(三均調和)’를 이뤄 심신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고 설명하자 진지하게 청취했다. 필자는 신라시대 4선(四仙)이 3일을 놀았다는 ‘삼일포(三日浦)’가 아니라 ‘삼균포’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위·호수·섬이 ‘삼균조화’를 이루고 있는 금강산 삼일포의 아름다운 전경이 눈을 아프게 하고 있다. 가운데 섬은 소가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와우도(臥牛島)’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율곡 선생은 19세 때 금강산 유점사에서 참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화두는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럼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였다고 한다. 금강산과 삼일포를 18년 만에 보고나니 ‘머지않아 하나로 돌아가겠구나’는 ‘한 생각’이 단전을 뜨겁게 달구었다.

글·사진=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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