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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의 프리즘] 왜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릴까
낮은 출처의 정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설득 효과 높아지는 ‘수면자 효과’ 나타나
佛‘크로스체크 프로젝트’처럼 가짜뉴스 걸러낼 수 있는 자율 정화시스템 구축해야
2018년 11월 19일 (월) 10:57:10 조한규 webmaster@smedaily.co.kr

 “선화공주님은(善花公主主隱) 남 몰래 사귀어 두고(他密只嫁良置古) 맛둥 도련님을(薯童房乙) 밤에 몰래 안고 가다(夜矣 卯乙 抱遣去如).”

우리나라 최초의 4구체(四句體) 향가(鄕歌)인 ‘서동요(薯童謠)’로 삼국유사(三國遺事) 에 실려 있다. 백제의 서동(백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사모하던 끝에 머리를 깎고 스님으로 변장해 경주에 가서 마를 어린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이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그 결과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노래는 궁궐 안에까지 퍼졌고, 왕은 마침내 공주를 귀양 보내게 됐다. 서동이 길목에 나와 기다리다가 함께 백제로 돌아가서 그는 임금이 되고 선화는 왕비가 됐다는 설화다.

‘서동요’가 먹혔던 것은 ‘수면자 효과(Sleeper effect)’ 때문이다. ‘수면자 효과’란 신뢰성이 낮은 출처의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경과할수록 그 설득 효과가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즉, 시간이 오래 지나면 출처에 대한 기억이 부실해져서 정보의 신빙성과 상관없이 메시지의 내용만을 기억하게 된다. 이런 과정으로 신빙성이 낮은 정보가 점차 설득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예일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칼 호블랜드(Carl Hovland)는 정보에 대한 출처와 전달자가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사라진다고 해서 ‘수면자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동이 아이들을 통해 자신과 선화공주가 정을 통한다는 소문을 냈을 때, 처음에는 신라 사람들이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서동과 선화공주가 은밀한 관계’라는 것만 신라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됐다. 서동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다. 서동은 ‘가짜뉴스’를 퍼트려 결혼에 성공한 한국사 최초의 인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짜뉴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각종 역모사건을 보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던 사례가 많다. 일제강점기에는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사건’과 같이 일제의 ‘가짜뉴스’로 인해 많은 한국인들이 희생됐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정보기관이 정권안보를 위해 ‘가짜뉴스’를 만들어 무고한 민주인사들을 탄압했었다. ‘인혁당 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런데 요즘과 같은 민주화시대에도 갈수록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더욱이 SNS의 발달로 그 피해가 심각한 상태에 도달했다. 메시지의 무한 전파는 출처에 대한 가치를 떨어뜨려 ‘수면자 효과’를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권 일각에선 ‘수면자 효과’를 겨냥한 무차별적인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수면자 효과’는 주로 마케팅과 광고 분야에 활용됐다. 광고 제작자들은 ‘수면자 효과’로 인해 소비자들이 광고에 노출된 직후가 아닌, 일정 시간이 지난 이후 특정 브랜드나 제품을 기억하는 것으로 판단해 광고물을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홍보기법은 정치홍보에 활용된다. 선거 때가 되면 열세에 있는 정당과 후보들은 상대 정당과 유력후보에 대해 사실과 무관한 악의적인 거짓 정보,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네거티브 선거 전략을 구사한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출처와 상관없이 유권자의 부정적인 태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또는 정적을 공격하기 위해서 ‘가짜뉴스’를 마구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수면자 효과’를 노린 ‘가짜뉴스’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최근 북한이 미신고 미사일 기지를 운영 중이라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고서가 그 단적인 사례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의 거대한 사기’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페이크 뉴스(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CSIS가 사실과 다른 보고서를 내놓은 것은 매우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CSIS 보고서 내용에 대해 “미국 보수학자들과 군산복합체, 일본의 자충수”라고 지적했다. ‘가짜뉴스’의 배후가 누구인가를 지목한 셈이다.

또한 김용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은 지난 1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김상곤 전 교육부총리 딸의 대학입학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가 두 시간 만에 사과했다. 비난이 쏟아졌다. 김 총장이 언급한 의혹은 출발점부터 사실관계가 틀린 ‘가짜뉴스’였던 것이다. ‘수면자 효과’를 얻기는커녕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프랑스는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일종의 협업 저널리즘 프로젝트인 크로스체크(CrossCheck)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가짜뉴스’와 문제적 정보를 검증하기 위해 결성된 비영리단체인 퍼스트 드레프트(First Draft)가 구글의 지원을 받아 결성한 것. 33개의 언론사를 비롯해 대학, 비영리기구, IT 분야의 기업 등 총 47개의 파트너가 참여했다. 비록 2017년 2월27일부터 5월5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됐지만, 33개 언론사에 소속된 100명 이상의 언론인들이 SNS에서 떠도는 각종 루머와 주장들, 조작된 이미지나 동영상을 검증했다. 검증된 정보들은 ‘진짜(vrai)’, ‘가짜(faux)’, ‘근거 불충분(preuves insuffisantes)’ 등으로 분류돼 크로스체크의 웹사이트에 게재돼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프랑스 언론의 신뢰도가 크게 올라갔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가짜뉴스’는 이제 ‘사회악(社會惡) 중의 악(惡)’이 됐다.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뭔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2020년 21대 총선을 치르기도 전에 나라가 거덜이 날 상황이다. 특히 유튜브의 정치적 동영상들의 폐해가 갈수록 심각하다. 

   
언론이 각성해야 한다.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등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언론중재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공적 시스템으로는 ‘가짜뉴스’를 근절할 수 없다. 언론단체들이 ‘가짜뉴스’를 스스로 걸러낼 수 있는 프랑스의 ‘크로스체크 프로젝트’와 같은 자율적 정화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언론은 ‘정언(正言)’의 수호자여야 한다. ‘정언’은 백성의 소리이자 하늘의 소리다.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면 ‘천도(天道)’가 흐려진다. 지금부터라도 더 이상 ‘수면자 효과’가 통하지 않는 ‘바른 언로(言路)’, ‘바른 세상’, ‘바른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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